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살다
쑥이 올라오고 있다. 마당을 걸어 다니다가 새롭게 올라오는 어린 쑥을 하나씩 뽑다 보면 한 움큼 된다. 조개나 멸치 육수 가볍게 우려내서 된장 연하게 풀고 보글보글 할 때 연한 쑥을 넣어 한소끔 끓이면 쑥 향 가득한 쑥국이 된다. 봄이 입안에 퍼진다.
민들레도 힘차게 올라오고 있다. 화창한 날에 민들레 노란 꽃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마당 가득 여기저기 피어난다. 하루 이틀 지나면 민들레 꽃자리에는 솜털 같은 씨가 대신하고 바람 휘리릭 불면 민들레 씨가 온 마당에 퍼진다. 넓게 퍼져 보드랍게 올라온 민들레도 잘 캐내 살짝 데쳐 고추장 조금 넣어 새콤 달콤하게 무쳐 놓으면 향긋한 봄나물이 되어 입을 즐겁게 해 준다.
봄과 함께 나타난 이렇게 맛있고 정겨운 쑥과 민들레가 실은 마당에 살고 있는 나에게는 항상 갈등의 대상이다. 쑥의 번식력과 생장력은 너무나 대단해서 여린 쑥에서 커다란 쑥대로 자라는 것이 순식간이다. 비만 한 번 오면 쑥쑥 자라서 주변 모든 것을 압도하여 쑥대밭을 만들어 놓는 것이 바로 쑥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먹는 쑥은 주로 꽃과 나무 옆에 자리 잡으려고 하는 쑥들을 하나씩 뽑고 캐어낸 것들이다. 내 입장에서나 꽃과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쑥은 고약한 잡초이다. 그냥 두면 너무 커버려 꽃자리를 다 잠식하고 마음대로 자라 버리니 이 맛있는 쑥을 반가워하기만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선 꽃밭 사이사이 자라는 쑥을 일차로 뽑고 처리하고 무더기로 자라는 쑥은 과감하게 큰 삽으로 제거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해는 지천으로 나온 쑥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언니와 열심히 캐서 쑥떡을 하겠다고 캐낸 쑥과 쌀을 씻어 동네 방앗간에 갔다. 그랬더니 방앗간 주인이 웃으시면서 이런 정도로는 어림없다고 하시면서 방앗간 뒷산 음지에 쑥을 가득 키우고 있으니 넣고 싶은 만큼 캐오라고 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캔 쑥은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어렵사리 캔 것인데 방앗간에서 쓰는 쑥은 그늘에서 연하게 쑥 커버린 쑥이고 낫으로 듬성듬성 베어 사용한다고 하셨다. 대략 난감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쑥과 씨름하지 않고 꽃과 나무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잡초 제거 차원에서 쑥을 캐서 먹고 있다.
민들레도 번식력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 식물이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휘날리면 마당 전체가 민들레 밭이 되는 것도 순식간일 터이다. 17년 동안 마당에 어떤 잡초 제거제나 농약을 사용한 적 없으니 우리 마당은 정말 청정하다는 자랑을 할 수 있는데 대신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부지런해서 나오는 잡초를 모두 관리하는 능력자도 아니니 어느 정도 많은 풀꽃과 잡초와의 공존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실 잡초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봄에 나오는 풀꽃들도 전부 예쁘다. 보라색 제비꽃, 노란 민들레꽃은 결코 수선화나 보라색 무스카리에 뒤지지 않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올해도 벌써 민들레가 마당 여기저기 출몰하고 있다. 민들레는 내게 오래전 떠나신 엄마를 생각나게 한다. 갑작스럽게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원 치료도 별무 효과가 없는 상태가 된 이후 아버지께서는 엄마와 공기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함께 하셨다. 희망이 없는 상태가 되니 작은 실오라기 같은 희망에도 다시 기대 보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항상 의연하고 합리적인 아버지셨지만 누군가 쓰디쓴 민들레 뿌리의 즙이 폐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민들레가 보이면 캐곤 하셨다. 깨끗하게 씻어 민들레 즙을 내어 엄마에게 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마음의 위로 같은 것이었는데 엄마는 짧은 암투병 기간을 거치고 홀연하게 떠나셨다. 민들레를 보면 많은 생각과 감정이 오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해야 하나? 민들레를 방치하면 잔디밭이 온통 민들레 밭이 될 터인데. 그래서 요즈음은 민들레 꽃이 피면 미안해!라고 인사하면서 홀씨가 되어 퍼져나가기 전에 꽃대를 정리하고 있다.
봄이 되어 쑥과 민들레가 한창이다. 반갑기도 하면서 풀꽃과 잡초 사이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올해도 시작하고 있다. 하기야 인생은 항상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니 나를 생각하게 하고 훈련시키는 이들에게도 감사하다 생각하며 이 봄을 즐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