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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Nov 12. 2022

아이들은 나의 부족함을 채워준다.

  날이 맑다. 날씨는 언제든 겨울이 다가올 듯 추워지다가도 풀리기를 반복한다.

  배구 네트가 도착했다. 아침에 행정실 앞을 확인하고 기쁨에 가득찼다. 아이들이 그토록 기대하던 '진짜 배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아이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켰다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배구 네트를 들고 체육관으로 향한다. 네트 설치를 위해 지주를 놓고, 네트를 설치한다. 아무도 없는 체육관이 홀로 분주하다. 이리저리 다니며 네트를 설치했다. 초짜가 한 솜씨 치고는 그럴 듯 하다.

  한 숨 돌리니 아이들이 왔다. 아이들은 체육관으로 늘 뛰어 온다.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뛰는 이유는 많지 않다. 나처럼 운동을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고, (물론 살면서 이런 사람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다.) 직장인들처럼 늦으면 큰 불이익이 있는 경우, 그리고 너무나 기대되는 곳으로 갈 때. 아이들은 체육 시간을 기대한다. 이번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해도, 늘 했던 것을 해도, 우리 팀이 져도 그 때 뿐이다. 다음 시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뛰어온다. 숨을 턱 끝까지 헥헥거리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인사한다. 체육 시간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눈빛. 저 눈빛을 실망시킬 수 없어 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은 한 마디씩 건낸다. 안녕하세요 하는 아이, 오늘 배구해요? 하는 아이. 그래, 오늘은 배구 경기를 한 번 해보자. 아이들에게 발표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좋아하고, 몇몇 체육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그리 반기는 표정은 아니다. 체육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늘 아픈 손가락이다. 흔히 말해 몸치라고 불리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움직이는 것을 못하고, 싫어한다. 다른 아이들은 쉽게 따라하는 기술을 하지 못한다. 연습할 마음도 생기지 않고, 그저 한 시간을 얼른 보내고 싶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앉아있기 일쑤다. 하지만 여느 교사들이 그렇듯, 나도 안다. 한 눈에 바로 알 수 있다. 이 아이는 아픈 것이 아니라, 이 시간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 시간의 결과가 고통스러운 것이다. 게임에 한껏 몰입한 아이들이 나에게 가할 손가락질이 고통스러워 미리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보듬을 방법을 늘 고안한다. 남녀를 분리해서 게임을 하기도 하고, 그룹을 나눠서 하기도 한다. 팀을 최대한 섞어서 짜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헛수고였다. 아이들은 여전히 체육 시간을 고통스러워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계획을 중단할 수는 없다. 남자와 여자를 나누어 진행하고, 최대한 규칙을 쉽게 만드는 것으로 아이들을 배려한다. 적어도 배려한다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아이들은 팀을 나누어 경기를 진행한다. 어떻게 진행될까 조마조마했던 경기가 마치 영화처럼 흘러간다. 아이들은 동점에 재동점을 만들며 경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나간다. 한 쪽이 허무하게 이겨버리면 어떡하나 고민했던 나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이들은 교사의 노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손쉽게 해낸다. 흥미가 없어하던 아이들도 어느새 관심을 보이고, 같은 팀 친구들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고, 경기는 여전히 동점에 재동점을 거듭한다. 나또한 어느새 몰입하여 심판의 역할을 잊고 관중이 되어 있다.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아이들은 배구를 재미있는 스포츠로 만들었다. 배구를 좋아하는 사람 뿐 아니라, 모두에게 재미있는 스포츠로 만들었다. 계획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흔히 아는 한자 성어 중 '진인사대천명'과 비슷한 이 말을 삼국지에서 읽었던 말인지, 스스로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출전이 불분명하다.) 계획하는 것은 교사이되, 이루는 것은 아이들이구나. 교사는 열심히 계획하고, 아이들에게 나머지를 맡기는 것이구나. 오늘 새로운 배움을 얻었다. 아이들을 믿고 맡기자. 뼈대를 세워두면 아이들은 알아서 살을 채운다. 늘 아이들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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