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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파인 Jan 31. 2023

여성 기억 1930
01 경성 독신여성 합숙소 이야기

시대를 사색하다

     

   1930년대 경성 독신여성 합숙소 풍경이라니 궁금함이 생기는 제목이었다.  기사는 여성들만 모여 살고 있는 「아빠-드, 멘트」 즉, 아파트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간 기자의 탐문에서 시작된다.     


   종로보신각 앞에서 여성들만 산다는 아파트를 찾아 물어보니 화신백화점의 옆골목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백화점 모퉁이를 돌아 들어갔지만 잘 찾을 길이 없어 설렁탕 배달 가는 배달부에게 물어보나 알지 못한다는 대답을 듣는다. 기자는 배달부가 ‘ 새 시대의 이 신선하고도 경쾌한 집단생활적 단위체’를 모르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골목으로 들아간다. 대동인쇄회사를 지나 공평주점을 지나 전동식당 옆을 지나... <근우회 본부>라는 간판이 있는 건물까지 도착한다. 그러다 아닌 것 같아 다시 돌아서서 찾아본다.  

   

  당시 일본 동경에는 독신여자들이 모여사는 합숙소가 늘어가고 있으며, 은행 여사무원에서 여교원, 여급, 무산정당의 여류투사와 문인까지 다양한 층의 여성들이 사는 아파트가 유행한다고 하였다. 이 이파트는 대개 방이 100여 개 되고 공동식사장, 공동목욕탕, 공동세탁장 그리고 도서실이나 신문열람실이 있고, 조금 더 시설이 갖추어진 곳은 <육아홈>까지 두어 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안주한 여성들은 걱정 없이 자신의 직업에 힘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아파트가 경성에 생겼다는 풍문인데 아직 그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호기심이 생길만하다. 골목을 돌아 나가다가 마침내 짐작되는 곳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기자가 그곳에서 첫 번째 마주친 사람은 근우회의 심은숙이라는 여성이다. 근우회는 1927년 여성들이 중심이 된 독립운동과 여성운동 단체이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여성들이 모여 여성의 권익과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맹렬하게 활동한 단체이고 경성은 물론 지역 곳곳에 지부를 결성하며 확대되었던 전국 조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어 근우회의 우운봉 씨를 만나게 되는데, 무엇을 하나 여쭈어보니 다 함께 놋그릇을 닦고 있다는 대답이다. 기자는 구체적인 생활방식이나 규율 등 궁금한 것이 많았으나 이 아파트 시설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입주 여성도 몇 명 안 되고 이제 막 공동생활을 시작한 상황이라고 한다. 단지 거주자는 독신여성이면서 직업여성이 대부분으로 여교원, 여사무원, 사회운동가들이 새로운 근대식 아파트의 생활방식을 꾸려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이것만으로도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라며 기사를 끝맺고 있다.      

  

  이 기사를 읽으며 탐문한 기자만큼 나도 여러 궁금증이 생겼다. 이 합숙소는 이후 어떻게 운영되었을까? 여성들의 공간을 만든 주체와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아파트에서 살았던 여성들은 우리 사회의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나갔을까? 이 시설에 대한 궁금증은 많았지만 이후 기사에서 이에 대한 더 구체적인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아마 본격적으로 연구하면 더 알아낼 수 있겠지만, 이 작업은 추후로 미룰 수밖에 없겠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싱글 여성들이 늘어나고, 취업을 하고 있는 여성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서울의 힘겨운 주거환경 때문에 대안적인 공동생활 방식을 만들어가는 청년들이 있다는 소식을 가끔 듣게 되지만 여학생 기숙사가 아닌 여성들만의 아파트라는 형태의 생활 및 주거 방식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1930년대 여성들의 자유와 독립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새로운 생활 및 주거방식을 선택하고 실행한 이 여성들이 만들고 싶었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 여성들이 만들고 싶었던 여성들의 공동체와 환경은 지금은 이루어졌을까?  여러 생각과 상상을 하게 만든 경성 독신여성 합숙소 풍경이었다.    

          

주)   "京城 獨身女性 合宿所風景" <삼천리> 제13호,  1931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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