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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Jul 25. 2019

참 이상한 하루였다

오늘은 참 이상한 하루였다.     


오늘은 암스테르담에서 런던으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런던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여러 개가 있지만, 나는 시간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효율적인 비행기를 선택했다. 겨우 1시간 남짓한 비행이지만, 항상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긴장감이 엄습한다. 아무리 짧은 비행이라고 한들, 비행은 비행이니까. 나는 보통 비행기에 탑승하기 2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한다. 자칫 잘못해서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할 경우 생기는 문제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공항에 빠듯하게 도착하면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미리 공항에 가서 기다리는 것이 나는 마음이 편하다.  

전날 우리는 비행기가 출발하기 2시간 전에 공항으로 가기로 이야기했다. 비행기 출발 2시간 전까지 공항에 도착하는 것에는 공항까지 이동하는 시간과 씻고 짐을 챙기는 시간이 포함되지 않았다. 즉, 우리는 적어도 비행기 출발 3~4시간 전에는 일어나서 준비해야 했다. 우리는 넉넉하게 비행기 출발 4시간 전으로 알람을 설정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난 늦잠을 자버렸고, 시간을 확인하니 비행기가 출발하기 2시간 전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우리 숙소에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까지는 30분 남짓한 거리였다는 것. 우리는 씻을 새도 없이 빠르게 짐을 챙겨 공항으로 이동했다. 

비행기를 타는 것도 중요했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공항에서 택스 리펀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택스 리펀은 그 나라에서 산 물건을 그 나라에서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 부가세와 특별소비세를 환급해주는 제도이다) 우리는 지금껏 짐이 늘어나는 것이 두려워서 여행하는 동안 많은 물건을 사지 않았었다. 하지만 반 고흐 미술관의 기념품은 작으면서도 너무 예뻤고, 이 예쁜 물건들은 나의 구매욕을 자극했다.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 듯 각종 기념품과 선물을 사고 나니 1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 나왔고, 이번 여행 처음으로 택스 리펀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했다. 반 고흐 미술관 직원은 여행 기간 중 유로를 사용하는 마지막 국가인 네덜란드에서 택스 리펀을 받아야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고(영국은 파운드, 아이슬란드는 크로나를 사용), 우리는 스히폴 공항에서 택스 리펀을 받고 가는 것으로 계획했다. 하지만 우리는 늦잠을 잤고, 출발 2시간 전은커녕 1시간 전에나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짐을 부친 뒤에 택스 리펀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택스 리펀 줄이 너무 길었다. 지금까지 갔던 모든 공항의 택스 리펀 줄이 이렇게나 길었었나 싶을 만큼 너무 길었다. 당황한 나는 어머니를 택스 리펀 줄에 세운 뒤 급히 항공사 카운터로 가서 짐을 부쳤다. 짐을 부치고 돌아왔지만, 줄은 여전히 길었고, 아직도 20~30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이제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 겨우 1시간 10분 남짓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 경우의 수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택스 리펀 때문에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상황과 무사히 비행기를 타는 상황. 당연하게도 난 최악의 경우를 더욱 집중적으로 상상했고, 비행기를 놓치면 오늘 하루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추가 비용은 얼마일지를 계속 생각했다. 20분가량 계속 최악의 경우를 상상한 뒤에야 겨우 우리 순서가 찾아왔다. 나는 여권과 비행기 탑승권을 담당 직원에게 제출하고 택스 리펀을 요청했다. 직원은 나에게 혹시 암스테르담이 유럽 여행의 마지막 국가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암스테르담이 마지막은 아니지만, 유로를 사용하는 마지막 국가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담당 직원은 택스 리펀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국가에서 받는 거라고 대답하며, 너희는 영국에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답을 들은 나는 무척 당황했다. 가뜩이나 시간도 얼마 없는 상황에 차례를 기다렸는데 택스 리펀을 이곳에서 받을 수 없다니. 결국 나는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한 셈이 되었다.      

끝없는 자괴감에 빠지고 싶었지만, 자괴감에 빠질 시간조차 우리에겐 없었다. 우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출국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수화물 검색대에도 줄이 길었고, 출국 심사장에도 줄이 너무 길었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새치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우리는 조급한 마음을 지닌 채 줄을 기다려 출국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마무리했다. 모든 것을 마무리한 시간은 비행기 출발 30분 전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비행기가 정시에 출발하기 위해서는 승객이 모두 탑승해야 하고, 짐이 모두 실려 있어야 한다. 정시 출발을 위해서 탑승 게이트는 통상적으로 출발 30분 전이면 닫힌다. 우리는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을 하며 게이트로 달려갔다. 

게이트에 도착해보니 승무원은 큰 목소리로 비행기가 1시간 연착되었다는 소식을 전달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승객들은 이런 일이 너무도 자주 있다는 듯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게이트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뒤에 비행기 탑승이 시작될 것이라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돌이켜보면 이번 여행에서 오늘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비행기 연착이 없었고, 모두 정확한 시간에 출발했다. 우리는 오늘 처음 공항에 오는 시간이 늦었고, 오늘 처음 택스 리펀을 하겠다고 시간을 허비했으며, 오늘 처음 비행기를 놓칠 뻔했지만, 오늘 처음 비행기가 연착되면서 다행히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

어찌 보면 억세게 운이 좋은 하루였고 이상한 하루였다. 마치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계획된 이야기의 한 장면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났고, 나는 이 자연스러움이 낯설었다. 누군가 나와 어머니를 멀찍이 지켜보면서 우리의 상황에 맞춰 우리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승객은 미리 공항에 도착해서 1시간의 연착을 마주했을 테고, 그 사실이 무척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들의 일정이 어긋난 것에 대해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1시간 연착의 가장 큰 수혜자는 나와 어머니일 것이다. 만약 1시간 연착이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 생겼을지 지금도 생각해도 아찔하다. 

나는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예상하지 못한 것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여행이라고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예상치 못한 기쁨, 예상치 못한 슬픔, 예상치 못한 경험, 예상치 못한 놀라움이 계속, 끝없이 펼쳐지는 것이 바로 여행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장 큰 교훈은 그 어느 것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때로는 두렵고, 걱정되지만 결국 즐거운 일이다. 나는 왠지 오늘 하루는 수혜자의 여행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 오늘 하루는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그대로 누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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