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살다
아직 마당에는 겨울이 가득하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공기의 느낌이 달라지고 아롱아롱 올라오는 따스함이 봄을 기대하게 하는 날씨이지만 여전히 두터운 점퍼를 입어야 마당에 나설 용기가 난다. 나이가 들면서 추위가 점점 무서워지고 그러다 보니 겨울 내내 마당은 쳐다볼 뿐 선뜻 나서게 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오늘은 작정을 하고 나서서 마른 솔가지와 솔잎들 그리고 낙엽이 가득한 마당을 쓸고 정리해 보았다. 몸을 움직이면 처음에는 귀찮다가도 이내 집중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다 슬쩍 땀이 나기 시작하면 묘한 만족감이 있다. 열심히 움직이면 느끼게 되는 몸의 피로감은 다른 한 편으로는 복잡한 마음을 편안하게 정리해 주는 묘약이기도 하다.
구석구석 숨겨진 낙엽들을 긁어내어 한쪽으로 모아 쌓아두고, 데크에 쌓인 겨울 먼지를 쓸어내면서 움직이다가 나도 모르게 관찰이 시작된다. 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잘 관찰하면 이제 움트려고 하는 이른 봄꽃들의 움직임을 발견하게 된다. 노란 복수초 꽃의 싹이 쏙 올라와 있기도 하고, 민들레 종류의 잡초는 벌써 푸르기도 하다. “너희들이 올라오고 있구나” 이렇게 눈 맞춤하며 인사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것은 연한 이파리가 돌돌 말려 올라오고 있는 하늘매발톱의 새 잎을 발견하는 일이다.
하늘매발톱! 아직 이렇게나 추운데 이파리를 피우고 있다니 기특하다. 마당에 별로 많은 꽃을 키우고 있지 않지만 틈 날 때마다 주로 우리 야생화를 심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야생화들은 특별히 돌봄 없이 자신들이 알아 꽃 피우고 번식하는 편인데, 앵초, 깽깽이 풀, 은방울 꽃,........ 등이 있다. 대부분 잔잔한 꽃들이라 잘 관찰하지 않으면 피었다가 남모르게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깽깽이 풀은 보라색 연한 잎을 가진 아주 조그만 풀꽃인데, 겨우 겨우 꽃을 피웠다가도 바람 한 번 불면 스르르 꽃잎이 다 날아가 버려 하루 이틀 밖에 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렇게 어떤 꽃들은 몇 해 피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꽃들은 바람에 씨를 날려 여기저기서 계속 꽃을 피우기도 하는데, 우리 집 마당 하늘매발톱도 그중의 하나이다.
하늘매발톱은 이름은 다소 매섭지만 선명하고 또렷한 보라색 꽃을 피우는 정말 아름다운 꽃이다. 돌돌 말린 이파리가 펴지고 꽃을 피우는 데는 아직까지 한 참 기다려야 하지만 벌써 생각만으로도 설레게 한다. 하늘매발톱은 야생화 중에서는 비교적 꽃 봉오리가 크고 존재감이 분명한 꽃이기도 하다. 꽃에 쑥 길게 나와있는 부분이 매발톱같이 날카롭게 생겼다고 해서 불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성모의 장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매발톱 꽃 역시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흰색과 보라색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하늘매발톱이 우리 야생화라고 한다.
하늘매발톱은 얼굴을 땅으로 향해 피어나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쉽게 전면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사진 한 장 찍으려면 꽃 아래로 납작 엎드려서 정성스럽게 찍어야 한다. 그러나 수줍은 꽃이 아니라 매우 당당하다. 이파리는 방풍 잎처럼 튼실하며 꽃대도 매우 꼿꼿한 편이다. 새 잎이 올라오는 시간, 꽃이 필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꽃이 한 번 피면 또 비교적 오래 머무는 편이다. 겨울 추위를 지나 솟아올랐으니 맘껏 자랑하고 떠나고픈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 볼 수 있으니 반갑고 고맙다.
추운 겨울 막바지 마당 치우다가 발견한 매발톱 연한 이파리를 발견하고 이렇게 마음이 봄으로 먼저 달려가고 있다. 3월이 되면 조금 더 마당이 웅성거릴 것이다. 하늘매발톱 그리고 봄 꽃들을 앞당겨 상상하며 공연히 설레이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