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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Dec 06. 2022

[영화 리뷰] 상상력을 잘 동원하는 방법?

(올빼미, 한산 리덕스, 2022) 


※이 글에는 올빼미와 한산 리덕스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올빼미 - 역사의 빈 공간을 메우는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쫄깃한 스릴러 ★★★★☆


한산 리덕스 - 각색은 좋지만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



  나는 역사를 굉장히 좋아한다. 역사를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역사가 굉장히 재밌다. 물론 역사를 깊이 알다 보면 한숨 나오는 순간이 더 많다. 자꾸 이때는 이 사람이 죽일 놈이고 저때는 저 사람이 죽일 놈이고 하는 상황이 보이는 탓이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는 말이 있다. 한 명 한 명 미워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뿐더러,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같은 미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도 있으니까. 이제는 만약 생각하지 않고 역사를 역사답게 이해하는 방법을 조금은 배우고 있다.


  그런 내가 조선시대에 여러 왕 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코 인조와 선조의 결승전이다. 선조의 왜란을 이겨낼 당시, 이겨내는 과정에서 보인 열등감과 무능함, 무력함이 날 화나게 한다. 인조의 고지식함과 바보 같음, 이기적인 모습과 열등감이 나를 화나게 만든다. 그래도 정말 최악의 인물을 꼽으라면 인조가 아닌가 싶다.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몰아냈으면 잘하기라도 하지 나라를 두 번이나 전쟁의 불구덩이로 이끌었으니. (호란이 2번이나 있었다.) 괜한 고집으로 사람들을 그렇게나 많이 죽게 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참 한숨이 나오는 인물이다.


  내가 본 올빼미와 한산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선조와 인조 시대 이야기라니. 그러나 영화로만 치자면 올빼미가 한산보다 몇 수는 위였다.




  올빼미는 스릴러다. 스릴러라는 장르영화 특성상, 분위기를 잘 이용해야 한다. 등장인물 간의 갈등은 최고조로 치달아야 하고, 들킬 듯 말듯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영화 종반부까지 잘 가져가야 한다.


  스릴러는 피곤하다. 긴장되는 상황은 흥미를 느끼게 하지만 피로를 준다. 할리우드에서 드웨인 존슨의 영화의 인기가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배우 마동석 님을 생각해보면 편하다.) 드웨인 존슨은 잘생겼고, 연기를 잘한다. 무엇보다 덩치가 크고 근육질이다. 누가 봐도 힘이 셀 것 같다. (실제로 레슬러로 활동했으니 힘도 세고 민첩할 것이다.) 캐릭터가 확고하다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배우로서는 많은 역할을 하기 힘들다. 그러나 드웨인 존슨은 많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 늘 힘이 세고 똑똑하고 민첩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늘 정의감이 넘친다. 늘 이긴다. (별로 고생하지도 않는다.) 마동석 님도 마찬가지다. 늘 힘이 세다. 늘 이긴다. 이 두 배우의 영화는 피곤하지 않다. 걱정되지도 않고, 그저 즐기면 된다. 어차피 이길 건데 고민을 왜 하는가?


  그래서 스릴러는 인기에 비해 보기 쉽지 않다. 나도 스릴러를 즐기지만 한 번 보려면 날을 잡아야 한다. 굉장히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고 나면 개운해지는 마음도 있다. 그만큼 긴장감이 중요하다. 긴장감이 중간에 풀려버리면 압력밥솥에 증기가 빠져버리듯, 김이 팍 새 버리는 것이다.



줄거리


  눈이 보이지 않는 의원이 궁궐에 들어가 승승장구 출세하게 된다. 아픈 동생을 돌봐줄 생각에, 힘든 것도 잊어버렸다. (동생이 나오는 부분에는 신파가 등장할까 걱정했지만 동생은 마지막에 다시 나오게 된다. 신파가 없는 영화라니, 아주 칭찬할 만하다.) 어의 이형익을 따라 이리저리 침을 놓으러 다닌다. 그런 주인공은 어두워지면 눈이 보인다. 눈이 보이며 보아선 안될 것을 보아 버게 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두워지면 눈이 보이게 된다. 이 설정이 아주 참신하고 좋았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 영화 전체를 이끌어갈 동력을 얻었다.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작은 아이디어인데, 그 아이디어 하나, 가상의 인물 하나로 실제 사건과 스릴러를 잘 버무려냈다. 실록에 짧게 등장하는 기사 몇 줄을 몇 시간으로 풀어내는 아이디어가 놀랍다. 영화는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달려간다. (중간에 역사적으로 조금 말이 되나 하는 장면도 있었으나, 영화가 주는 긴장감에 압도되어 영화를 보는 당장은 떠오르지 않았다.) 관객을 설득시키려 노력하지 않고, 알아서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가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권선징악. 예술작품은 권선징악을 두려워한다. 금기시한다는 표현이 옳을까? 권선징악은 당연한 도리다.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지만 영화나 예술작품은 창작물이다. 창작물에서까지 현실의 추악한 부분을 반영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자주? 매번?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굉장히 잘 만든, 짜임새 있는 영화였다. 큰 긴장감을 끌고 가는 방식이 좋았고, 긴장을 조성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역사 영화에서 나오는, 어두운 궁궐이 주는 폐쇄성과 으스스함도 한몫했던 것 같다.




  한산은 역사 영화다. 역사에 이미 등장한 부분을 조금 각색해서 만든 영화라고 생각해야 한다. 같은 감독의 작품인 <명량> 때부터 느꼈지만, 이순신 장군을 다루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이순신 장군이 누구인가. 세종대왕과 더불어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1,2위를 다투는 굉장한 인물이다. 마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처럼 수수께끼로 가득한 인물이기도 하고, (그렇게 역사적 자료가 많음에도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정말 궁금하다. 육지에서 군사를 지휘하다 바다에서 지휘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 원칙주의적이지만 효율적일 수 있는지. 정말 미래에서 온 인물이거나 가공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완벽함이다. 소설도 이렇게 쓰면 욕먹는다는 말이 딱 맞다.) 반대로 자신의 생각 하나하나 밥 먹은 것 하나하나 기록했던 공개된 인물이기도 하다. 역사 속의 인물 중에 이렇게 개인의 관한 자료가 많기도 쉽지 않다. 치열한 전쟁 중에도 정말 치열하게 일기를 쓰셨던 인물이다.


  이순신 장군은 완벽한 사람이다. 본인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본인밖에 모른다. 겉으로 보기는 완벽한 인물이다. 늘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고, 늘 이긴다. 제일 적은 피해로 이긴다. 적은 다 부수고, 병사는 다 살려 돌아온다. 훈련상 태도 완벽해야 하고, 수많은 병사들이 정신없는 전투 중에 자신의 지시를 완벽히 이행할 만큼 카리스마도 있다. 고민하지만 혼자만의 고민이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짐을 나누지 않는다. 공은 나누고, 벌도 엄격하다. 이순신 장군과 전투에 나가서 죽은 병사보다 군법에 따라 죽인 병사가 더 많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순신 장군은 경계를 우습게 알지 않았다. 실제로 영화에서 처럼 거북선이 불타고, 왜구들이 침입해 설계도를 가져가는 일이 있었다면 가장 먼저 경계 담당자의 목을 쳤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정보전의 대가이기도 했다. 수많은 탐망선을 띄워 왜군이 어디로 가는지 누구보다 먼저 알고 대처했던 것이 장군이기도 하다. 실제로 가토가 거짓 정보를 흘렸을 때 바로 거짓이라고 알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보가 바탕이 되어있다. 늘 이기는 싸움을 하고, 철저히 이기는 것이 목적이었던 사람이다.


  이런 사소한 거슬림을 넘어 가장 내가 거슬린 지점이 있었다.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니... '의를 위한 한마음'이라니... 대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나름 수려한 영화였지만, 대사가 등장한 후 영화는 급변했다. 그저 제2의 명량이 되어버렸다. 이순신 장군의 겉모습, 속에서의 고뇌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파워레인저가 되어버렸다. 이순신 장군은 누구보다 왜군을 증오하고 혐오했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왜군을 죽이는 이유가 아니었던 것 한 가지가 있다. 왜군과 우리가 의와 불의의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 그 이유는 아니었을 것 같았다.


  영화는 이 대사가 등장한 이후로 급격히 싼티가 난다. 화려한 CG가 주는 감동, 왜군을 다 쳐부술 때 느끼는 쾌감. 온데간데없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의와 불의의 싸움', '의를 위한 한마음'만 기억에 남는다. 왜 굳이 그랬어야 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이 대사가 그렇게 중요한 대사였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산대첩'을 보면서 우리 입장에서든 인간 보편적 관점에서든 누가 의인지 누가 불의인지 헷갈릴까 봐 넣어준 걸까?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 것일까? 정말 그 대사 하나가 이 영화를 파워레인저로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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