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65일의 여행은 5월 7일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면서 끝이 났다. 2달 전 여행을 시작하고, 지금 여행을 마무리하며 참 많은 생각이 나의 마음속에 머물렀다 사라졌지만 결국 늘 그랬듯이 여행은 좋은 것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감상이 짙게 남았다.
5월에도 코트를 입고 다녔던 런던과는 달리 다시 돌아온 한국은 무척 따뜻했고, 계절은 어느새 겨울을 지나 봄과 여름 중간이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익숙한 집 근처 정류장에 내린 뒤 2달 동안 함께했던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올라가며, 비로소 내 집에 다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우리가 집에 들어올 때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꿈이’는 2달가량 자리를 비웠던 어머니와 나에게 시위라도 하듯 우리를 낯선 이로 착각해 짖기 바빴고, 집안은 형과 아버지가 살기 최적화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빨랫대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는 옷들이 잔뜩 건조되고 있었고, 냉장고는 마치 처음 샀을 때 마냥 텅텅 비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음식 재료를 사다 놓는 사람은 어머니와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가족 중 가장 시간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고,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들이었기에 조금은 당연한 듯이 음식 재료를 사는 일을 도맡았다.
집안의 모습을 확인하자, 우리가 여행 하는 동안 아버지와 형이 어떻게 살았을지 조금은 선명하게 그려졌다.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지 않고, 대부분 밖에서 해결하거나 배달음식을 먹었을 것이다. 세탁한 뒤에 필요한 옷은 옷걸이에 걸린 상태 그대로 혹은 건조대에 널려진 상태 그대로 입었을 것이다. 어머니와 내가 자리를 비운 2달간 아버지와 형의 모습을 그려보자, 조금은 안쓰럽기도 한마음과 아주 많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여행을 선택하고,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어머니와 나지만 그 여행의 여파는 아버지와 형에게까지 미칠 수밖에 없으니까. 그것이 바로 가족일 테니까.
여행을 준비하고, 여행의 전반적인 계획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때면 많은 이가 아버지와 형 그리고 ‘꿈이’ 걱정을 하곤 했다. 그들이 선뜻 여행을 허락을 해줬는지, 둘이 사라지면 집안일은 어떻게 되는지를 묻곤 했다. 다 큰 성인 2명이 겨우 2달 동안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빈자리가 아버지와 형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 약간은 걱정도 되었다.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당연하게 감당하고 있는 집안일을 그들이 잠시 감당해보며 어머니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고,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조금은 가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우리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생각보다 집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두 달 전과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창밖 풍경이 조금 더 초록색이 되었다는 것뿐. 어머니와 내가 우려했던 난장판이 되어버린 집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나의 시선에서는 그랬고, 어머니의 시선은 확실히 달랐다.
어머니는 화장실에 잔뜩 생긴 물때와 주방 개수대에 남겨진 음식물 찌꺼기의 흔적을 지우기 바빴고,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절대 하지 않았을 이불 빨래와 한동안 입지 않을 겨울옷을 세탁소에 맡기는 일처럼 아버지와 형이 생각하지 못했지만, 꼭 필요했던 집안일을 시작하셨다. 그렇게 여행에서 돌아오고 약 5일가량 지난 지금, 우리 집은 조금 많이 깨끗해졌다.
여행 내내 많은 숙소를 지나며 한국에 있는 집을 그리워했다. 어느 시간에 들어와도 나를 반겨주는 ‘꿈이’와 내 손에 익은 주방 조리 기구, 내 몸을 편히 쉬게 해준 침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화장실과 나의 언어로 가득 찬 TV까지. 집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그리워지며 하루빨리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길 고대했다.
그렇게 시간은 가끔은 천천히, 대부분 빠르게 흘러 나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 놓았다. 조금은 달라져 있는 집안을 보며, 결국 사람은 집이 필요하다는 아주 당연한 명제가 떠올랐다. 마음 편히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은 힘들고 지쳤던 나에게 큰 힘을 주었고, 나를 다시 회복시켰다. 그 집에 돌아온 어머니도 나도, 집에 머물러 있던 형도 아버지도, ‘꿈이’도 모두 건강한 모습이라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