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살다
2021년 11월 8일. 담비라고 한다. 노랑목도리 담비.
아침에 일어나니 숲 쪽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커다란 청설모인가 했는데 담장 울타리를 타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그것보다는 훨씬 큰 동물이었다. 마당에는 고양이 '뚜기'가 긴장한 듯 몸을 웅크리고 그 움직임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는데 담장나무 울타리를 타고 집 가까이까지 오더니 마당으로 내려와 사사 수풀로 들어가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 갔구나 하고 거실에서 방 안으로 들어오려 했는데, 아니 이런 평소 길고양이를 위해 내놓은 사료통 앞에 와 있었다. 우리를 신경도 쓰지 않고 당당하게 사료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그런데 생긴 것이 조금 특이했다. 몸통이 황금빛 털인데 주둥이와 얼굴은 새까만 게 제법 귀엽게 생겼다. 이게 뭐지 하며 사진 몇 장과 동영상을 찍으며 족제비인가 보다 생각했다. 한참이나 먹더니 배가 불렀는지 산 쪽으로 다시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고양이와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족제비가 나타났다고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단톡에 올려 주었더니 잠시 후 아들내미가 검색 내용을 보내주었다. ‘그거 담비예요. 우리나라 최상위 포식자이고 멸종위기 2급 동물’ 아니 정말인가! 그리고 살펴보니 틀림없이 담비였다. 노랑목도리 담비라고 한다.
실체를 알고 나니 그동안의 의문의 일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슬픈 일이지만 이상하게 길고양이를 위해 편한 휴식처를 만들고 먹이를 주어도 고양이들이 잘 머무르지 않았고, 때로 어린 새끼들이 밤새 없어지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어느 날은 고양이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집이 산 옆에 있다 보니 아마 무서운 게 내려왔었다 보다. 예전에는 삵이 집마당에 온 적도 있어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동물 생태계의 문제려니 하고 마음 아프기만 하였다. 그런데 담비라니. 퍼즐이 맞추어지는 듯했다. 담비가 귀여운 모습이지만 엄청난 포식자이고, 이 놈들이 그동안 고양이를 잡아가거나 때론 고양이 밥을 훔쳐 먹곤 했던 것이다. 최근 고양이 밥이 밤새 너무 빨리 없어져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범인이 스스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조금 흥분했고 하루 종일 담비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쳐다보는 데도 당황하지 않고 먹이를 충분히 먹고, 데크 위에서 폴짝거리며 놀다가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까지, 그리고 고양이 실종 사건의 주범인 바로 그 담비.
다음 날 아침 일어나면서 이층에서 내려오는데 데크에서 또 담비가 놀고 있었다. 이미 밥은 충분히 먹은 듯하고 조금 폴짝거리더니 다시 산으로 가버린다. 무섭고 신기하고 귀엽고 밉고 애틋하고 그런 담비 이야기였다. 이후 아직까지 담비는 보이지 않는다. 책상에 앉아 있으면 산과 연결된 우리 집 울타리가 보이는데 공연히 한 번씩 쳐다본다. 하~~ 담비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