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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수 Feb 02. 2023

마음 공부에도 순서가 있다. 문사철(文史哲)

감성과 의지력을 겸비하지 않은 지적 욕구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지 못합니다. 학생들에게 왜 공부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좋은 대학 나와 돈 많이 벌기 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공부하는 목적이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이런 공부는 사람들을 이기적인 동물로 만듭니다. 참다운 공부는 어떠해야 하는지 밝히려면 먼저 인간이 동물과 뭐가 다른지, 인간답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먼저 얘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수많은 논설들이 ‘인간성’을 규명하려고 이런 저런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인간(人間)’이라는 말의 의미만 풀어 보도록 합니다. 왜 間(사이 간)자를 썼을까요. 인간이란 말이 ‘사람 사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어 참다운 인간이 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좋을 듯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참다운 인간’을 실존철학에서 ‘대자적 존재’라고 하는데 그냥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 즉, 인간(人間)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이기심만 가득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봐도 측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참다운 인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정글의 동물과 다름없다는 것이지요. 누구나 이런 사람과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더불어 살지 못합니다. 참다운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다만 거래하고 이해타산만 하고 사는 것이지요. 


인간답다는 말은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행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래서 비인간적인 욕심덩어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따뜻한 마음과 절제할 수 있는 실천력을 함께 가져야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따뜻해질까요. 다르게 말하면 우뇌가 잘 활성화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요. 따뜻한 마음과 우뇌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먼저 정서 교육에 문학 감상이 참 좋다는 걸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감성, 지성, 의지가 각각 문학, 철학,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성교육에는 문학이 좋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지혜를 얻으며 역사 공부로 실천의지를 기른다고 보는 것입니다.

문학, 역사, 철학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온 건 학생들에게 무엇을 먼저 가르치고 무엇을 나중으로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소위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생이 스스로 찾고 궁리하여 밝혀내야 하느데, 결과에만 집착하고 너무 서두르다 보니 잘 정리되고 압축된 지식을 빨리 많이 주입하려는 욕심들이 너무 앞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배우고 가르치면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다 망가지고 맙니다. 그래서 특히 교사는 학생들이 성급하게 점수를 올리려고 덤비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좀 더디고 답답하더라도 학생이 스스로 찾고 밝혀내는 과정을 지켜보고 적절하게 유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학생의 발달 단계에 잘 맞고 소질과 취향에도 맞는 텍스트를 적절하게 선택하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 공부에 재미없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도하게 추상화(抽像化)된 개념을 너무 많이 다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상화된 개념은 감성적 반응을 배제하고 논리적 사고(思考)를 요구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를 어렵게 생각하고 매마르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어릴수록 논리적 사고(思考)보다 감각적 노작(勞作) 중심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교육과정에서 감성교육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체능(藝體能) 교육과정의 비중을 늘려야 합니다. 몸을 중시여기고 감성을 기르는 교육을 강화하는 교육 개혁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역사를 가르치면 사실(史實)을 암기하려고 들 게 뻔합니다. 한창 성장의 혼란을 겪고 있는 때이니 만큼 자신의 혼란을 객관화하여 보게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성장소설은 초등학생에게 가장 좋은 교본이 될 수 있습니다. 성장소설을 읽으며 점진적으로 사회소설, 역사소설, 심리소설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을 통해 다양한 인생을 간접 경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사회와 국가의 흥망성쇄를 읽으려 할 것입니다. 이렇게 호기심 영역이 점진적으로 넓어지는 게 좋습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삶이 국가와 사회의 성장 쇠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체 보존은 종족 보존을 반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 한 사람의 성장과 소멸 과정을 닮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인간의 성장을 객관화하여 살펴보면 사회와 국가의 발전사를 조망하는 안목도 얻게 됩니다.


문학(文學)의 文은 몸에 새긴 문신, 무늬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문학은 예술의 한 갈래로 예술의 일반적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예술은 세계를 경험하며 느낀 바를 형상(이미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문학이 예술의 한 갈래로서 이미지를 다룬다는 것을 한자 文은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文이 원래 이미지를 뜻한 것처럼 문학은 우리 삶을 영상으로 보듯이 언어로 그려내는 예술의 한 갈래입니다. 그래서 역사, 철학보다 문학이 재미있는 것입니다. 추상 개념 공부는 참 어렵지만 영화를 보는 일은 정말 재미있지요. 이건 바로 이 형상(形像)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에는 문학을 가까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역사(歷史)의 歷(지낼 역)은 禾(벼 화)와 止(그칠 지)가 결합한 글자입니다. 止는 발자국 모양을 본뜬 글자로 멈춘다는 의미도 있고 지나간다는 의미도 있는 글자입니다. 곡식(禾禾)이 잘 자랐는지 지나가며(止) 살핀다는 의미를 가진 글자가 歷입니다. 史(역사 사)는 붓을 든 손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그러니 기록한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지나간 일들을 기록한다는 뜻입니다. 문학이 개인의 지난 일을 이야기로 꾸민 것이라면 역사는 사회구성체(국가)의 흥망성쇄를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어긋나지 않습니다.

 

철학(哲學)은 어려운 것이라고 다들 생각합니다. 글자를 풀어보면 어려운 철학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哲(밝을 철)은 손(手)과 도끼(斤)와 입(口)이 결합한 글자입니다. 손과 도끼가 결합하면 折(꺾을 절)이 됩니다. 도끼로 나무 가지를 쪼갠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좋을 듯합니다. 여기게 입(口)을 더해 哲은 도끼로 나무를 쪼개듯이 분명하게 분별하며 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글자입니다. 작가가 문학 작품을 창작하거나 독자가 그 작품을 감상할 때, 역사가가 역사를 서술할 때에는 항상 맞냐 틀리냐 옳으냐 그르냐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전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전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하는 사람의 생각 즉 관점이 개입하기 때문이지요. 철학은 바로 이 관점에 관해 따집니다. 도끼로 잔가지를 쳐내듯 이야기를 전할 때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것들을 삭제하지요. 바로 이때 전달자의 관점에 따라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게 달라지지요. 바로 그 전달자의 관점에 대해 따지는 게 철학(哲學)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문학은 개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사회 또는 국가의 탄생과 소멸 과정을 적은 것입니다. 철학은 관점 즉 가치과 세계관의 등장과 퇴장의 과정을 살펴본 것입니다. 점점 스케일이 커지고 다루는 지식의 영역이 넓어지지요. 그러니 문학부터 즐기고 점차 역사와 철학으로 나아가는 게 맞습니다. 거꾸로 가면 힘이 들고 억지가 끼어들게 됩니다. 너무 힘든 짓이지요. 공부가 즐거울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문학부터 먼저 즐기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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