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의 계절이다. ‘이열치열! 이냉치냉!!’을 외치며 냉면의 계절은 겨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겨울엔 뜨끈한 국물로 속을 데우고, 여름엔 차가운 육수로 열을 식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35도, 피할 길 없는 직사광선을 맞으며 냉면집에 들어가면 빵빵한 에어컨 냉기에 일차적으로 안도하고, 금세 추워진 몸을 따뜻한 육수 한 컵으로 데운 후 다시 시원한 냉면으로 식혀주는 일, 여름냉면만 줄 수 있는 행복이다. 냉면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계절, 여름이 돌아왔다.
서울의 냉면은 전주의 냉면과는 다르다. 다채롭다고 하는 게 맞겠다. 냉면의 세계가 이렇게 넓었다니…. 어떤 냉면을 먹을지, 어떤 식당을 방문할지, 선택지가 타로카드 마냥 눈앞에 촤라락 펼쳐져 있다. 메뉴를 선정할 때 나는 꽤 여러 가지를 따진다. 가성비, 탄단지(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영양 균형, 칼로리 등을 까다롭게 따지기 때문에 고민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보통 일주일이나 보름 치 장을 미리 봐 놓고 단조로운 메뉴로 식단을 구성해 둔다. 하지만 냉면만큼은 예외다. 가성비며 영양 균형, 열량 따위는 냉면에 중요하지 않다. 고민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 냉면에 만큼은 관대할 수 있다.
내 고향 전주는 냉면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다. 치냉(치킨+냉면)으로 유명한 메밀방앗간과 왕만두가 일품인 다래면옥 정도가 전주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가게다. 여름이면 아빠와 두 식당을 꼭 방문했는데 두 곳 모두 냉면만으로 승부를 보는 곳은 아니다. 메밀 방앗간은 실한 크기와 바삭한 튀김옷의 후라이드 통닭으로 유명하다. 통닭을 먹다가 통닭이 조금 느끼해질 때쯤 동치미 베이스의 냉면 육수로 느끼함을 싹 잡아주는 게 메밀방앗간의 별미다. 다래면옥은 성인 남성 주먹 크기의 왕만두가 대표 사이드 메뉴다. 얇은 피에 실한 소, 두부를 넣었는지 부드럽고 담백한 만두가 먼저 입안을 데우고 속으로 퍼지면 냉면 한 젓가락으로 열을 식혀준다. 물냉면이든, 비빔냉면이든, 회냉면이든 상관없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냉면은 어느새 바닥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 고깃집 후식 냉면! 촌스럽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29년 전주 토박이에게 가장 맛있는 냉면은 고깃집 후식 냉면이다. 외가 식구들끼리 고기를 먹던 날, 이모부가 드시던 후식 냉면 비주얼에 사로잡혀 입맛 다시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살얼음이 낀 육수를 면 위에 붓고 새빨간 양념장에 살살 비벼 먹는 극강의 비주얼. 소심한 탓에 "이모부, 저 한 젓가락만 주세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멀리서 입맛 다시는 것으로 그쳐야 했는데 그날 이후 고깃집에 방문하면 무조건 후식 냉면을 주문했다.
냉면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냉부심이랄까? 나름 냉면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팀장님을 만나며 냉부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팀장님은 서울에서 발령받아 전주에 오신 분이셨다. 전주가 처음인 팀장님은 전주를 꽤 마음에 들어 하셨다. 서울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의 출퇴근 러시아워,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가족들과 소풍 다녀올 수 있는 근교가 많다는 것, 저렴한 가격에 배불리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 등 팀장님이 전주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실 때면 괜스레 뿌듯했다. ‘암 그렇지, 그렇지. 전주는 살기 좋은 곳이지.’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다만 팀장님이 아쉬워하시는 게 딱 한 가지 있었는데 그건 바로 평양냉면, 평양냉면 먹을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평양냉면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팀장님은 꽤 자주 평양냉면을 먹지 못하는 아쉬움을 얘기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당최 평양냉면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대체 평양냉면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리고 ‘유난스럽군.’
2년쯤 후 매스컴에 평양냉면이라는 키워드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주제로 한 도서 시리즈에 평양냉면 편이 발행되기도 했는데 저자가 팀장님 또래의 아저씨였다. 그걸 보고서 나는 팀장님을 떠올렸고, 내 맘대로 결론을 내렸다. ‘평양냉면은 아저씨들 음식인가 보네.’
서울에서 맞는 첫 번째 여름, 평양냉면에 도전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역사와 전통이 깊다는 평양냉면 전문점 을밀대가 있어서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한여름 땡볕 아래 줄을 선 채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는데 10년 가까이 서울 생활을 하고 있는 두 친구는 평양냉면이 처음이라며 기대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평양냉면을 먹기도 전에 한번 더 생각했다. ‘역시 평양냉면은 아저씨들 음식인 게 분명해.’
슴슴한 맛에 먹는 거라는 평양냉면은 가히 비주얼부터가 밍밍함 자체였다. 린스며 트리트먼트며 헤어 관리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여자는 처음이라는 듯, 다소 당황스러운 눈빛과 말투로 "샴푸만 하셔서 그런지 머릿결이 마치 세수하고 아무것도 안 바른 맨얼굴 같아요"라고 하신 미용실 원장님의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언젠가 내 쌩얼을 보게 될 남자친구의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살얼음도, 다데기도, 깨가루도 없는 냉면이 당황스러웠다. 한 숟가락 맛본 국물 역시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상에 둘러앉은 모두가 그랬다. 친구들을 불러 모은 나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고,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며 숙이 언니가 알려준 방법을 떠올렸다. '젓가락을 엑스 자로 교차해서 면을 들어 올린 후 식초와 겨자를 면에 둘러준다. 그리고 국물과 면을 휘휘 젓는다.' 그리고 다시 맛을 본 순간… ‘잉? 이게 맞아??’
평양냉면은 필시 잠들기 전 머리맡에서 생각날 것이라는 마니아들의 말을 두고 보려 했지만, 그날 밤도 다음날도 평양냉면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이것으로 더욱 확실해졌다. ‘평양냉면은 역시 아저씨들 음식인 게 분명해.’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서울에서 맞는 두 번째 여름, 평양냉면은 아저씨 음식이라며 얕잡아 보던 견해가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라고 묻자 남자친구는 평양냉면을 말했다. 자기 고향은 두 군데인데 한 곳은 동남아시아고, 한 곳은 이북이라고 했다. 첫 번째 고향은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오랫동안 OO대사관에서 일하신 아버지 덕분에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동남아 향신료를 일찍부터 접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직접 요리를 하시거나 종종 동남아 음식 식당에서 외식을 했기 때문에 동남아 음식에 향수가 서려 있다고 했다. 두 번째 고향은 상할머니 영향이었다. 좀 더 직접적인 이유였는데 상할머니가 이북 분이셨다고 했다. 똘망똘망한 어린이에게 거봉 껍질을 하나하나 까서 먹여 주실 정도로 남자친구를 각별하게 예뻐해 주신 분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상할머니 음식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이북 음식이 익숙하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들려준 이북 음식 중 인상 깊은 것은 고수김치였는데, 상할머니께서는 '이북에서는 고수로 김치를 담가 먹는다'라고 하시며 고수김치를 담가 주셨다고 했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뭐 먹고 싶은지 고민하면서 와요.” 세 군데의 식당 목록과 함께 말이다. 집 앞에 도착한 남자친구는 “우리 고향 음식 먹으러 갈까?”라고 대답하며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 남자친구는 오랜만에 먹는 고향 음식에 신이 났는지 나를 ‘동무’라고 부르며 장난을 걸었다.
남자친구는 많이 먹어본 사람답게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차근히 알려줬다. “먼저 국물을 한입 먹어봐. 아마 육수 향이 은은하게 느껴질 거야. 그다음엔 국물에 면을 살살 풀어서 다시 국물만 떠먹어봐. 그럼 미묘하게 바뀐 국물 맛을 느낄 수 있을 거야.” 뻥 치지 말라고, 면 몇 번 휘저었다고 어떻게 국물 맛이 변할 수가 있느냐고 반신반의하면서 남자친구가 알려준 지침을 따라 했다. 수룹. 먼저 국물을 떠먹었다. ‘어? 왜 맛있지?’ 심심한 맛이 작년에 먹었던 평양냉면을 떠올리게 했지만 뭔가 달랐다. 수룹. 수루룹. 몇 숟가락 더 떠먹었다. 왜 맛있게 느껴지는지 의아해하는 나를 보면서 남자친구는 육향이 강하게 나서 맛있는 거라고 했다. ‘아, 이게 육향이라는 거구나.’ 새로운 맛을 미각에 저장하면서 이번에는 면을 국물에 살살 풀었다. 그리고 다시 수룹, 국물을 먹었는데, 신기하게도 좀 전에 먹은 국물과는 아주 다른 맛이 느껴졌다. 육향은 약해지고 메밀 맛이 느껴졌다. 미묘하게 바뀐 육수가 슴슴한 게 자꾸만 손이 갔다. 식초도, 겨자도 두르지 않았는데 말이다. 국물과 뚝뚝 끊어지는 메밀면을 집중해서 먹었다. 배가 불러서 남긴 게 억울할 만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다 먹고 나서 생각했다. 평양냉면은 아저씨들 음식이라고 생각해 온 게 내 알량한 편견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만 서른에 접어든 내 입맛이 아저씨 입맛에 접어든 것인지 말이다. 이상한 알쏭달쏭함을 남긴, 하지만 분명하게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서른이 돼서야 듣는 것조차 처음인 냉면도 있었다. 용산에서 데이트를 하는 중이었다. 골목골목 식당과 카페를 구경하면서 걷는데 뭔가를 격하게 반기는 남자친구 시선을 따라가니 ‘진주냉면’이라고 적혀 있었다. 진주에 있는 훈련소에 입소했던 남자친구는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식사로 진주냉면을 먹었다고 했다. 평양냉면과는 달리 자극적인 감칠맛이 매력이라고 했다. 속으로 ‘아니 이러다가 전주 냉면, 대전 냉면, 수원 냉면, 오송 냉면, 영월 냉면 다 나오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냉소는 더위가 절정에 이른 8월 무렵, 미술관 데이트를 마치고 진주냉면집에 들른 날 와장창 깨졌다. 살얼음 가득한 육수, 푸짐한 면 위에 쌓인 육전 더미와 흐드러지게 올려진 계란 지단과 실고추는 난생처음 보는 비주얼이었다. 남자친구는 육수를 후루룩 떠먹더니 “진짜 냉동실에 쟁여 놓고 먹고 싶은 맛이다.” 극찬을 남기고는 면을 휘휘 저어 본격 식사를 시작했다. 뒤따라 국물 맛을 보자마자 단번에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해물 베이스의 깔끔한 국물의 시원함은 살얼음을 만나 이루 말할 수 없이 개운했고, 따뜻한 육전을 싸 먹는 조화가 훌륭했다. 평양냉면이 자기 전 생각나는 음식이라면 진주냉면은 배가 꺼지자마자 다시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
냉면에 관한 기억은 맛있고 행복한 기억이 대부분이지만 마음 한 곳이 묵직하게 내려앉는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3-4학년쯤이었을 것이다. 커다란 아이스박스 하나가 집에 배달됐다. 우체국 택배 상자 4호 정도에 해당하는 꽤 큰 박스였다. 박스를 개봉하니 초록색 면과 냉면 육수가 한가득이었다. 아빠 친구가 보내준 냉면이라고 했다. 두근두근 심장이 신나게 뛰기 시작했다. 테이블 너머 후식 냉면을 드시던 이모부를 통해 냉면에 눈뜬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엄마는 면과 계란을 삶았고, 감자탕을 수북이 담아주시던 넓고 깊은 대접에 1인 1 물냉면을 말아주셨다. 쫄깃한 초록 면발, 다데기를 살짝 풀어 짭조름한 맛을 더한 육수의 조화를 고깃집에 가지 않고도 맛볼 수 있다니! 젓가락질을 멈출 새 없이 면을 밀어 넣는데 식탁 가운데로 엄마가 요리 하나를 내려놓았다. 비빔냉면이었다. 엄마는 탕수육처럼 같이 먹는 요리로 비빔냉면을 상에 올리고는 먹어보라며 기대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면발이 초록색이어서 그런지 빨간 다데기에 잔뜩 버무려지고서도 빨갛기는커녕 거무튀튀 텁텁한 색을 띠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먼저 먹고 있던 물냉면 덕에 기대치가 최고점을 찍었고, 신나게 비빔냉면 한 젓가락을 집어 호로록 맛을 봤는데… 으잉? 이게 아닌데? 면발은 미지근했고 간은 물냉면 보다 삼삼했다. “이상해. 맛없어.” 그 한 젓가락을 끝으로 나는 비빔냉면에 손도 대지 않았다. 엄마는 그날 비빔냉면을 드셨다.
그다음번 냉면을 먹는 저녁, 엄마는 1인 1 물냉면을 말아주셨고 공용으로 먹을 비빔냉면을 상에 내셨다. “이상해. 맛없어.”라고 했던 내 반응이 마음에 걸렸는지 엄마는 콕 집어서 나에게 비빔냉면을 권하고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번에도 나는 한 젓가락 입에 넣자마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고 엄마의 비빔냉면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날도 엄마는 비빔냉면을 드셨다.
어른이 돼서 직접 만든 요리로 사람들을 대접하면서 알았다.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이들을 보는 게 얼마나 황홀한 기쁨인지. 그리고 내가 만든 요리에 미묘하게 움찔하는 표정을 포착하면 대접을 하고도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이 범벅된 오묘한 감정에 휩싸인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맛을 본 손님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던가 “맛없어”라는 말을 내뱉는 건 예의가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한마디가 요리한 당사자에게 불러일으켰을 감정을 생각해 볼 때 나는 한없이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똥말똥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이 더욱 선명해지며 미안함이 밀려온다.
나이 들며 입맛이 변했는지 아니면 추억을 미화한 탓인지 엄마가 비벼준 비빔냉면 한 젓가락이 한 번씩 생각난다. 널찍한 유리 접시에 수북이 쌓여 상에 오르던 엄마의 비빔냉면. 다시 그걸 먹을 수 있다면 한 그릇을 싹 비울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냉면이란 냉면은 다 맛을 본 후, 엄마를 만나면 엄마가 만들어 주는 비빔냉면을 실컷 먹어야겠다. 한 젓가락 먹을 때마다 엄마와 눈을 맞추고 “이거지. 이거야. 이 맛이 그리웠어 엄마!”라고 끊임없이 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