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숙 Oct 22. 2023

샌드위치

요즘 식빵은 크고 두툼하다. 식빵 앞에서 ‘라떼는 말이야’를 들먹이자니 조금 민망하지만 나 어릴 적 식빵은 지금 내 손바닥 한쪽보다도 작았다. 내 손바닥 두 쪽을 나란히 붙인 게 얼추 요즘 식빵 크기인 걸 감안할 때 상당히 작은 크기다. 식빵 크기가 커지기 시작한 건 프랜차이즈 빵집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지금이야 프랜차이즈 빵집 없는 동네 찾기가 힘들지만 20년 전만 해도 동네 빵집들이 주름잡고 있었다. 동네빵집 빵들은 종류가 단출했는데 둥근 단팥빵과 소보로빵, 길쭉한 크림빵과 땅콩크림빵, 반달 모양의 슈크림빵과 구름 모양 피자빵은 빵집끼리 약속이라도 한 듯 어느 빵집을 가던 메인 코너에 진열되어 있었다. 지금이야 없으면 섭섭한 패스츄리, 치아바타, 베이글은 당시 없었다. 조각 케이크도 없었다. 지금은 빵집 구석 벽면으로 밀려난 단팥빵, 크림빵, 슈크림빵 같은  클래식한 빵들이 빵집 베스트셀러이던 시절이었다. 아참, 그래 식빵. 식빵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지. 

 우리 집이 주로 애용한 빵집은 동네 마트 빵집이었다. 가장 많이 구입한 빵은 우유 식빵이었는데 하얀색 정사각형 메모지에 엄마가 적어주던 심부름 목록에는 계란, 오뎅, 우유, 그리고 우유 식빵이 가장 자주 등장했다. 

 우리 가족이 식빵을 먹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 토스트. 이삭 토스트만큼이나 훌륭한 맛을 자랑하는 엄마표 토스트는 우리 식구의 든든한 아침 식사 메뉴 중 하나였다. 먼저 빵을 프라이팬에 굽는다. 우유 식빵은 겉면이 살짝 노릇해질 정도로 구워도 속이 촉촉했다. 구운 빵 위에 달걀프라이를 올리고, 달걀 위에 케첩을 무심하게 슥슥 짜낸 후 사과가 있으면 얇게 슬라이스 해서 두 조각 정도 올렸는데 사과는 없으면 생략이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구운 식빵으로 뚜껑을 덮어준 후 황설탕을 솔솔솔 뿌려주면 끝. 엄마는 토스트를 은박 포일이나 비닐 랩으로 꽁꽁 싸서 한 개씩 건네줬는데 그렇게 하면 뜨거운 열에 설탕은 녹고 빵이 촉촉해져서 더 맛있었다.

 우리 가족이 식빵을 먹는 방법 두 번째, 프렌치토스트. 프렌치토스트는 주로 주말 오후 간식이었다. 우유를 섞어 휘휘 젓은 달걀물에 4등분으로 자른 식빵 한 줌을 푹 적신다. 팬에 식용유를 둘러 달걀물에 흠뻑 적신 식빵을 구운 후 황설탕을 솔솔 뿌리면 완성. 태생부터가 촉촉하고 보들보들한 우유 식빵은 계란물을 만나면 몇 배는 더 부드러워졌는데 거기에 설탕이 적당히 스며 만들어 내는 달달한 맛은, 이렇게까지 기분 좋을 일인가 싶을 정도로 황홀했다. 넓적한 유리 접시에 프렌치토스트를 몇 겹으로 쌓아 올려 집어 먹고 있으면 그야말로 한가로운 오후가 따로 없었다.

 우리 가족이 식빵을 먹는 방법 세 번째, 샌드위치. 엄마의 샌드위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 요리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요네즈가 듬뿍듬뿍 들어가기 때문이다. 손이 큰 엄마는 한번 샌드위치를 만들 때면 식빵 한 줄을 다 사용했다. 당시 동네 빵집 식빵은 한 줄에 35cm 정도로 꽤나 개수가 많은 편이었다. 엄마는 식빵 한 줄을 통째로 샌드위치로 만들었다. 그러면 그만큼의 양에 상응하는 샌드위치 소가 필요했다.

  달걀은 한 번 삶을 때 열다섯 개에서 스무 개 정도를 삶았던 것 같다. 삶은 달걀을 찬물에 담가 껍질을 까고, 깊은 볼에 담아 숟가락으로 으깼다. 숟가락만으로는 잘 으깨지지 않으니 먼저 가위로 툭툭 자른 후 마저 숟가락으로 으깨줬다. 달걀이 잘게 으깨지면 새끼손톱보다 더 작은 크기로 썰어 낸 정사각형 모양의 사과를 투하했는데 아삭한 식감을 위해서였다. 우리 집은 엄마, 아빠 말고는 오이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샌드위치 식감 담당은 언제나 사과였다. 으깬 달걀에 사과를 투하한 후 가장 중요한 마요네즈를 한 바퀴 두 바퀴 둘러준다. 그러고 나서 버무리면 되는데 엄마가 나에게 마요네즈에 버무리는 일을 맡기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아낌없이 마요네즈를 쭈욱 쭉쭉 짜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로 놀던 재료들이 마요네즈를 만나 질퍼덕질퍼덕 소리를 내면서 한 데 어우러지면 군침이 삭 돈다. 하지만 흥분해서 재료를 마구마구 휘저어서는 안 된다. 양푼에 비빔밥 비비듯 하면 소가 물러지면서 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신이 나도 평정심을 유지한 채 살살 뒤적이며 섞어야 한다. 아, 중간에 후추와 소금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달걀노른자의 황금빛이 돌며 비로소 샌드위치 소가 완성되면 빵 위에 얹기만 하면 된다. 굽지 않은 맨 우유 식빵에 두툼하게 소를 얹은 후 뚜껑을 덮어 내면 완성…! 이어야 하는데 한 가지 작업이 더 필요했다. 바로 보관을 위한 포장 작업이다. 우리 집이 아무리 대식가 집안이라고는 하지만 식빵 한 줄 분량의 샌드위치를 한 번에 먹을 수는 없었기 보관은  중요한 관건이었다. 샌드위치를 절반 크기로 자른 후 하나씩 비닐 랩으로 꽁꽁 감싸서  원래 식빵이 놓여 있던 모양으로 식빵 봉지에 차곡차곡 넣어주면 비로소 진짜 끝이다. 그렇게 샌드위치 보관 작업까지 마무리를 하면 식빵들은 언제 봉지 밖으로 나온 적이나 있었냐는 듯, 그대로 빵집 진열대에 올리면 판매를 위한 식빵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가지런하게 정리되었다. 이제 정말로 먹는 일만 남았는데 나는 샌드위치 보다도 볼에 남은 샌드위치 소를 퍼먹는 것을 더 좋아했다. 물론 운이 좋아야 멀을 수 있었다. 엄마가 빵 위에 소를 올릴 때면 ‘제발… 조금만, 조금만이라도 남아라….’라고 속으로 외치며 엄마 옆을 알짱거렸다.

 냉장고 싱싱 칸에 자리한 샌드위치는 맛있고, 포만감이 든든하면서도 꺼내먹기 간편해서 훌륭한 간식이었다. 학교 다녀와서 한 개, 저녁 뉴스 보면서 한 개, 시험공부하면서 한 개 집어 먹으면 샌드위치는 며칠이면 사라졌다. 한 번은 시험공부를 하던 꽤 늦은 밤이었다. 슬슬 배가 고파서 싱싱 칸을 열었는데 샌드위치가 몇 개 남지 않았었다. 두세 개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걸 보고서는 굉장한 속상함을 느꼈던 게 선명하다.  


 지금은 야채만 듬뿍 넣은 아삭하고 신선한 샌드위치를 주로 먹지만 태어나서 처음 맛을 들인 샌드위치가 야채 하나 없는 에그 마요 샌드위치여서인지 시중에서 파는 채소와 토마토 들어간 샌드위치를 처음 먹었을 때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샌드위치에 아삭함이라니? 샌드위치에 토마토라니?? 샌드위치에 오이라니???’ 샌드위치는 마요네즈와 달걀의 고소한 풍미가 입안을 휘감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말이다.

 종종 편의점에서 어린 시절 먹던 샌드위치와 비슷한 맛을 발견한다. 냉장칸 진열대에서 뭉개뭉계란을 발견했을 때는 먹어보지도 않고 ‘이건 추억의 맛’이라며 냉큼 집어 들었는데, 가히 엄마 옆에서 남은 샌드위치 소를 싹싹 긁어먹던 그 맛이었다. 이후로 다양한 에그 마요 샐러드, 에그 마요 샌드위치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 현상을 보면서 20년 전 우리 엄마야 말로 진정한 맛. 잘. 알, 맛의 선구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 점심은 회사 앞 병원에 들러 진료를 본 탓에 빠르게 서브웨이에 들러 샌드위치를 포장해서 사무실로 복귀했다. 에그마요를 추가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패스했다. 20년 전 김은숙 어린이는 볼살 통통 뱃살 통통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웠지만 서른이 된 지금은 볼살 통통 뱃살 통통 걱정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에그마요 추가하면 진짜 끝내주게 맛있는 거 내가 아는데, 정말 정말 잘 아는데…. 타임머신이 있다면 엄마가 샌드위치를 만드는 순간으로 돌아가서 원 없이 에그마요도 퍼먹고 냉장고에서 야금야금 샌드위치도 하나씩 꺼내 먹고 싶다. 다시 볼살 통통 보름달 김은숙이 되어도 좋으니 엄마 옆에서 칼로리 걱정 없이 세상 행복하게 에그 마요를 싹싹 긁어먹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밤이다. 싱싱 칸을 가득 채운 샌드위치가 그리워지는 밤이다.   

이전 04화 짜장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