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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Oct 23. 2024

미친 사람을 상대하는 법

 엎치락뒤치락 아기를 키우다 보니 어느새 집 계약을 갱신할 때가 왔다. 장 계약이 가능하다던 집주인은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꿔 나가 달라고 통보했다. 아기를 남겨두고 다시 바다로 나가는 남편은 불안했던지 엄마랑 같은 아파트를 얻는 게 어떻냐고 말을 꺼냈다. 고민은 필요 없었다. 누구보다 내가 엄마 곁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머리를 스친 건 옆 병동의 '그 여자'였다. 최대한 그 동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자고 결심했다. 엄마 집에 살 때 집을 보여주러 온 부동산 업자를 단지 내에서 마주치면 '이 아파트엔 미친 여자가 살아요. 솔직하게 고지했나요?'라고 은근한 시선을 보내던 나였다. 엄마집에서 적당히 먼 동호수를 골라 중계업자에게 미친 사람의 존재 여부를 미리 확인받고 전세금을 건넸다.

 손자를 자주 보게 된 부모님의 얼굴에 주름과 웃음이 동시에 피었다. 무뚝뚝한 아빠가 짓는 미소는 내 생애 처음으로 한 효도였다. 걷기 시작한 아이의 모습은 누구든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 있어 바라만 보아도 마냥 행복했다. 다만, 엄마집에 갈 때는 단지에 울리는 고성의 유무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설령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라고 해도 근처에 가고 싶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솜털 같은 아이의 양쪽귀가 더러워지는 이었다.

 엄마집에서 저녁을 얻어먹은 날이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아빠와 함께 길을 나섰다. 원래는 앞 쪽 공터를 지나가는데 아이가 길고양이를 발견한 게 화근이었다. 옆동으로 도망치는 고양이를 따라가자며 칭얼거리는 아이를 따라 탐탁지 않은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가로등이 켜지지 않은 길은 저녁 거미가 내려 우중충했다. 옆 동 입구를 지나 모퉁이를 도는데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검은 형태 실루엣은 유모차 쪽으로 몸을 꺾어 한 발을 쿵하고 내딛으며 아이를 향해 외쳤다.   


 "왁!"


 콘크리트 웅덩이에 빠진 사람처럼 온몸이 었다. 얼어붙은 전신에서 목만 옆으로 직여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녹슨 인형 같은 움직임에 관절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헐겁게 묶은 머리에 해쓱한 얼굴. 그 여자였다. -아이에게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 찰나의 순간, 온몸의 혈관이 팽팽해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급격히 치솟는 심장박동수 너머로 정제되지 않은 육두문자가 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야, 이 미친 X아!"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훈계를 늘어놓던 그녀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한 발짝 앞을 향해 내딛는 나의 그림자는 살벌했다. 서슬 퍼런 눈동자와 열린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미친 건 그녀가 아니라 나였.


 "미치려면 곱게 미쳐야지 어디서 XX이야, XX이!"


 그녀가 뭐라고 대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유모차와의 거리를 벌리며 사정없이 앞으로 돌격했다. 기세에 눌린 듯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면서도 발작 스위치가 눌러진 여자의 입에서는 알 수 없는 욕과 외계어가 튀어나왔다. 옆동 출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 가까이 그녀를 몰아붙였을 때 뒤에서 아빠가 팔을 잡았다. 진정하라고, 그만하라고 하는 당신의 말에도 멈출 수 없었다. 아이를 공격한 악어의 주둥이를 물어뜯는 하마처럼 나는 맹렬히 공격했다.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다시는 우리에게 말을 걸 수 없도록. 엄마 앞에서 아이를 건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 미친 여자의 놀란 에 새겨주고 싶었다.

 시끄러운 소동에도 엘리베이터 양 옆집은 조용했다. 아마 자주있던 소동일테지. 안타까워라.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난동의 주인공은 그 와중에 이런 생각까지 었다. 러서지 않는 나의 세에 기가 죽었는지 더듬더듬 욕설을 이어가던 그녀가 도망치듯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닫히는 문을 잡고 마지막 으름장을 던진 에야 그녀를 보내주었다. 

 끌어 오르 흥분과 분노가 자작하게 졸아들었다. 남아있는 열기에는 아직도 분함이 서려있었다. 대담한 척 움직이던 손과 다리가 그제야 부들부들 떨렸다. 검게 덩어리 진 노여움의 조각이 머릿속 프라이팬 이곳저곳에 댕이를 묻혔다.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누군가와 삿대질을 하며 싸운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뒤에 아빠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유모차에 태운 아이와 단 둘이 있었다면 미친 사람의 탈을 쓰기 전에 차가운 이성이 내 뒤통수를 팍! 쳤을 테니까. 나를 말리느라 기력을 소진한 아빠에겐 미안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길가에 내동댕이친 이웃의 지성과 품격을 그녀가 비싸게 사서 가져갔기를 간절히 바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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