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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 Dec 08. 2023

헐, 진상 집주인이란 바로 이런 분!

더는 안 엮인 게 다행이랄까!


세 번째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살짝 무거웠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집을 보느라 실망한 피로도가 누적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 했다.


두 친구들 또한 집 알아보느라 애쓴 나를 배려하며,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 다음 집 앞에서 만나.


톡방에 집주소를 올리면서 애써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을 격려했다.  

조용한 단독주택가에 세 번째 집이 있었다.

타운하우스는 아니었고 개인이 단독으로 지은 이층집이었다.


- 이 집은 좀 괜찮은 거 같은데요.

- 그러게. 타운하우스보다는 단독주택이 나은가 봐.


잘 가꾼 잔디마당과 널따란 데크는 일단 합격이었다.


평범한 가정집 분위기의 내부는 화사하지는 않았지만 평범, 무난했다.

카페나 호텔이 아니고서야 잡지에 나오는 스위트홈 분위기를 기대하긴 힘들므로 인테리어에 대한 기대는 일단 접고 들어갔다.

 

거실과 주방, 안방의 구조는 나쁘지 않았다.

타운하우스의 하얀 방들은 호텔처럼 작고 수납공간이라곤 없었는데 세 번째 집은 딱 살림집 분위기였다.

이사를 가려는지 박스 포장한 짐이 산더미처럼 거실에 쌓여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집은 고려대상조차 아니었지만

이 집 정도라면 어떤지 의사를 물어보고 싶었다.

앞으로 더 찾아봤자 이보다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빈 식탁을 가리키며 말했다.


- 휴, 힘들다. 잠깐만 앉았다 가자.


친구들을 보면서 물었다.


- 어떤 거 같아? 일단 마당이랑 주차는 합격.


Y가 고개를 갸웃했다.


- 이 가구들은 써야만 하는 걸까요?

- 그러게. 가구가 필요하긴 한데... 집주인 취향이 참...

- 저 액자들은 설마, 치워주겠죠?


동시에 웃음소리가 빵 터져나왔다.

종교색이 무척 찬란한 액자가 곳곳에 걸려있는 게 마음에 안 들던 차였다.


- 화장실 물이 안 내려가는 거 같아요.

- 그런거야 고쳐주겠지.

- 지금까지 본 집 중에는 제일 낫기는 한데... 뭐라고 말을 못하겠네요.

- 나도 그래.


한숨 쉬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식탁 의자를 원래대로 밀어 넣은 후 이층부터 다시 돌아보고 불을 다 끄고 나서 세 번째 집을 나섰다.


집주인 성격이 꼼꼼해서 CCTV로 확인하므로 문단속을 잘 해달라고 부동산 실장이 당부했으므로 한 번 더 확인하고 집을 나왔다.     


무엇 하나 해결된 건 없었지만 토요일 저녁이었다.

기분전환 할 겸 지인이 하는 가게에 놀러 가기로 했다.


집 보러 다니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면서 약간의 푸념 섞인 감상을 나눴다. 사진으로 볼 때는 다들 근사해 보였는데 막상 가보니까 처참하기까지 했다고.


다음 주까지 좀 더 알아보기로 하고 다들 수고 많았다고 얘기하는데 부동산 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 계약을 하겠냐는 용건으로 짐작하고 받았다.


- 덕분에 친구들이랑 집 잘 봤습니다. 그런데 좀 더 상의해봐야 할 거 같아요.

- 그게 아니고요.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렸잖아요. 주인분이 CCTV 확인하니까 조심해달라고요.

착 가라앉은 목소리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 네? 문단속 잘 하고 나왔는데요.

- 지금 주인분 연락오셔서 난리가 났어요.


친구들은 긴장해서 내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성난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 집 보러가셔서 화장실도 막 쓰셨어요?

주인도 안 계신 집에서 삼십분을 앉아서 떠드셨어요?

주인분 난리가 나셨어요. CCTV로 다 보고 계셨다고요.

- 아... 죄송합니다.

- 화장실 변기 막혔으면 손해 배상하셔야 합니다.

- 변기에 휴지 넣으셨어요?

- 일단 그것부터 말씀해주세요.


부동산 실장은 악다구니를 쓰듯 따발총처럼 날선 음성으로 쏘아댔다.

흥분한 어조에서 사투리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나는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누군가 화장실을 써도 될까, 묻는데 내가 써도 될 거라고 말했던게 생각났다.  

둘 다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 휴지는 안 넣었는데요.

궁색하게 답하는데, 상황판단이 빠른 K가 귀엣말로 ‘얼른 끊어요, 언니. 죄송하다고 하고.’라며 소근거렸다.


- 죄송합니다. 다른 집들은 에어비엔비로도 영업하시니까 저희가 편하게 생각했어요.

주인분이 보셨으면 기분 나쁘셨을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부동산 실장이 침묵하는 틈을 타서 한 번 더 ‘정말 죄송해요.’라고 전화를 끊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데 다들 어이없어하는 탄성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 주인이 없는 집을 보러가서 식탁에 앉았던 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고 치자.

근데 삼십분? 거기 뭐 볼거 있다고?

- 말도 안 돼! 기껏해야 십분도 안 넘었다.

- 화장실? 집 보러가서 화장실 못 쓰게 하는 집은 한 번도 못 봤는데?

- 그럼 그 집 변기는 휴지만 넣으면 막힌다는 거네.

- 그 집 주인은 CCTV로 문단속을 확인한다는 게 아니라 집안을 실시간 시청하고 있었던 거구나, 대박!

    

본의아니게 통화내용을 들었던 가게 사장 지인이 쿨하게 상황정리를 해주었다.  


- 그럴 거면 집을 내놓질 말았어야지. 되게 이상한 사람이네.

그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저 부동산 실장도 참 이상하게 나온다.

- 담부턴 그 부동산은 그냥 제껴요, 언니.     


놀란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친구들 덕분에 그냥 헤프닝으로 넘길 수 있었다.




집에 오면서 내가 잘못했던가 또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아니었다.


나 또한 살면서 집을 내놓았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때마다 내 집을 보러 먼 길 오신 분들에게 음료수라도 내 드렸고 궁금한게 있으면 앉아서 편하게 물어보시라고 했다.

유리한 쪽으로 답한 적이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화장실을 쓰는 게 기분 나쁘다곤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잠을 청하는데 친구들 음성이 귀에 선했다.


- 그런 이상한 집에 안 들어간 게 다행이에요!


절레절레 고개를 젓던 친구들.

역시 다정함이 세상을 구원하는구나.


황당한 일을 겪고나자,

사사건건 날 세우고 심술쟁이로 사느라 피곤하실 그 분도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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