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다 1.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다. 일과 가족생활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편의성과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생활이었다. 여유롭게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TV 속 이야기로 충분했다. 게으르고 온갖 일을 귀찮아하는 편이라서 지금의 생활에 집과 잔디 관리를 추가하는 삶에 대한 용기가 내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심에서 외곽으로 나가 드라이브하다가 새로 조성되고 있는 전원주택 단지가 있다고 해서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들어갔다. 이게 시작이었다.
주택 필지를 분양하는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한 번 둘러보라고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단지의 땅을 보여 주었다. 몇 개의 필지를 보여 주는데, 가장 구석에 있는 땅에 올라서는 순간 설레기 시작하였다. 마을과 산이 내려 보이는 높은 곳이면서 소나무가 많은 땅이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보며 그냥 마음과 생각이 멈추어 버렸다. 하염없이 쳐다보기만 하였다. 집에 와서도 아른거리는 것 같았고, 다시 방문하고는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내가 아니라 땅이 나를 선택한 느낌이었다.
분양 사무실의 입장에서는 숲과 연결된 단지 안의 구석진 곳이고, 땅이 층층이 되어 있어 들림집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는 땅이라 그리 인기 있는 필지가 아니었다. 남편과 나에게는 땅의 느낌이 좋았고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서서히 우리의 땅으로 만드는 구상이 시작되었다. 우선 협의를 통해 앞에 깊숙하게 낮은 땅을 메워 평평하게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는 거의 매일 찾아가서 땅을 밟고 쳐다보며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편안했다. 그저 멀리 풍경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온갖 상상과 계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계획에도 없던 땅을 사기는 했지만, 아직은 집 지을 상황이 아닌 듯해서 고민도 시작되었다. 친정 엄마 떠나시고 혼자 계시던 아버지께서 건강이 점점 나빠지셔서 마음도 분주했다. 워낙 건강하고 독립적인 분이라 자녀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성격이신데 아무래도 혼자 계시니 건강이 빨리 나빠지시는 것 같았다. 가족들과 논의 끝에 자연환경이 좋은 이곳에서 지내시면 어떨까 하는 논의가 있었고, 그렇게 아버지께서 먼저 단지 안에 있는 주택으로 이사하시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결혼한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와 가깝게 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든든했다. 아버지 생활을 돌봐드리는 사소한 일들이 늘기는 했지만, 아버지께서 옆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든든했고, 결과적으로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그런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댁에 가는 것이 우리 집 땅으로 가는 길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빨리 집을 짓고 이곳에 들어와 아버지와 함께 해야겠다는 사명감까지 들게 되니 갑자기 집을 짓는 구체적인 계획이 속도를 내게 되었다. 사실 지방에 직장을 갖게 되면서 가족들과 자주 만날 기회가 적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우리가 일이 있어 근처에 가게 되면 일정을 조정해서 만나기는 하지만, 전부 다 바쁜 생활이라 자주 오가기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런데 땅을 만나고, 아버지와 함께 하게 되고, 아버지가 계시니 언니와 오빠가 먼 곳에서 부지런히 이곳을 자주 오게 되어 이전보다 더 자주 얼굴을 보게 되었다. 땅과 가족을 한꺼번에 얻게 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