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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Jul 30. 2019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 타인을 향한 따뜻한 환대

이번 여행의 마지막 국가이자, 가장 큰 기대를 안겨준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다. 지금껏 여행했던 여타 국가들과는 달리 아이슬란드를 유독 기대했던 이유는 자연을 그대로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한국과 비슷한 국토면적이지만, 인구는 한국과 몇백 배의 차이가 나는 아이슬란드. 내가 사는 동작구의 인구보다도 적은 34만 명이 아이슬란드 곳곳에 펼쳐져 살고 있다. 국토 넓이는 한국과 유사하지만, 인구는 서울의 한 구와 비슷하다니 무척 신기했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차를 빌려서 다닌다. 여행자들은 차를 빌려서 국토를 원으로 한 바퀴 연결한 1번 국도 링로드 투어를 한다. 나 역시 링로드를 한 바퀴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여행을 준비했다. 다만, 유일한 걱정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 운전면허를 취득한 이후 처음으로 운전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여행한 모든 숙소를 몇 달 전에 예약을 완료했던 것과는 달리 아이슬란드는 하루에 얼마만큼 이동할 수 있을지 가능조차 어려웠고 결국 숙소 예약을 하나도 하지 않은 채로 아이슬란드 땅을 밟았다.     

우리는 아침 일찍 런던을 떠나 아이슬란드 케플라비크 공항에 도착했고, 미리 예약해 놓은 렌터카 업체에서 9일 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줄 렌터카를 만났다. 한국인 맞춤 서비스인 것처럼 현대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렌터카를 빌리면서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전달받았는데, 가장 특이했던 것은 항상 전조등을 킨 채로 운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직접 운전을 해보니 왜 전조등이 필수인지 알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 짧게는 5분 길게는 20분까지도 건너편에서 오는 차량을 만나지 못하기도 한다. 차가 보이지 않는다고 방심하다간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모든 차량은 전조등을 켜놓은 채 다녀야 했다. 아이슬란드의 날씨 역시 5분마다 바뀐다고 할 정도로 예상할 수 없는 날씨라서 전조등이 필수인 것 같기도 하다.          


여러 주의사항을 전달받고 본격적인 운전에 나섰다.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수도 레이캬비크까지 1시간 남짓 운전하는 동안 7년 만에 잡는 핸들에는 계속 땀이 차기 바빴다.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 생초보의 운전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우리는 하루의 운전할 거리를 미리 정해놓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기에 최대한 초반에 무리해서라도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내게 있었다. 이런 압박감 때문일까. 잠시 휴식을 취할 겸 들린 곳에서 인생 첫 사고를 경험했다.

아이슬란드의 도로는 대부분 왕복 2차선인 데다 도로가 약간 언덕 형태로 되어 있다. 흙을 쌓아 올려서 지반을 만들고 그 위를 포장한 형태로, 쉽게 말하면 도로를 제외하고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핸들 조작을 잘 못 하는 사람이 운전하다가는 도로를 이탈하기 무척이나 쉬운 곳이기도 하다. 

나 역시 휴게소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핸들 조작 미숙으로 도로를 이탈해 포장되지 않은 곳으로 차가 빠지게 되었다. 다행히 나무가 우거진 지역에 빠지게 되어 차는 금방 멈출 수 있었지만, 문제는 차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후진하려고 해도 헛바퀴만 돌뿐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사고가 난 뒤 어머니와 나는 차 밖으로 나와 한숨을 쉬며 대처 방안을 고심하고 있을 때, 지프차 한 대가 우리 쪽으로 찾아왔다. 차에서 내린 할아버지는 유창한 영어로 우리가 괜찮은지 물어본 다음, 자신은 저기 보이는 레스토랑 주인이라며 우선 많이 놀랐을 테니 레스토랑에서 잠시 쉬는 게 어떤지 물어봤다. 우리는 당신이 베풀어준 호의가 정말 감사하지만, 일단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렌터카 업체에 전화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현지 언어에 서툰 우리들보다는 자신이 직접 경찰에 연락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면서 경찰이 오게 되면 아마 렌터카 업체에 연락해서 대처해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큰 호의를 받게 된 우리는 그의 레스토랑에서 1시간 남짓 경찰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고가 난 장소로 경찰관이 찾아왔고 나는 처음으로 사건 경위서를 작성했다. 사고 경위서를 쓰면서 나는 도대체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답답한 마음과 동시에 앞으로의 여행이 단단히 꼬였다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심란한 마음이었다. 사건 경위서를 모두 작성하고 후속 처리를 위해서 렌터카 업체에 연락해보기로 했다. 이 역시 현지 언어와 영어에 서툰 내가 아닌 먼 길을 달려온 경찰관이 도와주었다. 평일이 아닌 주말이라서 그런지 렌터카 업체는 전화를 금방 받지 않았고, 나는 더욱 당황했다. 

4번의 시도 끝에 전화를 받은 렌터카 회사는 새 차를 보내줄 테니 2시간 정도 그곳에서 대기하라고 전해왔다. 너무도 고마웠던 것은 내가 영어 실력도 형편없고, 아이슬란드어 역시 하나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사고가 났다면 현재 위치를 비롯한 모든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낯선 타국에서 첫 사고를 경험한 나로서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당황스러웠고 그저 지금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고 접수와 전화 통화를 도와준 친절한 경찰관은 떠났고, 다시 레스토랑 주인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지프차로 차를 끌어올리자며 우리를 다시 사고 현장으로 인도했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움직이지 않던 차는 지프차로 연결한 뒤 당기자 금세 끌려 올라왔고, 우리는 차를 다시 도로 위로 올릴 수 있었다. 할아버지 사고 난 차의 상태를 확인해본 다음 약간의 시범 주행을 하더니 차가 조금 상하긴 했지만, 운전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직접 렌터카 업체에 연락할 테니 이 차를 그대로 운전하는 게 어떤지 물어봤다. 이미 휴게소에서 2시간 남짓한 시간 발을 묶인 우리에게는 그 말이 마치 천사의 목소리처럼 들렸고, 엄청난 도움을 준 그에게 감사를 표하며 어떻게 사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이런 사고를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닌 듯 괜찮다고, 앞으로 남은 여행을 즐겁게, 안전하게 마무리하길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거듭 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그곳을 떠났고 그의 친절 덕분인지 우리의 남은 여행 기간 동안 그 어떤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만난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엄청난 친절을 베풀면서도 그것을 받는 이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히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고, 그들의 마음의 방향은 사람에게, 낯선 이방인에게 향해있었다. 내가 마주한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낯선 이에게 예상치 못한 환대와 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친절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었다. 항상 이해관계를 생각하고, 손익을 고려해서 행동하던 나에게 레스토랑 할아버지와 경찰관은 정말이지 천사가 인간의 모습으로 잠시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나의 미숙한 운전 실력은 첫 사고를 기점으로 조금 성장했고,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다는 아이슬란드의 날씨 역시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두 명의 천사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준 환대는 단순히 우리의 상황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가짐과 우리의 미래의 여행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들 덕분에 아이슬란드 여행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두 천사는 여행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랜드마크도, 맛있는 음식도, 좋은 날씨도 아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임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의 시간은 여행이 아닌 머무름에 있다. 우리가 머무르는 익숙한 곳일지라도 어떤 이에게는 낯선 땅일지도 모른다. 사실 여행자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맛집도, 모든 정보가 모조리 담긴 지도도 아닌 누군가로부터 받게 되는 따뜻한 환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는 모두 언젠가 한 번쯤 여행을 떠날 것이고, 낯선 곳에 잠시 머물 것이기에 우리의 따뜻한 환대가 되돌아오기를 기대하며 지금 우리가 머무는 그곳에서 환대를 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겐 쉬운 일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니.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 타인을 향한 따뜻한 환대. 나의 아이슬란드 여행은 그들 덕분에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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