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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파인 Jan 31. 2023

하우스홀릭 6- 달은 밝다

집에 살다


  몇 년 만에 슈퍼문이 뜨는 날이라고 여기저기서 보도가 나왔다. 지구와 달이 가장 가까워지고 그만큼 크고 밝은 달을 볼 수 있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슈퍼문’을 만난 것은 지금부터 5년 전이다.  황골 이 집으로 와서 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분명 한 밤중인데 밖이 너무나도 환했던 것이다. 이상해서 밖을 내다보니 마치 땅이 하얀색처럼 보이고, 소나무와 다른 집들의 실루엣이 너무나도 뚜렷한 것이다. 사실 산 옆으로 이사 오고 나서 너무 빨리 깜깜해지는 게 문제였는데, 이렇게 밝다니?  가로등이 켜졌나? 아니었다. 머리를 돌려 창밖을 살펴보니 달이 떠 있다.  달은 달인데 통 느껴보지 못했던 달이었다. 휘영청 밝은 달이었다. 아파트에서 한방 중이어도 여기저기 네온사인이 밝혀져 있던, 이전에 살던 집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달이었던 것이다. 

  

 겨울 어느 날 눈이 펑펑 내린 밤이었다. 또 자다가 눈을 떠보니 이번에는 대낮같이 환하다. 형․설․지․공, 옛날 선인들이 반딧불과 눈에 반사되는 달빛을 모아 공부를 했다고 했던가.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말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문을 열고 살짝 한 밤의 마당에 나가 보았다. 심어놓은 자작나무의 흰색이 더욱 희게 반사되고, 구부러진 길 모양도 내 눈에 뚜렷하게 다가왔다.  달은 밝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시골 친척집 결혼식에 갔다가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는 혼사가 있으면 몇 날 며칠을 먹고, 춤추고, 술 마시는 일들이 종종 있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께서는 그런 놀이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으셔서 슬그머니 빠져나오시는 적이 더 많았다. 그날도 아버지는 먼저 일어나시고, 내 손을 잡고 시골길을 걸어 나오게 되었다.  겁이 많았던 나는 무서워서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아버지 손을 꽉 잡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커다란 나무의 실루엣, 잎들의 살랑거림, 달빛을 받아 더 사랑스러운 하얀 길가의 꽃들.  별로 무섭지가 않았다. 가끔 귀신이다라고 외쳐 나를 놀라게 하며 즐거워하시는 아버지 장난에 소름이 몇 번 돋기는 했지만, 도시에 살던 나도 겁내지 않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환한 길이었다. 그리고는 서울 한가운데 살고 있던 내내 그 환한 빛을 모두 잊어버렸다.  야경의 화려함 위에 떠있는 달은 자신의 밝음을 내게 다 전달해주지 못했다.  

 

   달이 정말 밝구나. 이곳에 이사 와서 아직도 가끔씩 밤에 일어나서 창문을 내다본다. 쓸데없는 빛이 없는 곳이라서 창문도 거의 투명하게 두고, 커튼도 환하게 비칠 정도로 가벼운 커튼을 달고 생활하고 있는데, 이렇게 자연을 열어놓고 살게 되면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이 달이 밝구나라는 실감이었다.  너무 기쁘고 소중해서 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보낸다.

오늘도 달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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