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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Jul 24. 2019

예약을 안 하면 몸이 고생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은 형과 함께 여행했을 때와 다르게 일정을 무척이나 여유롭게 준비했다. 대도시, 수도 위주로 일주일씩 머물면서 한 도시를 가더라도,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많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꼭 많은 도시를 가고, 많은 나라를 가야만 여행이 즐거운 것은 아니라는 것, 여행의 즐거움은 꼭 새로운 것을 즐기는 것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배웠던 지난 여행이 없었다면 이번 여행 역시 욕심으로 일정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5년 전 형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나는 3개월짜리 유레일 패스로 이곳저곳을 마음껏 방문했더랬다. 괜찮다는 소도시는 모두 방문해보고 싶었고, 많은 배경 속에서 사진을 남김으로써 내가 그곳에 가봤다는 증거를 만들고 싶었다. 마치 한 도시를 방문하는 것이 여행의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짐을 풀고 이동하는 번거로움조차 고려하지 않고 일정을 지속해나갔다. 3개월짜리 유레일패스는 우리에게 충분한 여유를 선사했지만, 초보 여행자는 여유를 즐기지 못했고 스스로를 혹사하는 것을 택했다.  

지난 여행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짧게라도 꼭 다시 방문하고 싶었던 도시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다. 암스테르담을 꼭 다시 가고 싶었던 이유는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때문이었다. 지난 여행에서 수많은 미술관을 가봤지만, 지난 여행에서 방문했던 미술관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바로 반 고흐 미술관이었다. 암스테르담의 많은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반 고흐 미술관이 나에게 선물한 기분 좋은 충격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내가 느꼈던 충격과 놀라움을, 내가 경험했던 행복을 어머니도 동일하게 경험하셨으면 하는 욕심에 암스테르담을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일정에 넣었다.    

우리가 암스테르담에 머무는 시간은 고작 2박 3일. 심지어 첫날 오후 비행기 도착, 셋째 날 오전 비행기 출발로 사실상 우리가 암스테르담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은 하루밖에 없었다. 꼭 다시 방문하고 싶었던 반 고흐 미술관과 어머니가 가고 싶으셨던 안네 프랑크 하우스를 모두 다녀오려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했다. 암스테르담은 도시 자체가 크지 않지만, 도시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구석구석 볼 것이 많은 도시다. 여유롭게 일정을 잡았다면 하이네켄 체험관도 근처 풍차마을도 다녀올 수 있었겠지만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스히폴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고 짐을 풀자마자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보통 숙소를 옮기는 날은 짐을 싸고 푸는 과정 때문에 무척 번거롭기 때문에 숙소에 도착해서 남은 하루를 쉬면서 보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의 빠듯한 일정 때문에 우리는 무리해서라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여행 막바지라 어머니의 체력은 무척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별수 없었다. 차라리 첫날 무리해서 반 고흐 미술관을 다녀오고 둘째 날을 조금 여유롭게 움직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데, 일정이 너무 촉박해서 어머니께 괜히 죄송스러웠다.      

반 고흐 미술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구글 맵에서 확인한 반 고흐 미술관의 운영 시간은 오후 6시니까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반 고흐 미술관에 도착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이 무척 적었다. 분명히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는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할 정도 유명 관광지였는데, 뭔가 이상했다. 나는 약간 의아한 마음을 가졌지만, 평일이니까 그럴 수 있지 하면서 매표소로 갔다. 그런데 웬걸. 매표소 직원은 오늘 티켓이 모두 팔렸고, 티켓은 오직 온라인에서 구매가 가능하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급히 핸드폰을 켜서 반 고흐 미술관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다음 날 티켓 구매를 위해 온라인 예매를 누르니, 이미 다음 날 티켓은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나에겐 이틀밖에 없는데, 티켓을 살 수 없다니.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꽤나 스스로 우쭐해졌었다. 미리 숙박과 각종 티켓을 준비하면서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를 많이 누렸었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는 마치 그 여유가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현명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다고 착각했다. 내가 누리는 여유가 내가 잘해서 얻은 것처럼 착각했고, 스스로를 여행에 능숙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매표소 직원에게 내일 티켓도 다 팔린 것 같다고, 혹시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매표소 직원은 마치 나 같은 관광객을 자주 봤다는 것처럼, 오후 5시가 되면 다음 날 티켓이 조금 더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오후 5시까지 30분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3시간 같은 30분이 흐르는 동안 애꿎은 핸드폰의 새로 고침 버튼을 눌러댔고, 무한에 가까운 새로 고침 버튼 타격의 결과 가까스로 다음 날 입장 티켓을 살 수 있었다. 티켓을 구입하고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우쭐했던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서 현재를 망칠 뻔했던 나 자신이 한심했다.     

어머니에게 내가 경험했던 감동과 행복을 드리고 싶었지만, 오히려 과정에서 어머니에게 걱정을 드렸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항상 그렇듯 어머니는 약간 아쉽지만 괜찮다고, 꼭 보지 않아도 된다고, 오히려 자신은 괜찮은데 실망했을 내가 더 걱정된다고 하셨다. 좋은 것을 드리고 싶었고, 좋은 경험을 어머니가 하시길 원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여행 내내 자잘한 곤란함은 계속 존재했었다. 모든 것을 미리 다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예약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곳을 못 간 적도 많았다.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의 완벽하지 않음에, 준비되지 않음에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몸이 고생한다는 것. 예상치 않은 것이 반복되는 인생이 때로는 즐겁지만, 나는 그런 즐거움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나는 자잘한 걱정에도 크게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것. 이런 성격을 가진 내가 여행을 준비하는 것은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과정에 직접 몸소 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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