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 무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폴 베르네르의‘가을의 노래’가 애상(哀想)적으로 파고든다. 푸르던 젊은 날은 일에 짓눌려 감성에 젖어볼 시간도 없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순(耳順)이 지나 마주한 가을은 그리움으로 가득하기만 하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오늘따라 새로워 보인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단풍군락을 이루고 있는 나무는 참나뭇과의 도토리나무들이다. 단풍하면 은행나무, 단풍나무만이 멋있는 줄 알았는데 하늘을 향해 팔을 뻗어 황금빛 옷을 두르고 우뚝 서 있는 참나무가 너무나 늠름하고 멋져 보인다.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떨어지는 잎 새는 작은 오솔길을 덮고 있다. 발에 밟히는 낙엽에 시몬이 말을 걸어온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낙엽은 왠지 쓸쓸한 느낌이다. 가을은 그렇게 아름다운 청춘을 불사르며 하나씩 옷을 떨구고는 나목(裸木)이 되어 잠들 준비를 하고 있다. 떨어진 잎 새는 뿌리를 덮어 추운 겨울을 잠재우고 새로운 자양분이 되어 무성한 잎으로 다시 피어날 것이다.
황금빛으로 물든 나무를 바라보면서 무심히 지나치며 살아온 날들을 생각한다. 그저 저렇게 아무렇게나 서 있어도 나무는 세월의 기억을 나이테 속에 숨겨 놓았는데 인간은 삶의 족적을 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참나무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아무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를 왜 참나무라고 이름 지었을까? 새삼 궁금해지기도 한다. 참이라는 뜻은 진짜를 강조할 때 쓰이는데 수많은 나무 중에 참이리라
참나무는 봄이 되면 수채화와 같은 연녹색으로 산천을 물들이며 마음까지도 푸르게 하였다. 비료가 귀하던 시절 농촌에 모내기철이 땅의 힘을 돋우기 위해 참나무의 어린순을 베어다 논에다 넣고 퇴비로 활용하였다. 단풍이 물들 때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도토리를 줍기 위해 산속 오솔길을 걸었다. 참나무 아래서 낙엽을 헤집으며 토실토실한 도토리를 찾았다. 나뭇잎 사이에 털모자를 쓰고 숨어있는 도토리를 찾아 호주머니가 빵빵할 정도로 주었다. 다람쥐의 겨울 양식을 빼앗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많은 열매가 있었기에 마음에 두지 않았다.
유리구슬이 귀하던 유년시절에 도토리가 구슬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구슬치기를 위해서는 둥글고 매끄러운 왕 도토리를 구해야 했다. 둥근 도토리가 필요한 곳이 또 있었다. 학교에서 과제물이나 생활기록부란에 부모님의 확인도장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부모님에게 혼이 날까봐 보이지 않고 몰래 도장을 찍어야 했다. 어른의 도장을 훔칠 수가 없었기에 임시로 만들어야 했는데 도토리가 대안이 되었다. 둥근 도토리를 반으로 잘라서 면을 잘 다듬고 칸을 나누어 이름을 새기는데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그럴듯한 도장이 되었다. 그 일로 도토리에 글씨를 새기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어느 정도 숙련이 되어서 많은 글자를 새겨 넣을 수 있게 되면서 도장을 새기는 장인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우리는 도토리로 놀이를 하다가 때로는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우기면서 다투기도 하였는데 결국에는 서로에게 아무 소득 없이 끝나곤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도토리 키 재기’같은 일이었다. 서로 주장하는 말이 고만고만하여 우위를 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판이 깨지고 헤어지게 된다. 그 후 욕심이 많고 고집이 센 친구는 다음 놀이에서 제외를 시켰다. 서로 도토리를 가지고 놀다가‘개밥에 도토리’신세가 되었다.
오늘날 사회풍토를 보면 개밥에 도토리는 되지 말아야 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도토리가 왠지 부정적인 의미보다도 인간 처세에 있어서 교훈 같기도 하다.
도토리는 우리 생활에 있어서 아주 필요한 식품이었다. 곡식이 귀하고 어려웠던 시절에는 역경을 이겨 내게 해 주었던 구황식품이었다.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야산에 가서 도토리를 주워서 껍질을 벗기고 맷돌로 갈아서 묵을 만들어 먹었었다. 그때는 100%로 도토리라서 그런지 떫은맛이 강하여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훌륭한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귀한 존재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선조임금이 피난을 가면서 수라상에 올릴 음식이 마땅치 않자 민가에서 먹던 도토리묵을 수라상에 자주 올렸다고 한다. 선조는 도토리묵에 맛을 들여 궁에 들어가서도 도토리묵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상수리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참나무에는 수많은 이름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로 각기 일상생활에 쓰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나무는 여러 용도로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옛날 약이 귀하던 시절에 참나무는 갖가지 약재의 원료가 되어 질병을 치료하는데 쓰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숯에 대한 문화가 있다. 옛 어른들께서는 집안에 불이 꺼지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설 때문에 불씨가 꺼지지 않기 위하여 보존하는데 밥을 짓고 나온 숯을 화로에 보충하면서 불씨를 보존하였다. 참숯은 빨리 사그라지지 않고 오래감을 으뜸으로 여겼다. 그 참숯에는 항균작용도 있어서 공기와 물을 정화시키기에 시골에서 장을 담글 때 숯을 사용하였다. 우리 고장 백운산에는 참나무가 운집해 있어서인지 조선시대의 참나무 숯 가마터가 있다.
광양참나무 숯으로 구워낸 불고기를 ‘천하일미 마로화적 (天下一味馬老火炙).’이라 했다. 조선시대 어느 선비가 광양으로 유배를 와서 벽촌에 사는 천민들의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다 유배에서 풀러나 한양으로 가게 되었다. 글을 깨우친 아이들의 부모가 선비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귀한 소를 잡아서 양념을 한 소고기를 참숯불에 구워서 대접을 하였다고 한다. 그 선비는 한양에 올라가서도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광양의 숯불고기 맛을 잊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광양의 옛 지명인 마로의 지명을 붙여‘천하일미 마로화적’이라 한 것이다. 이 후로 광양불고기의 유래가 되었다. 참나무는 죽어서도 인간에게 자양분을 제공하였다. 참나무에서 나는 표고버섯과 영지버섯은 버섯 중에서도 으뜸으로 농가소득은 물론이고 건강에 이로운 식품이다.
유럽의 포도주와 위스키는 참나무로 만든 오크통에서 오랜 기간 숙성을 통하여 명품이 탄생한다. 참나무가 인간에게 유용한 나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참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곧게 뿌리를 내리고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고, 다른 나무보다 곧고 단단하여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였으며 허기지고 배고픈 시절을 견뎌내게 하였던 생명의 열매를 제공하기에 참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모른다.
가을산하에 참나무의 모습을 보면서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가 생각난다.
[참나무]
젊거나 늙거나 저기 저 참나무같이
네 삶을 살아라.
봄에는 싱싱한 황금빛으로 빛나며
여름에는 무성하고
그리고, 그러고 나서
가을이 오면
다시 더욱 더 맑은 황금빛이 되고
마침내 나뭇잎 모두 떨어지면
보라, 줄기와 가지로 나목 되어 선
저 발가벗은‘힘’을.
살아온 삶의 끝에 시어처럼 우뚝 선 나목이고 싶다. 그러나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 도토리 키 재기 같은 삶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볼품없이 보였던 참나무가 오늘따라 거목이 되어 내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