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이번 여행의 거점 역할을 하는 런던으로 돌아왔다. 매번 런던에 도착하는 공항이 다른 덕분에 런던의 공항은 모조리 방문하고 있다. 처음에는 히스로 공항, 두 번째는 루튼 공항, 아이슬란드 여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개트윅 공항으로 들어오게 된다. 한번 오기도 힘든 런던을 두 달 새 3번이나 방문하고 있다니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비행기를 탈 때면 나는 항상 창가 쪽 좌석이 아닌 통로 좌석을 선택한다. 비행시간이 길든지 짧든지 비행기는 타면 내리고 싶고, 내리기 가장 수월한 좌석은 통로 측 좌석이기 때문이다. 창가 좌석은 출발과 도착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쾌감도 행복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의 비행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이용했던 저가 항공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대부분 통로 측 좌석을 배정받았다. 별일 아니겠지만, 비행시간도 짧아서 큰 의미는 없겠지만 통로 측 좌석을 배정받을 때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딱 한 번 베네치아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비행기에서 창가 측 좌석을 배정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무척 인상적인 풍경을 만났다.
가끔 비행기 탑승을 위해서 게이트를 지나 이륙장까지 걸어가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연하게도 이륙장까지 걸어가는 길은 말 그대로 뻥 뚫린 길이다. 천장이 없는 길,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없는 길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문제가 없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은 무척이나 짜증 날 수밖에 없는 길이다.
부다페스트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은 마침 지붕이 없는 뻥 뚫린 길이었고, 그날은 마침 소나기가 퍼붓는 날이었다. 덕분에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에 여행객의 옷은 속수무책으로 젖을 수밖에 없었고, 우리를 포함한 모든 여행객의 표정에는 여행의 설렘보단 짜증으로 가득 찼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승객이 비행기에 올라탔고, 영어, 이탈리아어, 헝가리어 3개 국어로 안전수칙과 안내를 받으며 비행기는 이륙했다. 차창 밖에서는 소나기가 계속 내리고 있었고, 나는 그저 부다페스트에는 비가 내리고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승무원의 안내가 끝나고 조금 지나자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지면을 떠나 5분 정도 상승한 뒤에 안정 궤도에 진입했다. 창가 측 좌석에 앉은 나는 무척이나 당연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비행기는 구름 위를 운행한다는 것이었다. 비행기는 당연히 구름 위에 있기 때문에 비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행기가 움직이는 위치는 구름보다 위에 있었고, 비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태양과 가까이 있었다. 덕분에 나는 태양이 얼마나 밝고 강렬한지 경험할 수 있었다. 불과 5분 사이에 나는 소나기가 내리는 풍경과 강렬한 태양이 비추는 풍경을 연속적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5분간의 극적인 변화를 만나며 새삼 태양은 어디나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잠시 비가 내리고 있을지라도, 구름이 가리고 있을지라도, 눈이 내리고 있을지라도, 태풍이 불고 있을지라도 태양은 한결같이 먼 곳에서 자신의 강렬한 밝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삶에는 행운이 밀려올 때도 있었고, 불운이 밀려올 때도 있었다. 행운이 밀려올 때면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생각했고, 나에게만 조명이 비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불운이 밀려올 때면 나는 중심이 아닌 주변부 끄트머리에 밀려났다고 생각했고, 나에게는 조명이 아닌 어두움을 비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주목을 받지 못하던 사람이 주목을 받게 되는 경우 사용되는 속담이다. 지금껏 나는 언젠가 시기가 되면 쥐구멍에도 볕이 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5분 남짓한 짧은 비행을 통해 쥐구멍뿐 아니라 세상 모든 곳에 볕이 항상 공평하게 비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날씨와 인생을 연관 지어본다면, 행운이 밀려올 때는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날씨가 한없이 좋은 날이 지속되는 것이고, 불운이 밀려올 때는 잠시 구름이 끼고, 비가 오는 날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고 날씨가 좋지 않고, 언제까지고 날씨가 좋지 않지 않다는 것을 인생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다.
때로 나에게 불운이 밀려올 때면, 나는 오늘을 생각할 것 같다. 5분 남짓한 비행을 기억할 것 같다. 나는 나의 주위를 가득 뒤덮고 있던 비와 먹구름이 사라지면 햇볕은 나를 더욱 강렬하게 비춰줄 것이라고. 햇볕이 지금 나를 비추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가리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매일의 날씨를 종잡을 수 없고, 감히 날씨를 예상할 수 없지만, 햇볕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공평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