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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파인 Jan 26. 2023

하우스홀릭 2 - 식물의힘

집에 살다 

  


참 매섭게 추운 겨울이었다. 다른 겨울에 비해 더 추워서 그랬는지 봄이 오는 마당이 아직도 을씨년스럽다. 과수원의 작물들도 냉해를 입어 많은 나무들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이니, 우리 집 꽃나무들도 올해는 전부 새로 심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관 그늘진 곳에 3년 전에 심어 놓았던 복수초가 올해도 어김없이 쏙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달랑 두 개 심었을 뿐인데, 식구를 늘려 더 소복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마당을 슬슬 돌아보니 겨울 들어서기 직전에 여기저기 심어 놓았던 수선화, 히야신스 같은 구근 뿌리의 싹도 벌써 돋아나 있다. 그렇게 추웠는데. 사실 올 겨울은 너무 추워서 지하 몇 m 깊이에 묻어 놓은 하수, 오수관이 얼어 고생을 했는데, 땅에서 10cm 안 된 곳에 묻힌 얘네들이 이렇게 힘차게 올라오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제 매발톱 꽃도 올라오고, 정말 연약하게 생긴 깽깽이풀도 땅을 뚫고 올라올 것이다.  

복수초


   

  

  물론 꽃보다 더 빨리 채비를 하는 놈들은 쑥과 냉이 그리고 돌나물  같은 것들이고, 이것들보다 더 빨리 손짓을 하는 것은 수많은 잡초들이다.  잔디밭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며 물어보는 것 중의 하나가 잔디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러 사례들을 이야기해 주는 것 중의 하나가 전원주택에 나간 사람들이 처음에는 좋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잔디를 전부 작은 돌로 덮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잡초를 뽑다가 지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일도 잘 못하는 우리 부부에게도 이 문제가 난관이라면 난관이 될 것이고, 그래서 자기 위안 삼아 우리는 ‘태평농법’으로 잔디 관리를 할 것이라고 설레발을 치곤 했다. 즉, 생기는 대로 놔두며 태평하게 즐기겠다는 것이었다.

  

 살다 보니 진화하는 잔디와 공존하는 몇 단계가 있는 것 같다. 

 잔디 1단계, 처음 잔디를 심고 나면 빨리 잔디가 자라 ‘저 푸른 초원’이 되는 것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아직 흙이 더 많은 잔디를 살펴보며 드문 드문 올라오는 잡초를 손으로 정성스레 뽑아준다

  잔디 2단계, 1-2년 지나고 나면 잔디는 빼곡하게 정말 멋지게 자리 잡는다. 창문을 통해 쳐다보는 잔디가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그런데 어라 어느 틈에 잔디보다 더 빨리 자라나는 잡초를 발견하게 된다. 잠깐이면 한 움큼씩의 잡초를 거두어내게 된다. 고민이 시작된다. 잡초 제거약을 뿌려볼까? 그러나 청정 환경을 유지하겠다는 각오로 마음을 접고 전동 잔디 깎기를 구입한다.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정갈하게 잔디가 정리된다. 그 정갈함 속에 잡초는 숨어서 힘차게 뿌리내리고 있다.

  잔디 3단계,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우리 집 잔디는 여전히 돌에 덮이지 않고 잘 견디고 있다. 잡초가 왕성하게 나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잔디를 압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잡초를 뽑아 주어야 하기는 하는데, 그런대로 재미를 붙이고 있다.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며 목표물을 제거해 나가듯이, 나는 잡초 뽑는 신공을 키우고 있다. 꽃과 잡초를 잘 구분 못해서 꽃 뿌리를 뽑아내는 경우도 있고, 네 잎 클로버를 키워내는 토끼풀이 그렇게 악착같은 잡초인지 새삼 확인하며 미워하기도 하기는 하지만, 잔디의 힘이 잡초보다는 더 압도적인 것 같다. 추운 곳이라 잔디 자라는 속도도 별로 빠르지 않아 1년에 1-2회 잔디 깎기만 해 주면 잔디의 모양도 적당히 유지된다. 

 

 이렇게 잔디 3단계를 유지하며 즐기며 노력하고 있던 어느 날, 인식하게 된다. 잔디가 문제가 아니라 흙이 문제다. 흙은 온통 씨 덩어리이다. 온갖 잡초가 아니라 온갖 꽃을 피우고 또 피워낸다. 잔디가 골프장도 아닌데 조금 다른 꽃이 함께 하면 어떠리오. 10년이 지나면 잔디도 순응하고, 나도 순응한다.  봄이 되면 몽실몽실 올라오는 온갖 풀들을 애정하며 즐기게 된다.  그렇게 태평하게 함께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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