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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파인 Feb 03. 2023

하우스홀릭 9-서울활용 Tip

집에 살다

   

  지방 살이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조사들을 보면 ‘문화 향유 기회 부족’이라는 답변이 매 번 높은 순위로 조사된다.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한 나도 지방에 직장을 갖고 이주하게 되면서 한동안 선뜻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이 ‘어디에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이었다. 서울이 아닌 지방 어디에서 왔다고 대답할 때마다 무언가 낙후된 곳에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상대방 역시 ‘저런 먼 곳에서 오셨네요’ 하며 약간은 낮추어보는 인상을 받곤 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지방이라는 말은 멀고, 무언가 부족하고, 심심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아직도 여전하다.     

 

  친구들도 종종 근황을 물어보다가 ‘ 그럼 퇴직하면 서울로 올 거지?’ 하는 질문을 하곤 했다. 그래서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집을 짓고, 자연을 느끼고, 사람을 알게 되고 이러저러한 재미를 쌓아가다 보니 이제는 ‘ 왜 서울로 가야 하지?’라고 반문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업무는 대략 다 서울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서울 출입은 잦을 수밖에 없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5도 2촌’의 삶을 살아가는 게 트렌드라는데, 우리는 ‘5촌 2도’의 삶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줄지어 지방으로 나오는 행렬을 보면서 우리는 서울로 들어가는 역이동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고속도로에서 차량으로 꽉 막힌 맞은편 차선을 보면서 ‘에구, 저것은 휴식의 차량인가! 스트레스의 차량인가!’ 농담을 하며 얄밉게도 역이동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서울에 와서 회의와 세미나에 참여하다 보면 하루 이틀이 그냥 지나기도 하지만, 일정 중간중간에 남는 시간들이 생기기도 한다. 남편과 나는 비슷한 일을 하기 때문에 일정 흐름도 대략 비슷해서 함께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 비는 시간이 안 맞으면 한쪽이 기다렸다가 다시 만나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바쁘게 움직이다가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생겼을 때  우리 부부가 선택한 방식이 있다. 만날 장소를 카페가 아닌 문화시설로 정하는 것이었다. 가장 편한 장소를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예술의 전당,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인사동이다. 예술의 전당은 항상 많은 전시가 있고, 산책하거나 차를 마시며 기다리는 것이 가능한 복합적 장소이다. 한두 시간의 짧은 시간이어도 그때그때 적당한 전시를 골라 관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항상 볼거리가 많아 보고 또 보고해도 된다는 점에서 그것도 많은 것은 무료로 가능해서 효율적인 공간이다. 인사동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갤러리가 아닌 거리 만으로도 흥미롭고 그래서 기다림이 무료하지 않다. 그리고 골목 안의 맛집 탐방도 가능하다. 이렇게 하다 보니 서울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전시와 구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 결핍이 있어야 욕구가 생기는 법이라고 모든 훌륭한 문화시설이 가깝게 있는 서울 친구들은 언제라도 가면 되니 미루어 놓는데, 우리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결핍을 메우다 보니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문화를 누리게 되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서울에 가서 총총거리며 일을 보고, 사람과 문화의 냄새와 향기를 맡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어두운 고속도로에는 사람도 차량도 많이 없고, 음악을 들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별로 급할 것도 없이 서서히 달리다 보면  집에 도착한다. 깜깜하다. 차문을 열고 내리면 우선 깜깜한 밤하늘을 본다.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낮에 본 멋진 작품들과 반짝이는 별빛이 교차하며 마음이 풍요롭다. 서울을 잘 활용하면 재미있는 일들도 더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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