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4살 무렵부터 금련산 자락 연산동에서 2년 정도 살았다.
그러고 보니 벌써 20년 전 기록들이다.
비록 내가 그때 새벽출근, 밤 10시 퇴근 그리고 수없이 많은 밤 응급수술콜을 받을 때였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제일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기억한다.
나도 젊었고 아이도 어렸다.
그래서 공기 좋은 금련산 자락이라 시간이 날 때면 아이와 같이 동네 골목길을 많이 걸어 다녔다.
없는 짬짬이 시간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었다.
사진폴더를 정리하다 보니 폴더 안에 당시에 적어놓은 딸과의 주말 골목길 여행 글이 있다.
골목길 풍경
2006년 6월 25일
비가 내린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장마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움직이는 것이 괜히 귀찮다.
박사 학위 논문도 마치고, 학교일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니 나태함이 나에게 온다.
아이는 외갓집에 놀러 가고, 집사람은 쇼핑을 가서 일요일 오후 집이 나의 차지가 되었다.
가만히 있으니 어제 골목길에서 마주친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요즘 살이 너무 쪄서 저녁을 먹고 난 후 가끔씩 현지와 함께 동네 골목길 산책을 다닌다.
한 20분 정도 거닐 수 있는 거리지만 나에게는 많은 여유를 주는 곳이다.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골목길.
하지만 우리의 뇌리에서는 사라져 버린 골목길.
현지와 집사람과 손을 잡고 골목길을 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공간이지만 축구를 하며 웃음소리가 끝이지를 않는다. 창 너머로 사람들의 살가운 말소리가 들린다. 웃음들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다가 뒤에서 누군가가
“이것 좀 저기까지 옮겨주게”
나는 아니겠지 하며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낸가’
“저기까지요?”
나는 아닐 거라고 하면서도 나였으면 했는지 대답을 했다.
언제부터인가 골목을 떠나면서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낯선이 에게는 말을 걸어보지도, 들어보지도 않고 살아왔던 것 같다.
할머니가 그러더니 나에게 소주병이 들어있는 조금만 손수레를 나에게 맡기고 뒤로 가는 것이 아닌가.
‘쩝, 내가 만만하게 보였나!’
아주 짧은 순간 불순한(?) 생각을 했으나 할머니는 골목에 놓인 작은 유리항아리를 들고 오고 있었다.
‘집에 가지고 가시려나?’
“할머니 그런 뭐에 쓰시려고요?”
“집에 두면 쓸까 싶어서.”
10m 정도 앞에 있는 할머니의 가게에 수레를 두니 할머니와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할아버지가 “고맙네” 하신다.
씩 웃으며 “뭘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야기다.
아내가 “오늘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운동을 시키려고 하네?” 한다.
우리 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작은 판잣집도 있고, 가건물도 있고, 방 한 개에 옹기종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작은 골목이지만 사람들의 대화가 있고, 웃음이 있고 부딪힘이 있다.
사진을 정리하고 보니 이때 카메라는 후지카메라에서 나온 하이엔드 파인픽스였다.
그때는 돈이 없어 DSLR을 살 수는 없었고 사진을 좀 찍다 보니 똑딱이로는 영 마음이 차지 않아서 와이프 눈치를 좀 보고 당직비를 아껴 아껴 구입을 했었다.
일체형으로 줌렌즈가 달려있어 약간의 모양새가 나는 그런 카메라였다.
지금 보면 참 어설픈 사진이지만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