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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Nov 29. 2022

이름을 불러주는 것

아이를 한 명의 인간으로 기억하는 것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진다. 빗방울이 잦아들며 찬 바람이 분다.

  아이들은 나에게 자신의 이름을 물어본다. 나는 늘 아이들의 이름을 외워서 불러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한 명이고 아이들은 많다. 이름도 자꾸 불러야 입에 붙는 법인데, 아이들을 일주일에 2시간 보는 나로서는 쉽지 않다. 아이들은 자신과 나의 관계만 기억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나와 200명의 관계다. 유지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나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저 이름만 불러주면 그걸로 좋다. 내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만 해주면, 아이들은 그걸로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작은 일에도 큰 기쁨을 느끼는 순수한 마음이 참 예쁘고 부럽다.

  오늘도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들은 나에게 어김없이 이름을 물어본다. 요즘 아이들의 이름은 내 동년배들과 많이 달라 외우기가 한결 더 어렵다. 외자 이름도 많고, 동글동글 특이하고 예쁜 이름들이다. 예쁜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예쁘게 자라난다. 아이들은 예쁘다. 행동 하나하나, 말씨 하나하나 다 예쁘다. 내가 어렸을 때보다 아이들은 훨씬 착하고 아이다워졌다. 교육의 힘일까, 아이들을 볼 때마다 경탄한다. 아이들은 나에게 늘 감동을 준다. 

  한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묻는다.

  선생님, 제 이름 뭐예요?

  낭패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음속에서는 식은땀이 한 줄기 흐르지만 표정은 아무렇지 않다. 이럴 때는 일단 시간을 끌어야 한다. 그리고 기억한다. 나에게 이름을 알려주었을 때 상황을, 내가 저 아이의 이름을 기억했던 때의 상황을.

  음... ㅇ이 많이 들어가는 이름이었는데...

  나는 말끝을 흐린다. 아이의 이름에는 ㅇ이 들어간다. 그러나 몇 개 들어가는지, 어디에 들어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응이 몇 개 더라, 어디에 들어가더라. 나는 머리를 최대한 빨리 굴려본다.

  맞아요!

  아이는 눈을 반짝인다. 옳지, 시간을 벌었다. 머릿속에 이중모음이 떠오른다. 단모음이 아니라, 이중모음. ㅑ? ㅕ? ㅠ? 뭐였지? 아무거나 던져보기로 한다.

  연...이었나?

  아이의 눈빛은 실망으로 바뀐다.

  그때 제가 장난쳤을 때 저한테 뭐라고 하셨었잖아요! 그때 제 이름 아셨는데!

  다시, 아니다. 아이의 이름에 연은 없다. 그럼 뭐지? 윤인가?

  윤... 아 윤 O!

  맞아요!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아이가 얼른 묻는다.

  저는요?

  이 아이는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내 머리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자 옆 친구가 입모양으로 얼른 일러준다.

  희 O이에요.

  희 O! 역시 나야. 나는 기억하고 있었어!

  아이의 이름을 기억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괜히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아이는 안다. 내가 자신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을. 미안한 마음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음에는 절대 까먹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아이 둘의 이름을 되뇐다. 윤 O, 희 O. 다음에 너희가 물었을 때는 꼭 너희 이름을 불러줄게. 너희가 실망하지 않도록, 기뻐할 수 있도록 이름을 불러줄게.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교실로 들어간다. 나도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이들은 실망했지만 조금 실망했을 뿐이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만큼만 실망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름을 기억했다면 아이들은 크게 기뻐했을 것이다. 조금 실망한 아이들이 대견하고, 크게 기뻐할 아이들이 기대된다. 아이들의 미소가 기다려진다.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외울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 김춘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기억하는 행동이다. 기억하는 것은 신경을 써야 가능하다. 노력을 해야 가능하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내가 너를 신경 쓰고 있다는 행동이자 증거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개개인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학생으로 뭉뚱그려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이름에는 의미가 들어있고, 기억이 들어있다. 이름을 부르면 얼굴이 떠오르고, 아이의 미소가, 눈물이 떠오른다. (실제로 체육 시간에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이 꽤 많다. 기쁨의 눈물은 많이 없고 주로 자신이 진 것에 대한 분함과 서러움을 눈물로 표현하곤 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사랑받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증거를 보여줄 것이다. 다음에 만나면 힘차게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한 명의 학생을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함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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