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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Nov 21. 2022

글감이 없는 이유

인생이 즐겁고 아름다운 탓이다.

  힘든 일이 없으니 글이 써지지 않는다. 예술은 고통 위에 피어난다고 했던가? 고통이 사라지고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니 원하는만큼 글이 술술 써지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요즘 너무나 편하게 살고 있어서 그런가. 요즘 나는 인생의 황금기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나의 지나온 인생을 짧게나마 돌아보려 한다.

  나는 지금까지 마음속의 고통을 안고 살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늘 시험에 시달렸다. 고시 낭인이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떨었다. 남들은 다 쉽게 붙는 것 같은데 계속 떨어지는 자신을 원망했다. 시험을 내는 출제자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쌓였다. 이성이 점점 마비되고,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했다.

  시험을 여러 번 보면서 세상을 많이 배웠다. 사실 시험에 도전하기 전에는 실패나 두려움을 잘 몰랐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부족함 없는 집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당신이 하고싶은 일은 재쳐두고 자식이 하고싶은 일이라면 꼭 지원해주셨다. 나는 공부도 곧잘 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머리를 타고난건지, 점점 노력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때는 전교1등도 심심치않게 했었다. (자랑은 아닌 것이 학교가 공부를 못하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하지만 수능을 실패했다. 1등급이 아닌 다른 등급은 수능날 처음 받아봤다. 나는 늘 1등급이었다. 그게 늘 정말 신기했었는데, 역시 내가 인지해서 쌓은 실력이 아니면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꿈이나 원하는 장래가 없었던 나에게는 실패도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성적에 맞추어 교대를 들어갔다. 교대를 들어가고 처음으로 꿈이 생겼다. 선생님이라는 일이 직업 그 이상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고객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보였다. 교사가 되고 싶었고, 난생 처음으로 꿈이 생겼다. 그러나 꿈이 생겼다는 말은 노력해서 꿈을 지켜야 한다는 말과 같다. 나는 노력하는 방법을 몰랐다. 중학교, 고등학교 성적은 요행으로 얻곤 했었다. 정말 공부는 많이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성적은 늘 잘나왔다.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쉬웠다. 그러나 고시는 다르다. 내용을 암기해야한다. 끝도 없는 내용을 계속 암기하는 노력을 해야한다. 나는 노력에 서툴다.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꿈은 부서지고 나는 생전 처음 위기에 봉착했다. 정말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정말 힘든 시간을 지나, 결국 합격했다. (이 기간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 다룰 일이 있으리라 믿는다.)

  오랜 시간 시험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시험을 보지 않는다는게 얼마나 홀가분한지를. 나는 올해 겨울 시험을 보지 않았다. 11월은 나에게는 시험의 달이었다. 임용고시는 수능보다 한 주 먼저 치뤄지곤 하는데, 나는 그때 늘 시험장에 있었다. 겨울은 시험의 계절이었고, 고통의 계절이었다. 겨울이 풍기는 특유의 냄새를 시험을 준비하며 알았다. 겨울이 풍기는 차갑고도 매캐한 냄새. 그 냄새가 뼛속까지 스미면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곤 했었다. 올해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합격했으니까 더이상 볼 일이 없다. 나는 올해 교사가 되었다. 학교에 출근하고, 여러가지 취미를 만들게 되었다. 주말마다 영화관도 다니게 되었고, 등산도 다니게 되었다. 이런 소소한 기쁨이 매일 이어졌다.

  이런 기쁨이 있으니 글이 써질 리가 없다. 글은 고통 위에 써지는 것이니까. 글은 형편없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드디어 시험을 보지않는 겨울이 다가온다. 지금까지의 고통을 지울 행복한 겨울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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