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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빨래는 건조기가 아니고 햇볕과 바람이 말려주어야해

by 세상과 마주하기

딸..

지금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 동안 너의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기계가 도와줄 거야.

그건 빠르고 편할지 모르지만 뭔가 부족한 것이 있지.


‘살아있다는 느낌’


건조기가 말린 옷을 입었을 때의 느낌에는 햇볕으로 말렸을 때의 뽀송뽀송한 느낌이 없지.

혹 바람이 말렸을 때는 긴 시간 동안 지나쳐간 바람의 내음도 맡을 수 있고.

옛날 어르신들은 묵은 빨래나 철 지난 이부자리는 항상 햇볕과 바람에 맡겨두곤 했지.

그냥 그렇게만 해 두어도 찌든 내음을 없앨 수가 있거든.


아빠도 빠르고 편한 것을 좋은 것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어.

그런데 살아보다 보니 아빠가 어릴 때 했던 편하지 않은 것, 느린 것, 시간이 걸려야 완전해지는 것들이 참 좋은 것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먹는 것도 그렇지 않니? 편하게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햄버거 한 조각을 먹는 것보다 시간이 걸리지만 식당에서 주문하고 기다리고 그리고 먹는 음식이 맛있는 것처럼 말이야...

아.. 이전에 미국아이들이 이런 말을 한다고 들었지.


어느 미국 아빠왈

‘ 맥도널드 가서 저녁 먹자’

‘아빠 그건 가짜 음식 fake food 이야’

그리고 정작 미국에 사는 대학생들은 패스트푸드 햄버거보다는 신선한 재료로 만든 샌드위치를 자주 먹는다는 것.

패스트푸드 햄버거는 미국에서 만들어낸 음식인데 정작 미국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웃기지 않니?


너도 음식을 해 봐서 알지 않니?

배고픔을 이겨내고 요리한 음식이 맛있다는 진실.

그건 음식에 필요한 만큼의 정성이 들어갔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어쩌면 네가 살아가야 할 시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빠르고 편한 방법으로 삶을 살아갈 거야.

하지만 그때 너는 너의 삶의 일부분이라도 천천히 살아가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물론 너의 삶의 전부를 그러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그러고 싶은 시점이 오거든 너의 가족들과 충분히 의논하였으면 한다.


음식은 시간이 필요한 slow food를 만들어 먹을 줄 알아야 하고, 가끔 배낭을 들쳐 매고 하루 또는 그 이상의 날들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너의 마음 어느 한 구석엔가 천천히 살아갈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겠지.



2015.1.18일

뉴질랜드 북섬 Cape Rainga의 캠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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