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살다
처음 이사해서 자장면을 먹고 싶어 전화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전화를 해서 자장면 배달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그곳에는 10인분 이상만 가능해요'라는 대답이었다. 우리 둘이서 10인분을 먹을 수 없으니 포기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하나둘씩 편의점과 카페가 늘어 가더니 가까운 곳에 맛있는 파스타집도 생기면서 점점 주변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에는 지방 도시에도 경치 좋고 공간이 넓은 곳에 카페가 생기는 경향이 생겼고, 카페가 생겼다 하면 주말에는 사람이 가득가득했다. 답답한 상황을 벗어나 잠시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베이커리가 있는 카페가 선호되었고, 분위기만 좋다면 어느 산 중에 숨어 있어도 사람들은 찾아들었다. 그러니 산 주변의 이곳에도 예외 없이 멋진 카페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산과 숲도 좋지만 새로 생긴 카페도 내게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사람이 집중되는 주말을 피해 낮시간에 시간이 날 때면 작은 책 하나 집어 들고 설렁설렁 카페로 간다.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 시켜놓고, 책 한 줄 읽고, 산 한 번 쳐다보고 그런 시간들도 편안하다. 사람이 없는 시간이니 카페 주인도 내가 머무르는 시간에 관대하다. 가끔 눈웃음으로 안부 물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온다. 또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방문하면 걸어서 갈 수 있는 카페가 있다고 으스대며 한 무리가 같이 방문하기도 한다. 집과는 다른 분위기라 공연히 더 많은 수다를 떨기도 하고, 커피와 스콘으로 한 끼 때우기도 하며 카페를 즐기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에 또 카페가 생겼다는 소식이다. 정원 조경이 멋있고 계곡을 끼고 있어 가족 단위 손님이 많은 곳이다. 봄, 여름, 가을 날씨 좋은 시기에는 주차장이 가득 차서 주차하기도 힘들다. 이 카페는 우리에게는 산책용 카페이다. 걸어서 2-30분 걸리니 왕복 4-50분 산책 겸 운동하기 좋은 거리에 있다. 조금 더 멀리에는 사진 찍기 좋은 카페가 있다. 젊은 친구들 연인들이 사진 찍으면 멋있게 나오는 포토존을 많이 만들어 놓은 카페이다. 또 근처에는 여름철 각종 빙수가 맛있는 카페도 들어섰다. 그런데 어쩌나 인근에 또 2천 평 정도의 땅을 공사하고 있어 무언가 했더니 카페 장소를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공연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조용한 곳을 찾아왔더니 이제 조용한 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가 우후준순 생기며 시끄러워지고 있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적막한 이곳에 사람들의 활기가 느껴져 좋은 점도 있지만, 점점 변해가는 삶의 환경이 살짝 두렵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은 참 이중적인 것 같다. 여하튼 까세권이 되어 가고 있는 우리 동네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