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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파인 Feb 08. 2023

하우스홀릭 11- 어떤 집을 지을까

집을 짓다 2

    

  집을 짓기로 결정하니 생각하고 챙길 일이 많아졌다. 인터넷 각종 블로그에서 집 짓는 스토리를 눈팅하고, 이런저런 생각과 구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 집에 문외한인 나는 매일 ‘어떤 집’에 대한 생각이 돌고 돌아 맴맴거릴 뿐이다. 어느 날 남편이 고등학교 동창 중 건축가가 있다고 해서 만나보기로 했다. 연락을 드렸고 첫 만남을 우리가 정한 땅에서 갖기로 했다.      


  건축가가 땅을 보는 방법은 우리와 많이 달랐다.  우리는 매일 고정된 장소에서 참 좋구나 하며 경치 감상만 하고 즐거워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예술가처럼 머리가 제법 긴 건축가는 우리를 만나자마자 땅을 둘러보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건축할 땅 저 위로 올라가 한참을 내려보고, 저 밑으로 내려가 한참 올려다보고, 동서남북 길도 없는데 다양한 동선과 시선으로 땅을 둘러본다. 땅을 보는 것이 아니라 벌써 집을 보고 있는 듯하다. 마치 등산하는 사람처럼 오르락내리락 길도 없는 곳을 마구 다니며 사방으로 관찰하더니 우리에게 물어본다.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요’  이 당연한 질문에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니 자리를 옮겨 순두부를 먹으며 그간의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사이에서 내 머리에는 온통 질문이 왔다 갔다 했다. 사실 건축가 친구를 만나기 전 인터넷에서 그동안 작업했던 많은 건축과 집들을 찾아보았는데, 멋진 집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살 집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미정인 상황이었다. 둥그런 집, 옥상에 정원이 있어 마당에서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집 등 재미있는 제안들이 오가기는 했지만, 우리 둘 다 전혀 혁신적이지 않은 소심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라 고개만 갸우뚱했다. 첫 만남 이후로 고민이 깊어지고, 우리가 내린 결론은 ‘simple & comfortable’ 즉 단순하면서도 편안한 집이었다.     


  그래서 반듯반듯한 콘크리트 기역자집이 시작되었는데, 겉으로는 단순하면서도 편안한 집이라고 했으면서 우리 마음속 욕망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사람도 편안해야 하고, 경치도 멋지게 감상할 수 있어야 하고, 그리고 다소 엄청난 분량의 책이 깔끔하게 정리되었으면 하고, 서재 공간이 생활의 중심이었으면 한다는 등 요구사항이 점점 늘어만 가는 것이었다. 노련한 건축가 친구는 ‘오케이! 알았어’ 하면서 우리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지만, 우리들의 요구 더하기 독특한 집 그러니까 유니크(unique)한 집이어야 한다면서 설계안을 내놓았다. 설계 도면이 완성되고 설계사무소에 가서 다시 상의하는 몇 개월이 지나고, 시공사를 선정하면서 집 짓기가 시작되었다. 사실 설계 도면을 본다고 해서 우리는 어떤 집인지 잘 상상하지도 못했지만 그동안의 대화를 기반으로 전적인 믿음을 갖게 되었고 건축과정을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집 지으면 고생스럽고 그래서 몇 년을 훌쩍 늙게 될 거라고 걱정이 많았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집 지어가는 과정은 흥미롭고 신선했다. 그저 비어있던 땅 위에 건축 구조물이 세워지고, 모양과 색상이 자리 잡아가고 매 과정마다 우리의 의견과 취향을 물어봐주는 덕분에 처음으로 건축과 건축자재에 대해 머리를 싸매며 공부해 대답을 준비하는 과정이 제법 재미가 있었다. 아마도 이 과정이 우리 집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장이 완성된 이후에는 내부 인테리어가 시작되었다. 우리 집의 유니크함은 창호가 엄청나게 많아 빛과 외부 경치와의 소통이 매우 개방적으로 열려있다는 점과 긴 계단과 공간에 자연스럽게 짜놓은 책장이 있어 많은 책을 티 안 나게 편안하게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집이 완성되었다. 상상과 대화, 그리고 많은 분들의 수고로 완성된 집은 우리 입장에서는 대만족이었다. 모든 공간이 독립적으로 구획되었지만, 빛과 창호를 통해 언제라도 소통되고 연결되는 집, 정남향은 아니지만 앞으로 큰 산의 전망이 완벽하게 들어오는 차경과 기역자집의 장점으로 남향의 햇빛을 적절하게 끌어들이는 집 그리고 서재 공간이 특별하게 편안한 집이 완성된 것이다. 이제 집에 살게 되었고 우리는 집에 사는 삶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건축가의 전문성은 우리의 복잡 미묘한 욕망을 잘 정리해 집에 담아 주었고, 살아가면서 우리는 ‘아하 이래서 이렇게 만들었구나!’라고 새삼 감탄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이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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