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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Oct 12. 2019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당신에게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65일 동안 유럽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야’고 누군가에게 말할 때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부럽다는 대답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어머니와 함께'라는 말이 추가되면 또 자연스럽게 힘들겠다는 말이 뒤따랐다. 

누군가에게 유럽 여행은 인생에서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기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사용해야만 얻어낼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 유럽 여행에서도 학교에서 받은 근로 장학금과 아르바이트 비용을 모조리 투자했던 기회였고, 이번 여행 역시 군 생활 동안 차곡차곡 모아둔 적금과 아르바이트, 대외활동에서 얻은 수입을 모조리 투자한 여행이었다. 

다른 여행지면 모를까. 유럽은 혼자 가거나 혹은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유럽에서 만난 한국인들 역시 대부분 혼자이거나, 또래와 함께 있거나, 단체관광객들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기로 했고, 다시 천천히 돈을 모으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돈을 모으기 시작하고 2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우리는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어머니와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체력적인 부분이었고, 그다음으로 걱정했던 것은 예산 문제였다. 여행이 끝날 무렵, 65일을 돌이켜보면 걱정했던 것처럼 어머니는 체력적으로 많이 지치셨지만, 다행스럽게도 여행 일정을 느슨하게 준비해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첫 번째 여행을 통해서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을 많이 알게 되어서인지 예산은 전혀 부족함 없이 계획했던 것보다 돈을 많이 남긴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가 처음 걱정했던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어머니 그 자체였다. 어머니는 곧 내 모든 걱정이었고, 변수였으며, 문제였다. 내가 생각했던 어머니, 내가 알고 있었던 어머니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이 여행에 함께하는 것처럼 어머니는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뭐든지 척척 해내실 줄 알았던 어머니는 실상 못하는 것이 무척이나 많으셨고, 단단한 언어의 장벽 탓에 여행 내내 위축된 모습이었다. 낯선 사람과 낯선 곳을 경계하셨고, 주문할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온몸이 두려움으로 가득 사로잡힌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평소에도 여행을 즐겨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는 방법을 모르셨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용기조차 없으셨다. 심지어 숙소에 도착해서 와이파이를 연결하는 방법을 모르셔서 매번 숙소를 옮길 때마다 어머니의 핸드폰 와이파이를 연결해야 했다. 나는 그런 어머님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어머니는 여행 마지막쯤 런던에서 핸드폰을 도난당하셨다. 어머니의 모든 것이 기록된 스마트폰이 사라졌을 때, 각종 아이디와 비밀번호, 공인인증서와 가계부를 비롯한 어머니의 삶 그 자체가 들어 있는 스마트폰이 사라졌을 때 어머니는 절망했다. 결코 어머니의 책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자책하기 시작했다. 물건을 훔쳐 간 사람이 아닌 물건을 빼앗긴 자신을 더 원망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하면서 어머니는 자신을 우울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핸드폰을 잃어버린 사람을 무척이나 많이 봤던 나로서는, 어머니가 핸드폰을 잃어버리셨다는 말을 듣고 바로 후속 조치를 생각했다. 다시 핸드폰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핸드폰 없이 보내실 2주일 남짓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기에, 돌이킬 수 없기에 그다음을 고민했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온 핸드폰에 공인인증서를 새로 설치하고 기존 공인인증서를 폐기하는 것, 어머니의 계좌에 있는 돈을 모조리 옮기고, 기존에 사용하고 있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모두 바꾸는 것과 같은 후속 조치를 고민했다. 어머니가 그 모든 과정을 혼자서 처리하는 시간은 내가 처리하는 시간에 비하면 너무도 길고 지난한 과정의 연속이라 생각했다. 그 이유는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어머니는 핸드폰을 새로 바꿨고, 그때 새 핸드폰에 공인인증서를 설치하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각종 앱을 설치한 것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와의 여행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 과정부터 여행을 끝마치는 순간까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고, 많은 스트레스 때문에 혼자서 마음을 정리하고, 화를 삭이기도 했다. 스스로 왜 힘든 길을 선택했을까 하는 후회도 가끔 했었다.

하지만, 어머니와의 여행 그 자체를 후회한 적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순간들은 나에게 너무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었고, 어머니가 지금까지 나 때문에 하셨을 희생과 고생에 비한다면 내가 지금 겪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어머니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았을 힘듦의 총량보다 함께 여행하면서 느낀 행복의 총량이 더 컸다. 때로는 답답했고, 때로는 후회했고, 때로는 힘겨웠고, 때로는 절망스러웠지만 결국 돌이켜보면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 함께하지 못했다면 나누지 못했고, 즐기지 못했고, 즐겁지 못했을 행복이 나를 위로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어머니는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평창에 다녀오셨다. 유럽 여행을 통해서 조금은 자신감이 생기신 걸까. 이제껏 여행을 전혀 모르다가, 이제야 여행을 조금 알게 되었다며, 건강할 때 더 많이 다녀야겠다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나는 다시 행복해졌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유럽 여행은 불가능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도전은 결국 성공으로 끝났고, 어머니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때로는 힘겨운 도전의 얼굴로 다가온다. 힘겨운 도전을 끝마친 뒤에 찾아오는 희열과 알게 모르게 성장해버린 내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서 어머니와 함께 떠난 65일의 여행은 한계에 도전하는 행위였고, 어머니와 나 모두를 성장시킨 힘든 과제였다. 그 모든 과제와 어려움을 무사히 마친 지금, 어머니와 나는 조금은 더 성장했기를 원한다. 조금은 더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 굳은살이 생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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