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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Oct 22. 2024

행복한 우리 집

 “이사라면 이제 *엉성시럽다.”


 엄마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화장을 하지 않아 햇살에 도드라진 기미 때문일까. 그늘진 얼굴이 수척했다. 이사를 가는 게 어떠냐, 여긴 너무 가파른 곳에 있다며 효녀인 척 내뱉은 말을 후회했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바다를 건너왔을 때 부모님은 이미 처음 보는 아파트로 이사하신 후였다. 지하철까지 도보로 10분에 마트도 가까웠다. 하지만 야트막한 언덕을 연상시키는 진입로는 생각보다 높고 길었다. 지하철 바로 옆에 있는 5층짜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살 생각도 없으셨다는데 가격이 몇 천은 올랐다. 재개발 이야기가 들려오는 걸 봐서는 몇 년 뒤에 새 아파트가 들어설지도 모른다.


 “다 썩은 아파트 사가지고.. 이 아파트만 똥값이다!”


 아빠는 애꿎은 엄마를 원망하며 때때로 분통을 터트렸지만 엄마는 묵묵했다. 다시는 이사를 가지 않겠다는 그녀의 굳은 의지가 굽은 등허리에서 배어 나왔다.  

 기억 속 첫 번째 우리 집은 시장통에 있었다. 붉은색 조명 아래 토막 난 고기가 들어찬 진열장 너머의 작은 셋방이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다. 정육점 속 부모님은 매일이 바쁘셔서 어린 딸내미는 시장골목을 누비며 자유롭게 자랐다. 분식집 친구네 다락방에 올라가 숨바꼭질을 하고 연탄불에 똥과자를 만들다가 얼굴을 데이기도 했다. 잡기놀이를 하다가 아무 데나 던져 놓은 씽씽이를 두 번째 잊어버렸을 때는 감히 다시 사달라는 소리를 꺼내지 못했다. 방앗간을 하는 친구집에는 책이 많아서 정신없이 읽다 보면 시간이 물처럼 르고는 했다. 방 한 구석에 등을 기대고 책을 읽는 나를 내버려 두고 친구네는 티브이를 보며 저녁을 먹었다. 그걸 민폐로 생각하지 않는 정겨움이 그 시절에는 있었다.   

 정육점 오른편에는 탕제원이 있었다. 문이랄 것도 없는 탁 트인 가게였다. 왼쪽에는 원통모양의 추출기 다섯 대가 줄을 섰고 오른쪽 벽면의 반을 담금주가 차지하고 있었다. 금색으로 물든 인삼주에 햇빛이 비치면 크고 작은 유리병은 화석이 된 호박처럼 빛이 났다. 그 영롱함이 좋아서 옆집이라는 핑계로 탕제원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장소는 추출기 맞은편에 놓인 손님용 소파였다. 파충류의 진녹색을 닮은 가죽소파는 허벅지살이 닿으면 놀랍도록 차가웠다. 그 찬기를 체온으로 따뜻하게 데우는 게 좋았다. 누워서 발을 쭉 뻗어도 한참 공간이 남았다. 백설공주의 간이침대 같았다. 종종 그곳에서 놀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륵 낮잠이 들고는 했다.

 언제나 친절했던 탕제원 아주머니는 추출기에서 약이 포장돼서 나오도록 기계를 세팅한 뒤에는 자리를 비우셨다. 그날도 아무도 없는 가게에 들어와서 놀다가 선잠이 들었을 거다. 진한 한약 냄새에 눈이 떠져서 부스스 몸을 일으켰는데 발치에 못 보던 빨간색 대야가 놓여있었다. 욕조가 없던 시절에 곧잘 들어가서 물놀이를 하던 커다란 고무대야였다.

 그 속에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언가가 누워있었다. 가오리의 뱃살처럼 하얀 피부는 뻣뻣한 도화지로도, 푹신한 두부처럼도 보였다. 다리가 니은 모양으로 꺾일 만큼 덩치가 컸다. 뾰족한 귀 밑으로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분홍색 배꼽처럼 움푹 파여 있었다. 고무통 바닥에 고인 새빨간 핏물과 대조되는 창백한 피부에는 푸른빛마저 돌았다. 잠이 덜 깬 눈으로 한동안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고 나서야 과 털이 뽑힌 개라는 걸 알아차렸다. 무섭다는 생각 들지 않았다. 그저 떨어져 있는 신발을 천히 주워신고 집으로 돌아갔다. 천지 분간 못하는 어렸을 때라 불쾌하다는 기분몰라서였을까. 지금도 그 장면은 감정을 배재한 채 눌어붙은 냄비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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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시럽다. : “지긋지긋하다.”, “넌덜머리가 나다.”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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