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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Jul 07. 2019

오페라 하우스에서 느낀 짧은 감상들

하나

오페라 하우스 공연장을 들어와서 처음 든 생각은 이곳에서 공연을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취미 같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공연을 대하는 예의일 수도 있지만, 오페라, 발레 등의 공연장에 오는 관객들은 격식 있는 옷을 입어야 했다. 물론 과거에 비한다면 무척이나 기준이 완화되었는지 청바지도, 운동화도 허용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정장과 드레스 차림으로 오페라 하우스를 방문하고 있었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는, 누가 봐도 여행자들로 가득 차 있는 입석에서 좌석에 앉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무척이나 신선한 즐거움이었다. 이토록 고급스러운 취미를 즐기는 저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상류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4인 가족이 마치 시상식에 온 듯 화장과 머리 풀 세팅을 하고 모두 정장과 드레스 차림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볼 때 이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공연장이든 경기장이든 어디서나 암표를 파는 사람은 존재한다. 오페라 하우스 밖에도 많은 이가 암표를 팔기 위해 작은 소리로 티켓을 외치고 있었다. 요즘은 정보의 홍수 시대라서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당일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입석 표 역시 가이드북을 조금만 찾아봐도 알고 구입할 수 있을 터.

입석 표를 구입하고 자리를 표시하고 잠시 밖으로 나오자, 공연 시작까지는 20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공연 시간이 임박해오자 암표상들이 더욱 조급해진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그중 한 암표상에 눈이 갔다. 마치 먹잇감을 찾듯 돌아다니는 암표상이 선택한 상대는 4인 가족으로 보이는 중국인 관광객. 중국인 관광객들은 내가 듣기에 무척이나 비싼 티켓값을 흔쾌히 지불하고 있었다. 이런 말이 적절할지 모르지만, 멋있었다. 

물론 암표라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이 상황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멋있어 보인 건, 그 정도의 금액을 흔쾌히 지불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다. 언제나 비용 대비 효율을 생각하는 나로서는 한편으로는 그들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언제쯤 나도 돈을 쓰면서 우선순위와 효율을 생각하지 않게 될까 생각했다. 

발레 공연은 처음 봤다. 물론 오페라 공연을 했었다 해도 처음 본 공연일 테다. 그만큼 나의 문화생활은 기껏해야 콘서트와 뮤지컬, 영화 등의 대중문화 생활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발레와 오페라와 같이 흔히 고급이라고 지칭하는 문화생활은 경험해본 적도 없었고,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비용이 무척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고, 격식을 차리는 것이 아직 어색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오페라하우스의 발레 공연은 음... 아직 이도 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식사로 스테이크 한 덩이를 준 것 같았다. 그만큼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 고급 음식이었다.       


발레 공연이 시작하고 도대체 무엇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당황하던 무렵, 수많은 발레리나와 발레리노가 나의 시선을 빼앗아 갔다. 아무런 대사조차 없어서 무엇을 표현했는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간단하게 내가 느낀 것을 표현하면 가장 중심이 되는 발레리나가 마치 선생님처럼 행동을 지시하면, 남, 여 2쌍이 중앙에서, 10쌍 정도가 무대 뒷부분에서 움직였다. 주 조연으로 따지면, 주연은 5명, 조연은 20명 정도가 되겠다.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무대 위 모든 이들의 동작은 군더더기 없었고, 발레를 알지도 못하는 발알못(발레를 알지 못하는)인 내가 봐도 그들의 실력은 출중했다. 열심히 공연하는 그들을 보며 재능과 노력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 하는 케케묵은 물음이 떠올랐다. 

가끔 유명한 운동선수의 발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 화려한 움직임과 달리 그들의 발은 갈라지고, 곪고, 휘어진 상태였다. 얼마만큼의 노력과 열심히 있었기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증명하듯 말이다.

중앙에서 공연하는 2쌍의 남녀와 뒷부분에서 공연하는 10쌍의 남녀는 아주 미세한 차이로 그들의 위치가 결정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공연 당일 결정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그들을 보며 그들이 했음 직한 노력의 양을 생각해봤다. 얼마만큼의 노력이 그들을 그곳으로 인도했을까.     

다섯

지난 3월 사우샘프턴과 토트넘의 경기를 봤다. 기대했던 손흥민 선수는 후반 중반쯤 교체되어 들어갔고, 아쉽게 공격포인트를 만들지 못한 채 팀의 패배를 그대로 지켜봤다. 경기가 끝나고 토트넘 선수들은 모두 라커룸으로 향했다. 홈팀 사우샘프턴 선수와 감독이 승리의 기쁨에 취해있었고, 패배한 토트넘 선수들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환희로 가득한 승리 셀러브레이션이 끝나고, 경기장의 관중들이 모두 빠져나갈 무렵 손흥민 선수를 비롯한 토트넘 선수 6~7명이 다시 경기장에 나타났다. 그들은 러닝을 시작으로 간단한 마무리 훈련을 시작했다. 모든 관중은 경기장 진행요원의 명령에 따라 경기장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그들이 마무리 훈련을 얼마 동안 진행했는지 난 알 수 없었다. 다만, 선수단 버스에 탑승한 시간으로 미루어보면 30분 정도 훈련을 더한 뒤에 나왔음을 예상해볼 수 있었다.

모두가 똑같은 움직임으로 완벽한 공연을 만드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은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했을까. 그들이 공연장에 서기까지, 공연 포스터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생각해봤다. 화려한 공연과 경기만 봤더라면 나는 재능을 노력보다 더 높게 쳤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손흥민 선수의 마무리 훈련과 발레 공연장에서 만난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를 보며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나의 미래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재능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말은 너무도 가혹하고 나에게 그 어떤 희망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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