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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파인 Jan 31. 2023

하우스홀릭 7- 잼 이야기

집에 살다

  설탕 들어간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 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냉장고를 열면 다양한 수제 잼이 가득하다. 오디잼, 보리수잼, 앵두잼, 아로니아잼, 호박잼, 복분자잼, 살구잼, 바나나잼, 살구잼, 딸기잼 등등이다. 그리고 냉장고 밖에는 커다란 병으로 매실청이 여러 병 있다.

  

 이 역시 이곳에 살게 되면서 하나씩 늘어가는 품목 중 하나이다.  집이 있는 이곳도 언젠가는 야트막한 야산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집 앞 텃밭 구석이나 동네 빈 터에는 심거나 가꾸지 않은 과실나무 등이 여기저기 자라고 있다.  철이 지나고 때가 되면 이 나무에 열매가 맺기 시작하고, 따지 않은 열매들이 땅에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모양이 튼실하거나 탐스럽지는 않지만 이 과실들이 그저 땅에 뒹굴다가 발에 밟히고 그리고 사라져 가니 공연히 신경 쓰이곤 했다.

 

   그러나 게으른 천성의 나는 안타까워할 줄만 알았지 잼을 만들 시도를 하지는 못했다. 아이들을 다 결혼시키고 홀가분해진 언니가 도시에서 우리 옆집으로 이사 온 뒤부터 잼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바쁘게 살다가 이곳에 오니 편안하기도 하지만 무료하기도 한 시간들도 많아진 언니의 눈에 이 과실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서서히 언니 부엌에서 잼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잼 중에서 단연 으뜸인 것은 오디잼이다. 10여 년 전에 작은 나뭇가지 만한 뽕나무를 두 그루 심었는데, 한 해가 다르게 쑥쑥 자라더니 어마어마한 양의 오디를 생산해 내기 시작하였다. 오디 열매는 매우 연약하고 부드러워 다루기 어렵다. 그리고 영양이 매우 풍부한지 상하는 속도도 다른 과실에 비해 빠르다. 시중에서 전부 냉동 오디를 파는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 같다. 그래서 오디는 따자마자 냉동을 할지, 잼을 만들지 결정해야 한다. 약을 안치면 벌레도 많이 생기는 편인데, 우리는 약도 안치니 무조건 신속함이 필요하다. 절반 정도 냉동하고 나머지는 잼을 만든다. 진한 검정보랏빛 오디잼의 맛은 정말 탁월하다. 가끔 지인들에게 서너 병 나눠주곤 했는데, 까다로운 미각을 가진 친구들도 이렇게 맛있는 잼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칭송한다. 내 생각에는 모든 잼 중에서 탑은 오디잼이다.

  

 보리수나 앵두도 잼을 만들어 먹으면 그 새콤하고 달콤함이 남다르다. 작은 나무에도 엄청나게 많은 열매가 달리는데, 보리수의 경우에는 그저 매달렸다가 그 시큼 쌉쌀한 맛 때문에 외면받기 쉬운데, 잼으로 만들어 놓으면 참으로 매력적인 상큼한 맛이 살아난다.  집 옆 공터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는데, 살구가 가득 달렸다가 어느 날부터 툭 툭 땅에 떨어진다. 나무가 너무 커서 올라갈 엄두는 안 나고 떨어진 것 중 상처가 덜 난 것만을 골라 씨를 발라 잼을 만들어 보곤 했다.  그런데 살구잼은 생과의 달콤함이 잼을 만들어 놓으면 오히려 반감되고 시큼함이 더 증폭되는 것 같기도 하다.


   딸기의 생명력과 번식력은 대단하다. TV에서 온실 속 탐스런 딸기만 보아서 그런지 딸기는 매우 연약한 과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웃이 네다섯 개 준 모종을 옮겨다 심었더니 한 해 한 해 바닥 넝쿨처럼 번지더니 한 구석 전체를 딸기가 잠식해 버렸다.  한겨울에도 파란 잎을 유지하고 봄이 되면 힘차게 힘차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 중의 하나가 딸기다.  꽃이 피고 그리고 딸기가 달린다. 비료도 없이 자라는 딸기라 조그맣고 열매도 볼품없다.  그래도 한 여름까지 계속 딸기가 달리는데, 수고스럽지만 그 딸기를 따서 먹어보면 햇볕의 에너지를 가득 담은 건강한 맛이 느껴진다. 새콤달콤 아니 새콤한 맛이 더 강해 하우스의 달콤한 딸기에 길들여진 내 입맛으로는 생과를 맛있게 먹기는 다소 힘들다. 그런데 잼으로 만들어 놓으면 기가 막힌 맛이다. 정말 새콤달콤이다.


  이런 상황이니 언니 부엌표 잼공장은 봄, 여름 쉴 틈이 없다. 몇 해 동안은 욕심껏 눈에 보이는 모든 과실을 잼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문제는 다 먹기 힘들다는 것이고, 지인과 친척들에게 나누어주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제 잼 공장은 서서히 가동하고 있다. 즐겁게 함께 먹을 정도만 조금 만들기로 한다.  새삼 자연이 만들어서 내게 주는 이 많은 과실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과실 열매를 그저 쳐다보는 행복함과 조금 얻어서 잼으로 만들어 먹는 즐거움이 있는 삶이라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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