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보선생님 Nov 12. 2022

나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았다.

  날이 맑다.

  오늘은 아이들과 공을 이용한 놀이를 했다. 농구를 변형한 게임이었는데, 게임 자체는 아이들이 모두 재밌게 즐길 수 있을 만한 놀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늘 마음같이 행동해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언제나 교사를 시험한다. 교사를 불로 강하게 내리 쬐고, 망치로 힘껏 두드린다. 교사가 더 나은 교사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항상 시험한다. 이 시험에서 통과한다면, 어제보다 조금 더 순수한 마음을 가진 훌륭한 교사가 될 것이고,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저 버려지는 쓸모없는 불순물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이들은 나에게 예의없이 굴곤 했다. 나는 아이들을 크게 지도하지 않았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아이들과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너무 가까운 사람이 아닌, 적당히 가까우면서 먼, 그러나 조금 가까운 쪽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다. 나는 아이들과 너무 멀다. 아이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내 말을 공기 중에 그저 흘려버릴 것이다. 그리고 내 말 속에 있는 감정만 기억할 것이다.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강해진다. 독처럼 아이들 마음에 퍼진다. 아이들은 나를 증오하고, 혐오할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적당히 먼 거리에 있는 나에게도 종종 과제를 던져주곤 한다. 아이들은 예의없는 말로, 짜증내는 말투로, 뒤에서 들려오는 소문들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아이들은 나의 앞에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내 뒤에서 말하곤 한다. 내 뒤에서 들려오는 말들은 내가 반박할 수 없다. 내가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말은 대비하기 어렵고, 그 말에 대한 나의 말을 이해시키기 어렵다. 나는 보이지 않는 말에 다치곤 한다. 아이들은 뒤에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말은 적당한 거리에 있다. 나는 그 이야기에 대답할 만큼 가깝지 않고, 모르고 넘어갈 만큼 멀지 않다. 아이들은 때로는 영악한 태도로 나를 바라보며 대한다. 나를 지켜본다. 내가 더 나은 교사로서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본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무슨 일이니.

  아이들은 방금전까지 늘어놓던 이야기를 싹 거두고 두려운 표정을 만면에 띄운다. 내가 정말 그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정말 그렇게 이 아이들이 무지하단 말인가?

  선생님이 지난 시간에, 여자 아이들은 35분간 체육 활동을 시키시고, 남자는 5분 밖에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가 총대를 매고 말한다.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매 수업시간 시간을 확인하느라 시계를 십 수 번도 넘게 보는 나에게, 최대한 공정한 참여 기회를 주는 나에게, 저런 새빨간 거짓말을 들이밀다니. 나는 저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 그 말을 한 아이도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아이들은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기로 한다. 그저 나에 대한 작은 불만을 표현할 요소로 삼기 위해서. 아이들은 때로는 굉장히 비열하다. 나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나의 신뢰성을 흔들기 위해 이런 비열한 거짓말을 하다니.

  내가? 내가 정말 그랬다고?

  나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말을 잇는다. 아이들은 내 속에 분노를 읽는다. 나는 분노로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심장 박동이 뛸 때마다 내 몸도 같이 뛰고 있었다. 피는 나의 몸에 가볍지 않은 분노를 실어 날랐다. 나는 떨고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 것 입니다.

  아이는 내 눈을 피하며 말한다. 나는 아이가 괘씸해서 견딜 수 없다. 이 아이는 나를 시험한다. 나는 나를 시험하는 아이를 가르친다. 나는 시험할 대상이 아니라고 외친다.

  근데 왜 그렇게 말해! 그게 정말 사실이야?

  나는 크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이들은 이제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체육관이라는 큰 교실 안에서, 늘 즐겁고 신나는 기억만 가득한 체육관에서, 아이들은 긴장하고, 두려워한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처벌 받을까 두려워한다.

  선생님은 왜 맨날 저만 혼내세요?

  다른 한 아이가 울며 소리친다. 금시초문이다. 나는 네가 누군지도 기억이 잘 안나는데. 나에게 너는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만나는 200명의 아이 중 한 명에 불과한데. 아이는 그것을 모른다. 아이는 억울하다. 자신이 잘못해서 혼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고 억울하게 혼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 자신의 잘못을 바라보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바라보고, 반성하는 방법을 모른다. 아이는 용기가 없다.

  내가 너만 혼냈다고?

  나는 의아함을 담아 묻는다. 나는 정말 아이를 모른다.

  지난 시간에도 저만 혼내셨잖아요!

  나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내가 지난 시간에 이 친구를 혼냈니?

  아이들이 대답한다.

  지난 시간에 이 친구가 욕을 해서 혼내셨어요.

  수업 시간에 욕을 뱉어놓고 억울하다니. 나는 다시 한 번 의아함으로 가득찼다. 수업 시간에 욕을 뱉어놓고 무사할 줄 알았다는 말인가? 아이는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눈물을 쏟으며 씩씩거린다. 아이를 진정시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나는 직감적으로 판단했다. 아이는 억울하다. 자신이 한 잘못은 매우 작고, 자신이 받은 지적은 매우 크다.

  그래, 상황을 따져보지 않고 혼낸건 내 잘못이다. 

  나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희는 굉장히 예의가 없다. 나한테 대화를 요청하면, 내가 거절한 적이 있었니?

  아이들은 고개를 젓는다. 논리에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나는 교사로서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아이들에게도 늘 지도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대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논리로 이길 수 없을 때, 떼를 쓴다. 자신이 가진 어린아이라는 무기를 십분 활용한다. 짜증을 내고,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지른다.

  앞으로는 절대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마.

  아이들을 정리시켜 보냈다. 그 시간 이후에도 다른 아이들이 나를 괴롭힌다.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것은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권위로 짓누르려 하는 어른들에게서 배운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없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잘못을 인정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일까?

  나는 큰 상처를 입었다. 아이들은 상처를 주고는 쉽게 잊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지 않으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나는 오늘 또 상처를 입었다. 아이들을 지도한 죄로, 수업을 준비한 죄로, 아이들이 좋아할 게임을 찾으려 노력한 죄로,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한 죄로 상처를 입었다.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에 상처를 입었다. 아이는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내 행동을 사과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고, 아이는 잘못을 했다. 그러나 아이는 나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아이는 잊어버린다.

작가의 이전글 운동화 신고 왔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