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합창

by 콧수염장발

새들의 합창





이른 아침인데 참새들의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깨었다. 시골집의 울타리는 대나무로 둘러져있었다. 어느 날부터 우리 집 울타리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새들이 몰려와 짹짹거리는 것을 막을 수야 없지만 동트기 전 유난스럽게 떠들어 대는 소리에 짜증이 났다. 밤이 되면 마을에 흩어져 있던 모든 새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집 대나무 울타리에 모여서 아침 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새들은 대나무의 연약한 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다가 허공으로 치솟아 군무를 이루었고 다시 내려앉으면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대나무는 출렁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새들이 왜 대나무를 좋아하는 걸까? 주변에 대나무 울타리가 우리 집 밖에 없다 보니 마을의 새들이 모두 모여든 것일까?


새벽마다 짹짹거리는 소리는 소음이 되어 스트레스가 되었다. 주말에는 푹 쉬고 싶지만 이놈들은 내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대나무가 커서 뒷산 조망을 가리고 있는 것이 눈에 거슬려 베어버릴까 하는 중이었다. 어머니도 답답하다면서 베어버리라고 하지만 걷어 내는 것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새들의 극성에 시간을 내어서 대나무를 베어 내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봄이 지나자 어느 날부터인지 새들의 소리가 잦아들었다. 새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자 오히려 궁금해서 창밖을 내다보곤 하였다. 그 많은 새들이 어디로 갔는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원인을 알고 보니 그동안은 짝짓기를 위해 새들이 좋아하는 대나무 울타리로 모여들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들은 서로의 짝을 찾기 위해서 더 큰소리로 구애를 했던 것이었다. 짝짓기가 끝나자 조용해지면서 울타리를 걷어 내는 일은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새들의 소리에 적응이 되어 마음도 느긋해졌다. 때로는 재잘 거리리던 새들의 아침 인사가 그리워지기도 하였다.


새들 때문에 울고 웃던 때도 있었다. 요즘에는 떼 지어 다니는 참새를 볼 수 없지만 유년시절에는 웬 참새들이 그리도 많은지 가을이 되면 들판이 온통 참새들의 세상이었다. 참새들은 떼를 지어 곡예를 하듯이 곡식을 쪼아대는데 시골에서는 골칫덩어리였다. 애써 가꾼 곡식이 여물어갈 즈음에 참새들은 익어 가는 곡식을 용케도 알아보고 들판을 휘젓고 다녔다. 남보다도 빠른 수확을 위해 심었던 곡식이 집중 대상이 되곤 하였다. 새를 쫓지 않고는 반도 수확을 못할 정도였기에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새를 쫓아야만 했다. 집집마다 인력을 총동원하여 곡식을 지킬 수밖에 없었는데 수많은 참새 때가 앉았다 떠난 자리에는 곡식이 초토화되었다. 그리하여 새를 쫓을 인력이 없을 경우에는 학교도 결석을 하고 새들에게서 곡식을 지켜야 하는 그야말로 새들과의 전쟁이었다.


새를 쫓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지만 조금 지나면 무용지물이 되었다. 허수아비를 세우고 논을 가로질러 줄을 매어 빈 깡통을 달아서 새들이 날아올 때 줄을 잡아당겨 연결된 깡통들의 소리가 나면 새들이 놀라 달아났다. 새들도 처음에는 허수아비를 보고 놀라 달아나지만 조금 지나면 허수아비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모자와 어깨에 않아 여유를 부렸다. 그런 참새들을 볼 때 너무나 얄밉기만 하지만 그러나 어찌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추수 때가 되면 만사 제쳐놓고 참새 쫓는 일이 큰 일중의 하나였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를 일찍 마치고 집에 오면 오후 내내 논두렁을 이리저리 숨 가쁘게 뛰어다녀야 했다.

“훠이~ 훠이!” 외치며 양은그릇을 두들기며 빈 깡통 줄을 흔들어 대면 참새들은 다른 논으로 날아가서 앉았다. 그러면 그쪽 논 주인에게 발견되기까지 쪼아 먹다 다시 쫓기어 날아오곤 하였다. 아름다운 가을은 그렇게 참새들과 숨바꼭질로 저물어 갔다.


해가 서산마루에 떨어지면 새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진맥진한 몸이 되어 집으로 오면서‘그래, 새들도 어두워지니 집으로 갔나 보다.’하고 생각했다.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새들이 밤눈이 어두운 걸까? 갑자기 새들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와서 곡식을 쪼아 먹는다면 사람들은 어찌할 수가 없을 텐데. 조물주께서는 공평하신 것 같다. 밤이면 모든 것들이 다 쉬라는 것인 가보다.


가을 추수가 끝난 겨울 들녘은 황량하였다. 마당에는 들에서 거두어들인 볏단을 쌓아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탈곡을 하였는데 새들은 그것을 용케 알고 집 주위로 모여들었다. 탈곡한 나락을 가마니에 담아 뜰에 재어놓으면 참새는 기회를 보아 가마니를 쪼아서 구멍을 내어 흘러나온 벼를 훔쳐갔다. 나는 겨울 방학이 되어 친구들과 참새 잡을 궁리를 하였다. 가을 내내 중노동을 시킨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참새 잡을 묘수를 찾았다. 집에는 대나무 와상이 있었는데 와상은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간단한 곡식을 말리기도 하는 중요한 도구였다. 나는 친구들과 와상이나 발채를 이용하여 새를 잡을 궁리를 하였다. 어느 때 일꾼이 그렇게 참새를 잡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와상을 엎어서 30도 정도의 기울기로 받침대를 세워 받침대에 새끼줄을 길게 매달아 놓았다. 새들이 우리를 볼 수 없게 방안에까지 줄을 이어서 붙잡고 있었다. 와상 밑에는 새들이 좋아하는 모이를 뿌려 놓고 새가 들어와서 모이를 쪼아 먹기를 기다렸다. 새들은 생각보다 경계심이 많았다. 한두 마리가 먼저 와서 쪼아 먹으면서 관찰을 하고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면 동료들이 몰려왔다.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새들을 지켜보면서 기회를 보아야 했다. 새들이 많이 들어 있을 때 재빠르게 잡아당겨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쉽지가 않았다. 줄이 길다 보니 당길 때 거리가 있어 줄이 움직이면서 새들이 먼저 감지하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몇 번을 그리하다 보면 아까운 모이만 뺏기고 와상만 망가져서 어른들께 꾸지람만 들었었다. 이래저래 참새들하고는 악연이 많았다.


겨울이 되면 가끔씩 친구들과 놀다 한밤중에 대나무밭에 새를 잡으러 가기도 하였다. 대나무밭에 사는 새들은 산비둘기, 뻐꾸기, 꾀꼬리, 멧새 등 제법 큰 새들이 살고 있었다. 새를 잡기라도 하는 날이면 한밤의 그만한 간식이 없었다. 조심조심 걸음을 내디뎌 잠들어 있는 새들이 깨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대나무의 마른 잎사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새들이 깨기도 하면 그날은 공치는 날이었다.


많은 대나무 가운데 우리가 선택한 대나무 위에 새가 잠들어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지만 어두운 밤에 새가 잠들어 있는 대나무를 선택한다는 것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복불복이었다. 우리는 원을 그리면서 대나무를 움켜쥐고 동시에 힘차게 흔들어 대었다. 한밤중의 대나무 숲 정적이 깨지는 순간이다. 우리가 흔든 대나무 위에 새가 있었다면 잠결에 깜짝 놀라서 날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기도 하였다. 그때 손전등을 비추어서 빨리 잡아야 했다. 그러나 새들이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아 우리는 밤늦도록 새들과의 숨바꼭질만 하다가 서로가 잠에 쫓기어 돌아오곤 하였다.

세월이 흘러 요즘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여 참새 하고 실랑이를 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 많았던 참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시골집에서 새들과 친하게 지내다 읍내로 이사를 왔는데 이제는 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커튼이 드리워진 방은 밤인지 낮인지 구별이 안 되어 아침마다 일어나는 시간이 불규칙하게 되었다. 가끔 옛 시골집의 새들이 생각난다. 동창同窓으로 보이는 대나무 가지에 모여서 합창으로 아침 인사를 하던 새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대나무 숲(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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