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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숙 Oct 22. 2023

짜장면

마을 도서관으로 외근 나갔을 때의 일이다. 넉 달 전의 나는 문화 사업 기획안을 작성하는 일로 꽤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문화 사업 담당자가 되었고 일 년에 네 번 정도 문화 사업 돌리는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이미 두 개의 기획안이 반려된 상황이었다. 이전 직장에서 비슷한 사업을 도맡아 했기 때문에 비교적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사업을 기획하는 것과 교사를 대상으로 사업을 기획하는 것은 다른 영역의 일이었다. 가령 독서 모임을 기획한다고 하면, 도서 선정부터 공간 구성, 제공할 생각거리와 활동 등을 다르게 설정하는 뾰족한 기획이 필요한데 교사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획안은 뭉툭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고배 끝에 <어린이 관찰 일지>를 떠올렸을 때 ‘어? 이거다!’ 하는 느낌이 왔다. 수요가 있어 보였고, 비슷한 결을 가진 도서들이 시장에 꽤 있었다. ‘하루 한 명 어린이를 관찰하고 기록합니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아이디어를 동료들에게 슬쩍 풀어놓았을 때 동료들의 반응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드디어 됐다 싶었다. 기획 아이디어를 뾰족하고 구체적으로 백지 위에 담아내는 일만 남았다.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참고 자료를 맘껏 뒤적뒤적 보고 싶어서 오전 근무를 끝내고 외근을 달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참고하고 싶은 책들이 작은 마을 도서관과 구에서 가장 큰 공공 도서관에 각각 비치 중이었다. 다행히 두 도서관 거리가 도보 20분 정도로 멀지 않아서 작은 도서관에 먼저 들른 후 큰 도서관에서 업무를 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계획엔 언제나 플랜 B가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마을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한 시에서 두 시는 점심시간입니다.’ 마을 도서관을 처음 이용해 보는 나로서는 점심시간을 생각지 못했다. 일반 도서관처럼 점심시간 구분 없이 이용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는 50분, 그러니까 한 시간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50분을 어디서 보낼까 고민하며 지도 앱을 켰다. 예보에 없던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내가 좋아하는 ‘걸어서 새로운 동네 탐방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커피를 한 잔 할까, 점심을 먹을까를 고민하면서 고개를 들어 비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찰나에 뭔가가 내 시선을 강렬하게 빼앗았다. 마을 도서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빨간색 커다란 간판, 옥향루. 중국집이었다. 오래된 가게처럼 보였는데, 외진 곳에 위치한 작은 골목에 비해 식당 규모가 꽤 커 보였다. 맛집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는 가게. 방송인 유재석과 조세호가 방문한 인증 현수막을 보며 옥향루로 마음을 굳히고 후다닥 비를 피해 식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저… 사장님, 1인 식사도 되나요?” 혼자서 중국집에 방문하기는 처음이었고, 식당 내 1인 테이블이 없는 것은 물론 대부분 좌석이 4인석이었기 때문에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사장님은 쭈뼛쭈뼛 묻는 게 무색하게 쿨하게 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앉자마자 짜장면 한 그릇을 주문했다.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먹는 음식의 종류가 현저하게 줄었다. 여러 선택지에서 맘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배달 음식을 줄이니 자연스레 먹는 음식 종류가 줄은 것이다. 1인 가구원이 배달 최소 금액을 채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게다가 ‘이렇게나 올랐다고?’하며 몇 번이나 생각해 봐도 비싸게 느껴지는 배달료를 고려하니 자연스레 배달 음식 먹는 횟수가 줄었다. 지난 1년 동안 자취방에서 시켜 먹은 배달 내역을 쭉 보면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시켜 먹은 마라탕, 동생들이 놀러 왔을 때 야식으로 먹은 피자, 술 먹은 다음날 살기 위해 친구와 시켜 먹은 해장국, 그리고 혼자 시켜 먹은 또 한 번의 해장국과 한 번의 양념치킨까지 총 다섯 번이 전부다. 집에 귀인이 방문했을 때거나 응급상황이거나 두 상황이 아니면 배달 음식을 먹지 않았다. (술병은 매우 긴급한 응급 상황이고, 한밤에 뇌리를 스치는 양념치킨은 비상 상황이다.)

 배달 음식을 먹지 않으니 짜장면 먹을 기회가 줄었다. 마지막으로 짜장면을 먹은 게 언제였더라? 사무실에 옛 동료가 놀러 왔을 때 같이 시켜 먹었던 게 마지막이니 족히 5개월은 지난 일이다. 간혹 현관문에 요즘으로써는 보기 드문 ‘12,000원 이상 전화 주문 시 배달 무료’라고 적힌 마그넷 홍보물이 붙어 있기도 했지만 짜장면이야말로 최소 주문 금액을 채우기 어려운 음식이 아니던가? ‘아니 짜장면은 짜장면에 탕수육, 군만두까지는 먹어 줘야지. 그럼 최소 주문 금액 정도는 훌쩍 넘길 수 있을 텐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욕망의 소리를 따라 왕창 주문하면 99.99%의 확률로 음식이 남을 게 뻔하다. 나의 자취 지론 첫 번째 ‘음식물 쓰레기는 최대한 만들지 않는다!’ 잉여 음식물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초파리며 버리는 귀찮음이며…. 실제로 1년 간 자취를 하면서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버린 게 두 번 밖에 되지 않는다.) 머릿수가 문제라면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 될 터지만 어쩐지 친구들과 밥 약속에서 짜장면을 먹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뭐 먹을까?” 했을 때 “짜장면!”을 말하는 건 왜 영 어색한 일이 돼버린 것인지…. 가끔 정말이지 짜장면이 당길 때면 ‘한 그릇만 뚝딱 먹고 나올까?’라고 생각하거나 ‘한 그릇만 포장해 달라고 할까?’라고 고민하지만 실행률은 언제나 0%다.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짜장면 한 그릇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장면을 혼자 비비고 있자니 코웃음 나는 얘기겠지만 어른이라는 허상이 있다면 그 허상에 한 발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찰박찰박 전분기 가득한 면에 뜨거운 짜장이 들러붙으며 까맣게 비벼지는 짜장면에 군침이 확 돌았다.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어디에라도 자랑하고 싶어서 잘 비벼진 짜장면 사진을 가족 카톡방에 공유했더니 아빠에게 답장이 왔다. 

 “딸~ 어디야? 이제 점심 먹어?” 외근 나왔다가 짜장면 한 그릇 먹는 중이라고 답장을 보내고 나니, 아빠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 내 나이 때 한창 제약회사 영업 사원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던 우리 아빠. 그때의 아빠도 혼자서 짜장면을 비비는 날이 많았을까? 

 한 젓가락, 두 젓가락 달달하고 적당히 기름진 짜장면을 오물거린 후 고춧가루를 톡톡 뿌렸다. 역시 짜장면엔 고춧가루지.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가 시원했는지 사장님이 가게문을 활짝 열어젖히셨는데, 하늘이 뚫린 것처럼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시원하게, 만족스럽게 짜장면 한 그릇을 싹싹 비웠다. 


 도서관 두 곳을 돌고 원대로 참고 자료를 맘껏 뒤적이며 기획안을 완성했다. 기획안의 요지는 하루 한 명, 오늘의 어린이 한 명을 기록하거나 지금은 어른이 되어버린 어린 시절의 나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매일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획안 예시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의 어린이 관찰일지 >> 어린 시절의 나 관찰하기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일이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3월 한 달 동안 1학년들에게 급식을 제공하지 않았다. 덕분에 여덟 살 3월 한 달 동안은 원 없이 짜장면을 먹을 수 있었다. 내가 하교하면 엄마는 중국집에 전화를 거셨다. 그리고 딱 한 그릇, 짜장면 딱 한 그릇을 주문하셨다. 감사하게도 중국집은 3,000원짜리 짜장면 한 그릇을 불지 않은 상태로 정성껏 배달해 주셨다. 엄마와 나는 멀쩡한 식탁을 놔두고 거실에 작은 소반을 펴고 마주 앉아 짜장면을 나눠 먹었다. 여차하면 서로의 이마가 부딪히는 작은 소반이었는데 우리는 소반을 두고 마주 앉아 짜장면을 나눠 먹었다. 투박한 모양으로 큼직하게 썰린 감자가 별미였던 짜장과 후식으로 제공되는 요구르트와 옥수수 맛탕까지, 햇볕 드는 거실에 앉아 엄마와 짜장면을 나눠 먹는 시간이면 낯선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던 긴장은 금세 스르르 풀릴 수 있었다. 짜장면은 초등학교 1학년 김은숙 어린이를 위한 최고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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