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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숙 Oct 22. 2023

쑥개떡

또 시작이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쑥떡을 검색하며 입맛 다시는 일 말이다. 식이조절을 하는 사람에게 밤 열 시가 넘어간 시각, 불 꺼진 침대 위는 위험하다. 온갖 먹고 싶은 음식들이 우르르 떠오르기 때문이다. 새빨간 달콤 양념치킨, 치즈가 듬뿍 올라간 로제 찜닭, 설탕과 소스가 뒤범벅된 핫도그, 김치 쫑쫑 썰어 참기름을 살짝 두른 비빔국수…. 천장에 굴비를 매달아 놓고 먹지 못하던 자린고비 선비 마냥 배달 어플을 유영하며 음식 사진을 넘긴다. 이보다 강력한 끌림, 강력한 유혹이 있을 수 있을까? ‘시켜, 말어? 먹어, 말어?’를 수백 번 고민한다. 하지만 유혹을 물리치고 주린 배로 잠들면 다음날 아침 뿌듯함이라는 성취감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먹고 싶었던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밤새 간절하던 음식 생각도 나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밤이 되면 또다시 강렬한 유혹에 이끌리고 만다!)

 그러나 쑥떡, 쑥떡만큼은 다르다. 밤에 생각난 쑥떡은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 지나 밤이 되어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자꾸자꾸 생각난다. ‘웬 쑥떡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극적인 양념 하나 없는 매끈하고 찰진 맨살의(?) 쑥떡은 의외로 강하다. 녹진한 쑥색, 매끈매끈, 말캉하면서도 쫄깃쫄깃한 식감. 맹맹한 게 전혀 간이 안 된 것 같지만 은은한 단맛과 함께 진한 쑥향이 퍼지는 쑥떡은 밀도 있는 포만감으로 마무리까지 완벽하다. 떡은 다이어트의 적이라는데 얄궂게도 식이조절 할 때면 쑥떡이 그렇게 생각난다.

 요 며칠은 유난히 더 그랬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서 각종 스토어에 올라온 쑥떡을 한 바퀴 둘러보며 입맛을 다셨다. 쑥으로 만든 떡가래부터 개떡, 앙금 품은 떡, 콩가루에 굴린 떡까지 치즈 마냥 쭉쭉 늘어나는 떡의 자태를 침 나오기 직전까지 감상했다. 나처럼 식이조절 중에 떡을 찾는 사람들이 꽤 되는지 다이어터를 위한 현미떡이니 곤약떡이니 하는 것들도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떡 중 당장 먹을 수 있는 것은 한 개도 없다. 떡은 여타 배달 음식처럼 주문하면 한 시간 내로 받아볼 수 있는 야식 메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야밤에 생각나는 쑥떡은 그야말로 ‘가질 수 없는 너’가 되어 나를 더 애태운다.

 이상했다. 평소 잘 먹지도 않는 쑥떡이 며칠이고 생각나는 게 말이다. 그러다 며칠 전 경은이가 내게 해 준 말 덕분에 ‘그래서 자꾸 생각이 나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언니, 소울푸드는 맛보다는 추억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까지 짜장면에 환장했는지 모르지만 짜장면은 내 한 시절을 같이 한 음식이야. 소울푸드 전당에 오를 만한 음식이지.’ 경은이가 적어준 편지를 읽고 있으니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냉동실에 쑥개떡을 광광 쟁여두고 먹던 엄마가 말이다.


 어릴 적 우리 집 냉동실에는 항상 쑥떡이 구비되어 있었다. 동그랗고 길쭉한 쑥 가래떡, 길고 넙데데한 쑥절편, 둥글고 납작한 쑥 개떡. 종류는 그때그때 달랐는데 양이 많을 땐 냉동실 한 칸이 모조리 쑥떡 차지이기도 했다. 주로 할머니가 떡을 보내주셨는데 떡이 도착하면 엄마와 나는 떡끼리 들러붙지 않도록 비닐 랩을 교차해서 떡을 하나씩 포장한 후 냉동실에 넣었다. 이렇게 해두지 않으면 떡끼리 들러붙은 채로 얼어 버려서 막상 먹으려고 할 때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어린이였던 나는 떡을 하나하나 포장하는 게 재미있어서 엄마를 도와드렸는데, 그때의 엄마 표정을 떠올리면 엄마는 정말로 행복했던 것 같다. 갓 나온 매끈한 떡을 쉼 없이 집어 먹었으니까.

 냉동된 떡은 보통 간편하게 먹기 위해 자연해동을 위해 하루 전에 꺼내두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기 마련인데 엄마는 두 방법 다 선호하지 않았다. 꼭 삼발이 찜기를 넓게 펼쳐 떡을 가지런하게 올려낸 후 떡을 쪄냈다. 우리 집 싱크대에는 항상 들러붙은 떡 반죽을 불리기 위해 물에 담가둔 삼발이가 놓여 있었다. 딱 봐도 ‘저거는 씻기 힘들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게 하는 비주얼이었다. 식탁에는 몇 입 베어 먹은 쑥 개떡이 가장자리가 말라가는 채로 찻잔 받침 위에 놓여 있고는 했다. 범인은 엄마였다. 수시로 집어 먹는 엄마의 떡이었다. 엄지와 검지로 쑥떡을 집은 채 거실 창가 한가운데서 밖을 내다보며 오물오물 떡을 먹던 엄마, 엄마는 바깥을 내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번은 구역 예배를 드리러 갔을 때였다. 당시 출석하던 교회는 금요일마다 구역끼리 예배를 드리도록 장려했다. 같은 구역으로 묶인 성도들은 서로의 집을 번갈아 방문하며 예배를 드렸는데 나와 오빠는 예배 후 집사님들이 내어 주시는 다과가 맛있어서 매주 엄마를 따라 구역 예배에 참석했다. 머리가 희끗하던 노 장로님의 말씀, 예배 후 집사님들이 정성스레 내어주시던 간식들은 온통 흐릿한 기억이 되었는데 아주 또렷하게 기억나는 간식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기름에 구운 쑥개떡이다. 시추 두 마리를 키우시던 하 집사님이 내 주신 간식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집에서 많이 보던 쑥 개떡이었지만 뭔가 달랐다.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표면이 기름을 한껏 머금고 있었다.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개떡을 구운 후 설탕물인지 시럽인지 꿀인지 모를 단 물을 발라낸 간식이었다. 한 입 베어 문 기억이 여태껏 강렬하다. 매끄럽고 담백한 개떡만 먹고 자란 어린이 김은숙에게 충격적인 맛이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느껴진 맛은 극강의 단맛이었다. 기름에 절여진 개떡은 학교 급식으로 종종 나오는 수수부꾸미 같은 느낌이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진한 쑥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는 점이었다. 충격은 비단 나만 받은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집사님들은 구운 개떡을 집어 드시면서 집사님에게 레시피를 물어보셨다. 그날 구역 예배 주인공은 단연코 기름에 구운 개떡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오리지널 개떡을 고집했다. 기름에 구운 개떡은 그날 먹은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삼발이에 쪄 낸 쑥개떡이었다. 본연의 맛이 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체형 관리를 위해서였는지 모르겠다. 이유는 이제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만 여하튼 엄마는 언제나 오리지널 그대로의 개떡을 먹었다.


 엄마가 쑥떡을 달고 산 이유를 조금 더 자란 어린이가 되었을 때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쾌변, 엄마의 원활한 장 운동을 위해서였다. 엄마가 내게 했던 말 중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말이 많지는 않은데, 몇 안 되는 말들 중 또렷이 기억나는 말이 있다. 청국장이 식탁에 오른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TV에 나오는 여배우들 예쁘지? 이영애, 고현정, 송윤아, 다들 아침마다 청국장 먹어서 그렇게 피부가 좋은 거야. 아침마다 청국장 먹고 화장실 잘 가서 그러는 거야.” 진위를 전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높은 확률로 엄마가 지어낸 말일 게 분명하다.

 엄마는 똥 잘 싸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반면 변비가 무엇인지, 똥을 못 싸는 답답함이 당최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초등학생 김은숙은 엄마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워낙 잘 먹었고, 먹자마자 곧바로 소화되기라도 하는 듯 먹는 족족 화장실로 직행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똥을 잘 싸기 위해 왜 아침마다 꼬릿한 청국장을 먹어야 하는지,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하는지, 기름에 굽지도 않고 설탕물을 바르지도 않은 쑥개떡을 몇 개씩이나 집어 먹을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세월이 지나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엄마가 얼마나 지독한 변비로 고생을 했는지 말이다. 엄마는 굉장히 늘씬했다. 만삭 체중이 지금 내 체중인 55kg이었고, 자녀 넷을 낳고도 키 162cm에 44kg을 유지했다. 어릴 적 엄마가 샤워를 시켜줄 때면 물이 한 사발 담길 것만 같은 엄마의 쇄골을 보며 ‘저러다 뼈가 부러지면 어떡하지?’ 심각하게 걱정했었다. 엄마는 원체 살이 잘 붙지 않는 체질이었다고 하는데 젊은 시절엔 일부러 더 안 먹었다고 했다. 다이어트로 식단 조절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음식물을 적정량 섭취하지 않으면 똥 한 번 싸는 게 여간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도 그랬다. 간호조무사로,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던 20대 초반에 하루에 몇 알 씩이고 변비약을 먹었다고 했다.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아빠가 들려준 얘기로는 그렇다. 젊은 시절부터 변비약에 의존했으니 아마도 엄마의 장은 약에 내성이 생겼을 거고, 변비약 없이는 원활한 장 운동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평생 변비약에 의존할 수는 없으니 장 운동을 활발하게 돕는 자연식품을 찾게 되었을 것이고, 그중 하나가 바로 쑥떡이었으리라.


 어른이 될수록 내게서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였나? 모교회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날 보시며 “클수록 진희 모습이 있어.”라고 하셨다. 나는 머리만 밀면 아빠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아빠를 쏙 빼닮았기 때문에 내게서 엄마가 보인다는 말을 믿지 않았었다. 엄마가 워낙 예뻤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는 넘겼다.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가다 상가 유리창에 비친 내 옆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긴 생머리, 사각턱과 광대의 실루엣에서 얼핏 엄마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목구비는 영락없이 아빠 판박이지만 갈수록 엄마의 분위기가 은은하게 나오는 중이다. 얼마 전엔 남자친구가 찍어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늘이 맑았던 날,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웃는 표정이 엄마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반달로 구부러진 눈, 살짝 앙 다문 입술이 꼭 날 보고 웃어 주던 엄마의 미소 같았다.

 엄마의 분위기 말고도 엄마를 닮아가는 게 늘어간다. 장 운동이 원활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 변비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것도 닮았다. 서울 생활 2년 차가 되니 좀 나아졌다만,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땐 출근 전 화장실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게 아침 루틴 중 하나였다. 아침이면 똥을 싸기 위해 화장실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도, 청국장의 맛을 알아버린 것도, 그리고 강력하게 쑥떡에 이끌리는 것도 엄마를 닮았다. 참 신기한 일이다. 당연하게 자리 잡은 나의 일상이 알고 보면 엄마를 많이 닮아있다는 게 말이다.

 대체로 GI지수가 높은 떡은 다이어트에 좋지 않다고 해서 매번 검색에만 적극적이었지 소비에는 소극적이었다. 보기만 해도 쫀득한 식감과 진한 쑥향이 느껴지는 것 같은 해풍 쑥떡이며, 납작하게 누른 손가락 자국이 살아 있는 진녹색의 쑥 개떡이며, 꿀을 퐁당 찍어 입에 넣고 싶은 쑥 가래떡이며, 팥 앙금을 품은 채 콩가루에 버무려진 앙금 쑥떡이며, 모조리 화중지병으로 끝날 때가 많았는데 안 되겠다. 쑥떡에 끌리는 이유가 엄마를 닮은 엄마 딸이기 때문이었다니! 다이어트고 GI 지수고 일단 내팽개치고 쑥떡을 먹어야겠다. 동네 떡집을 돌아볼까, 아님 며칠 째 입맛만 다시던 온라인 스토어에서 주문을 해볼까. 오래도록 참아 왔으니 이왕이면 엄마처럼 냉동실에 쟁여볼 요량으로 쑥떡 쇼핑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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