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영 Oct 23. 2024

누구나 이상해 질 수 있다.

 그녀의 기행은 놀라웠다. 발작처럼 찾아오는 이상행동은 창문 열고 소리 지르기, 대형 쓰레기 수거함 엎어놓기, 땅바닥에 테이프 붙이기 등 다채로웠다.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측은하게 여겼던 마음 닫힌 창문 사이로 들리는 욕설이 시간을 넘어가자 말끔히 사라졌다. 간혹 창문을 열고 "이 XXX야, 좀 닥쳐!"라고 응수하는 같은 동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물론 소용없는 짓이었다. 경찰이 찾아오고 입주자 회의에서 다 같이 고소를 진행해도 그녀가 입을 다무는 일은 없었다. 쓰레기 수거함에 사슬을 달아 고정시키고 덕지덕지 붙여놓은 테이프를 주차장에서 제거해도 다음날이면 마치 시계추를 돌린 것처럼 같이 일이 반복됐다.


 "가족은 없어요?"

 "있지. 아들이랑 남편이랑 같이 사는데 가족 앞에서는 멀쩡해. 남편 옆에서 어찌나 조신하게 걸어가든지. 아들도 허우대가 멀쩡하더라니까."


 엄마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언젠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옆구리를 찔러서 보게 된 그 여자는 말 그대로 평범했다. 줄무늬 티셔츠에 긴 머리를 헐렁하게 묶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녀의 수척한 옆모습에서 평소의 독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해코지를 당할까 그만 쳐다보라며 팔을 당기는 엄마의 행동에 고개를 돌리자 금세 얼굴이 잊혔다. 희미한 인상의 여자였다.

 독립할 때까지 몇 개월을 그 여자의 목소리를 모닝콜 삼아 아침을 맞고 심심찮은 경찰의 방문을 흥미롭게 조망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이랬던가. 그녀가 레퍼토리를 시작하면 창문을 닫고 노래를 틀거나 휴대폰 볼륨을 높였다. 엄마가 저 아줌마집 옆집을 사지 않았다는 게 신의 한 수였다. 소음폭탄을 맞고 있는 옆동 이웃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평생을 바쳐 마련한 엄마집이 저런 사이코에게 걸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며 마음을 쓸어내렸다.

 결혼을 하고 엄마집을 나와서는 바다를 마주한 작은 아파트를 골라 세를 들었다. 기관사인 남편은 임신한 나를 남겨두고 항해길에 올랐다. 아들, 아들 하던 세상은 딸, 딸을 외치는 트렌드를 타고 아들을 임신한 나에게 쓸데없는 위로를 건넸다. 아들만 둘인 시어머니는 대놓고 "나는 딸이 좋은데."라서운해하셨다. 같은 시기에 딸을 임신한 친구에게는 "괜찮아."라는 갈 곳 없는 위안의 말을 들었다. 욱하는 성격에 "어머니가 고추꿈을 꾸셔서 그렇죠. 다른 태몽을 꾸지 그러셨어요?"라고 응수해 드렸다. 친구에게는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난 아들이라서 좋은데."라고 어이없어하는 태도를 내보였으나 뱃속 아기를 배려해 그 정도에서 참아주었다.

 당시 붐이었던 자연주의 출산의 유행을 타고 나 개인실에서 무통주사의 보조 없이 조산사의 도움으아기를 낳았다. 출산에 여윳돈을 쓴 이유는 산후조리원을 가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아기가 나올 시기에 맞춰 배를 내릴 예정인 남편에게 우리 아기는 우리가 보자는 의견을 냈다. 후조리사를 부르고 남편이 24시간 옆에 붙어 있으면 아늑한 우리 집표 모자동실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실상은 새벽에 울어대는 아이에게 울음분석 어플을 들이대고 백색소음을 이불 삼아 쪽잠을 잤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고생을 사서 한다는 말에 절절히 공감하는 하루하루였다.

 부족한 모유량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는데 터를 찾아가거나 집에 사람을 불러서 받는 마사지는 그때,  효과가 없었다. 이 지긋한 아주머니는 내 가슴을 수제비 반죽처럼 주무르며 "삼신할머니께 기도드려 봐. 그게 진짜 효과가 있다니까."라고 넌지시 알려주셨다. 간절한 마음에 자기 전 눈물로 기도를 드리고 비릿한 사골국과 미역국을 한 대접씩 마셨다. 당시 합리적인 육아랍시고 아침에는 내가, 낮에는 같이,  밤에는 남편이 아기를 봤는데 밤에 수유를 해야 호르몬으로 인해 젖량이 는다는 걸 안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이야기다. 이 부족해서 황달끼로 노래진 아 얼굴을 보고서야 욕심을 내려놨다. 지금 생각하면 수면부족과 육아 스트레스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다. 수세에 몰리면 누구든 쉽게 정신이 나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02화 그녀의 등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