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살다
householic 1. 눈이구나
눈은 어디에도 다 내리는 것인데 이곳에 살면서 맞이하게 되는 눈은 무언가 새롭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반갑다가, 더 내리기 시작하면 출근길에 길 미끄러울 생각에 걱정하다가, 더 많이 내리기 시작하면 에라 그래 이 김에 고립되면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있어 보지 뭐. 이렇게 내려놓게 된다. 그러고 나서 펑펑 아주 펑펑 내리는 눈을 쳐다본다. 밤에 내리는 눈은 잘 안 보이는데 높은 곳에 가서 가로등 주변을 관찰하면 흩날리는 눈의 양을 가늠할 수 있다.
눈이 온다.
아침에 만나는 풍경은 전혀 새로운 풍경이다. 집 위치가 조금 떨어져 있는 때문이겠지만 정말 조용하고, 차분하고, 아름답다. 마당을 덮은 눈부터 시작하여 저 치악산까지 덮어버린 새하얀 눈의 이어짐이 전달하는 그 고요함이란. 지나가는 차도 없고 그렇게 내린 채로 멈춰있다. 평소에는 별로 기민하지 않고 느리게 느리게 사는 남편이 머플러와 장갑으로 단단히 보온 무장을 하고 카메라를 챙긴다. 먼 산의 눈 풍경도 찍고, 앙상한 가지나 스러져 버린 잎 새에 간신히 소복하게 쌓인 눈을 근접 촬영하기도 하면서 한참 있다 들어올 것을 나는 안다.
나는 그대로 눈 풍경과 함께 멈춰있다. 이럴 때에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더 필요하다. 하염없이 쳐다 볼 뿐이다. 저 멀리 치악산, 새하얗게 고요한 마을과 길 그리고 마당의 소나무까지 이어지는 하얀 풍경. 가끔 홀짝이며 커피를 마시는 것 외에는 무념무상. 고요하고 적막하고 그래서 참 좋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다음 날 여전히 아까워서 밟지도 않은 하얀 눈에 어지러운 작은 발자국이 가득하다. 마당에 내놓은 먹이를 먹으러 길냥이 한 무리가 다녀갔나 보다. 고양이 발자국은 얼마나 앙증맞은지 그 역시 그림이다. 눈이 한 번 쌓이면 우리 집 마당은 온 겨울 동안 눈밭이다. 산기슭 옆이라 도통 눈이 녹지 않고, 슬쩍 녹으려고 하면 다시 눈이 다시 흩뿌리니 겨울 내내 어쩔 수 없이 눈 세상이다.
눈이 쌓인 겨울 마당은 낮과 밤 구분 없이 환하고 밝은 것도 특색이다. 잠이 쉽게 들지 않는 밤 부스럭 일어나서 창문가에 다가가 서 있다가 깜짝 놀란 적이 몇 번 있다. 창 밖에 너무나 환한 것이다. 언젠가는 벌써 아침이 되었는데 내가 늦잠을 잤나 하고 놀랄 때도 있었다. 하얀 눈에 반사된 세상은 한 낮 같이 정말 밝다. 특히 보름달에 눈까지 쌓인 저녁은 저 빛으로 책도 읽을 수 있겠구나 느낄 정도로 밝다. 새삼 형설지공이 왜 가능한지 몸으로 체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눈이 오면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답고, 밝고 환하다는 것을 이곳에서 새삼 그리고 매해 감탄하며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