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신을 묻지 않고 살아갈까
나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오십이 넘도록 살아온 사람이 자기 자신을 모른다니. 하지만 돌이켜보면 분명 그랬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어떤 순간에 가장 나다운지 — 그런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 묻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묻지 못한 것이 더 정확하다. 삶이 늘 먼저였기 때문이다.
열일곱에 일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인생은 ‘해내야 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시키는 일을 잘하는 것.
맡은 자리를 지키는 것.
기한에 맞추는 것.
아마 우리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해내는 일에는 능숙하지만, 스스로를 묻는 일에는 서툰 삶. 성실함은 배웠지만, 자기 이해는 배우지 못한 시간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거창한 결심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 날 새벽, 잠이 일찍 깼고, 조용한 시간이 있었고, 쓸 수 있는 도구가 있었다. 그래서 썼다. 그날 있었던 일, 문득 떠오른 생각, 하지 못한 말. 그저 적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기록이었다. 하루를 정리하는 습관 같은 것. 그런데 시간이 지나 글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쓴 문장 속에서 내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나를 감정이 무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울지 않고, 쉽게 화내지 않고, 대부분의 일을 담담하게 넘기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바로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순간에는 침묵하지만, 마음 안에서는 오래 머무는 사람. 글을 쓰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는 걸.
또 하나.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다고 여겼다. 오래 일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재능이 아니라 버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쓰며 깨달았다. 나는 현장을 읽는 사람이었다.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감지하고, 상황의 흐름을 관찰하고, 그것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는 사람. 그 시간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나만의 시선으로 쌓여 있었다.
글은 거울 같았다.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비추는 거울. 쓰는 순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면 거기에 내가 있었다. 내가 무엇에 흔들리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말로는 한 번도 또렷하게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이미 문장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놀라운 건, 글을 쓸수록 답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질문이 늘어난다는 사실이었다. 한 편을 쓰면 또 다른 물음이 생겼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그 질문이 다음 문장이 되었고, 다음 글이 되었다. 그렇게 질문을 이어가는 동안, 나는 조금씩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왜 자신을 묻지 않고 살아갈까.
아마도 삶이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 책임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많고, 멈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스스로를 묻지 않으면 끝내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쓰지 않았다면, 나는 나를 오해한 채 살았을 것이다.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라고, 그저 맡은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쳤을 것이다.
글은 나를 설명하기 전에 나를 드러냈다.
말로 꺼내지 못한 것들을 문장으로 펼쳐놓고, 그 안에서 나를 하나씩 발견하게 했다. 빠르지 않게, 서두르지 않게, 한 줄씩.
지금도 나는 나를 다 알지 못한다. 아마 끝까지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다시 앉아 한 줄을 쓸 것이다. 그 한 줄이 오늘의 나를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자신을 묻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조용히 앉아 한 줄을 쓰는 일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혹시 당신도 글을 쓰며
자신을 조금씩 발견하고 있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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