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유럽 여행에서는 지난 여행에서와는 달리 유독 나의 시선을 빼앗아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매일 마주하는 반려견이다. 분명히 지난 여행에서도 무수히 많은 반려견을 마주쳤겠지만, 전혀 기억에 남지 않았었다. 반면 지금은 매일 반려견이 눈에 띈다. 덩치가 큰 친구부터 작은 친구까지, 견종도, 성별도 다른 친구들을 매일 만난다. 불과 5년 만에 유럽의 반려견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는 않았을 테니, 분명히 나의 기억이 왜곡된 것이 틀림없다.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나의 시선을 빼앗아 가는 이유는 나 역시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 반려견, '꿈이'와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3살의 나이에 군 생활을 시작한 나는 입대 후 100일이 지나서야 신병 위로 휴가를 나오게 되었다. 입대한 지 겨우 100일이 지났지만, 우리 가족은 이사를 마친 상태였고, 거기에 더불어 집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반려견 '꿈이'였다.
사실 ‘꿈이’가 오기 전부터 우리 집은 전부터 반려견을 키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반려견을 찬성하는 어머니와 형 그리고 반려견을 반대하는 나와 아버지로 나뉘어서 지속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논의를 했지만 쉽사리 결론을 맺지 못했고, 마침 반려견 키우기를 반대하던 내가 군 입대로 자리를 비우게 되자 형이 행동대장이 되어 '꿈이'를 분양받아 온 것이었다.
내가 반려견을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책임지고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은 각자 자신의 스케줄을 감당하기도 벅차서 가족 외식을 하려고 하면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 겨우 가능할 정도다. 게다가 각자가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에 반려견의 식사 및 산책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마땅치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단순히 반려견을 키우는 것 이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주변의 반려견 키우는 사람을 통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없는 사이에 일은 벌어졌고, 너무도 사랑스러운(겉보기는 그렇다) '꿈이'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반려견과 함께하며 가장 기쁜 점은 언제 내가 집에 들어오든 반겨준다는 것이다. 늦은 밤에도, 이른 아침에도 '꿈이'는 항상 집으로 들어오는 나를 반겨주었다.
비록 군 생활 덕분에 새끼였던 '꿈이'가 성견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진 못했지만, 우리 집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했다. 나와 함께 반려견을 반대하던 아버지는 막상 '꿈이'가 집에 오자 언제 자신이 반려견 키우기를 반대했냐는 듯 가장 예뻐해 주신다.
하지만 내가 걱정했던 것처럼 '꿈이'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긴 데다 훈육보다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터라 사회성이 무척 결여된 상태이다. 남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결국 반려견을 키우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하루빨리 가족 구성원 모두가 책임져서 교육을 시키고, 산책을 비롯한 기본적인 의무를 다해야 할 텐데 여전히 걱정스럽다.
어쨌든 '꿈이'가 우리 집의 새로운 식구로 들어온 지도 어느덧 4년 차. 이제는 가족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명절에 한 번씩 보는 친척보다는 더욱 가족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걱정되었던 것이 바로 '꿈이'였다. 우리 집에서 가장 바쁜 아버지와 형이 집에 남아있고, 가장 한가했던 나와 어머니가 여행을 떠났으니 '꿈이'의 밥과 산책은 누가 담당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형의 걱정은 거의 하지 않고 '꿈이' 걱정만 가득한 상태로 여행을 출발했다.
'꿈이' 걱정이 커서 그런지 여행에서 마주하는 반려견을 볼 때면 '꿈이'가 계속 떠올랐다.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아버지 또는 형과 산책도 잘하고 있는지, 목욕은 제때 하고 있는지, 동물병원도 정기적으로 가고 있는지 등 별생각이 다 드는 요즘이다. 다행스럽게도 가끔 가족 채팅방에 '꿈이' 사진이 올라오긴 하지만, 여전히 걱정은 계속된다.
직접 마주한 유럽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반려견 문화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있었다. 지하철과 버스 트램을 비롯한 교통수단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어느 공원에 가도 반려견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발견한 반려견 교통 티켓이었다.
빈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반려견 티켓이 판매되고 있었다. 심지어 반려견과 어린아이의 금액을 동일하게 책정하고 있었다. 반려견 티켓이 나에게 유독 인상 깊었던 이유는 반려견 티켓을 판매함으로써 결국 반려견의 가족뿐 아니라 일반 승객도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반려견과 함께 지하철 또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케이지에 넣어야만 가능하다.(시각 장애인 안내견을 제외하고는) 만약 케이지에 넣지 않는다면 주변 승객들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 품에 안고 타거나, 다른 승객들의 눈총을 받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어떤 누군가는 반려견과 함께 지하철을 이용하고 싶지만, 주변 승객에게 불편함을 줄까 걱정되어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경우처럼 반려견의 티켓을 정당하게 판매함으로써 반려견의 가족은 정당한 권리를 얻게 되고, 일반 승객들은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반려견의 티켓 가격만큼의 금액이 고스란히 대중교통의 질을 향상하는 데 사용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내가 반려견을 키우는 입장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반려견 티켓이 무척이나 좋아 보였고, 한편으로는 몹시 부러웠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반려견이 꼭 케이지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 보호자와 반려견 모두에게 만족감을 줄 것 같았다.
물론 한국에 반려견 티켓이 있다고 한들, '꿈이'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사회성이 부족한 '꿈이'는 우리 가족과 몇 명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짖기 바쁘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뿐 아니라 케이지에 들어가는 것 역시 무서워하고, 싫어해서 여러 번 시도해봤지만, 여전히 겁낸다. 그런 '꿈이'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경우에 택시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택시를 타거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부탁해서 자가용을 이용하곤 한다.
'꿈이'를 케이지에 넣지 않고 품에 안아서 교통수단을 탈 수 있다면 혹은 '꿈이'와 함께 걸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면 '꿈이'의 안정에도 도움이 될 테고 나 역시 그 방법이 더욱 편할 것 같다. 반려견을 키우는 입장에서 정당하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제공된다면 오히려 무척 기쁠 것 같다.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 선택지를 누림으로써 얻어지는 효용뿐 아니라 언제든 선택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든든함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반려견의 숫자가 늘어남에도 아직 반려견 문화가 올바르게 정착되지 않아서 나타나는 문제 역시 무척 많다. 반려견과 산책 시에 목줄을 착용하지 않는다거나, 배설물을 처리하지 않는 등의 문제는 연일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속적으로 반려견이 증가하는 현실과 동시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현실을 지켜만 보는 것도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려견의 교육뿐 아니라 반려견을 키우는 주인을 교육하는 일,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일반 시민들을 교육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오스트리아의 지하철을 타면서 그 어떤 반려견도 사람을 보고 크게 짖거나,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편해 보였다. 주인과 함께해서 행복해 보였다. 아직 너무도 멀게 보이지만 대한민국에도 반려견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되길 바란다. 반려견과 주인 그리고 일반 시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반려견 정책이 계속 나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