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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Oct 25. 2024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이삿날 아침은 말끔히 개어 늦가을 하늘은 눈이 부셨다. 포장이사 인부들은 펼쳐놓은 단프라 박스에 짐을 챙겨 넣고 단단히 봉했다. 거실 중앙에 쌓인 파란색 박스더미가 지나온 날들의 흔적 같아 괜스레 마음이 찡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고단한 일정오후 늦게서야 끝났다. 상자로 둘러싸인  보고 한숨이 나오면서도 큰일을 끝낸 마음 홀가분했다. 이삿날이 되어서야 새 집에 처음 온 아이는 선물상자를 연 것처럼 분해서 쳤다.  


 "엄마! 화장실이 두 개예요!"

 "그렇네."


 아이의 환호에 별 일 아니라는 듯 호응했지만 올라간 입꼬리는 감출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새 아파트를 구경하러 밖으로 나갔다. 로고가 박힌 커다란 정문, 주차차단기가 있는 후문,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단지 내 바른 길, 초록으로 정비된 화단과 분수대, 투명창 너머로 보이는 피트니스 센터. 이 모든 곳이 우리 가족의 쉼터가 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다란 만족감이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곳에서 시작될 새로운 일상이 더없이 기다려졌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아들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가 다닐 학교 앞 도로는 근처에 있는 공장 때문에 큰 트럭과 공사차량이 자주 오갔다. 위험한 등굣길을 피하기 위해 학교에서는 자체적으로 셔틀버스를 운영했는데 덕분에 아들은 편하게 학교를 다녔다. 신중하고 조심성이 많은 아이가 새로운 학교에서 잘해나갈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내성적인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사귀는 게 서툴렀다. 모르는 아이가 다가오면 자리를 피해서 엄마 찾았다. '아직 어려서 그래. 점점 좋아지겠지.'하고 낙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5살이 돼서 걸려 온 학부모 상담 전화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OO 이는 규칙을 잘 지키고 수업시간에도 곧잘 따라 해요. 그런데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조금 힘들어요."


 어린이집에서 친구랑 노는 건 2할뿐, 나머지 8할은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하는데 쓴다고 했다. 친구들보다는 어른을 더 좋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선생님 옆에서 보낸다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또래 아이들의 행동은 종잡을 수가 없어서 아이는 그게 곤란했나 싶다. 안정을 중요시 여기는 아들은 처음 가는 장소를 두려워했고 낯선 친구를 힘들어했다.    

 함께 그네를 타고 놀던 어느 날, 살갑게 다가오는 여자아이를 피해 전속력으로 놀이터를 빠져나가는 아들을 보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유치원 친구를 수소문해 집으로 초대하고 친구들 모임에 적극적으로 여했다. 결과는 엄마의 좌절로 이어졌다. 아이의 성장은 더뎌서 '이렇게 사회성이 부족해서 앞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지?'하고 초보엄마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나는 지치지 않고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서 하는 그룹수업을 늘렸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밖으로 나가 다양한 행사에 얼굴을 내밀었다. 여러 사람과 부딪히고 깨져봐야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이가 7살이 되자 거짓말처럼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가 늘었다. 아들은 자신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성질 급한 엄마는 그걸 믿어주지 못한 것 같아 돌이켜보면 미안했다. 그래도 여전히 엄마랑 노는 게 제일 좋은 아이는 1학년이 돼서도 방과 후 수업을 마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다 집에서 엄마랑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얌전하고 착한 아들이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놀이에 매번 맞춰주는 건 한계가 있었다. 거기다 이 어지러워지는 게 싫었던 엄마는 아이를 위한다는 핑계로 도서관 수업을 자주 신청했다. 책을 읽다가 집 근처 국민체육센터에서 수영을 배우고 돌아오면 어느새 저녁시간이었다. 요즘 초등학생은 어른보다 바쁘다더니 그건 다 의 흉계였다. 사춘기가 오면 그라질 은밀한 계획이었지만 그전까지는 이렇게 버텨보자며  혼자 수군거렸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돼서 떠난 남편은 시원한 가을이 되자 도요새가 되어 둥지로 돌아왔다. 수평이 맞지 않아 붕 떠있는 가구 밑에 받침대를 괸 것처럼 안정감이 느껴졌다. 혹자는 기관사 남편을 둔 나를 보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7, 8개월을 떨어져 있다가 2, 3개월 동안 줄곧 얼굴을 마주하면 싸우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가족이 함께 한 시간은 소중해서 남편이 배를 타고 나가면 언제 돌아오나 오매불망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아이 역시 아빠가 집에 있고 없고에 따라 느끼는 안정감이 확연히 달라 보였다.

 남편이 친구를 만나러 외출한 어느 날에 아이와 나는 둘이서 수영을 다녀왔다. 가방을 챙기고 앉아서 숙제를 시작한 아이에게 칭찬의 말을 던지서둘러 저녁 준비를 했다. 집에 돌아온 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세대현관에서 호출신호가 옵니다.’라는 익숙지 않은 멘트 거실을 긴장시켰다. 택배는 문 앞에 두고 가고 연락 없이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순간, 이유 없는 불안감이 온몸을 칭칭 휘감았다. 당황한 마음에 잡고 있던 젓가락을 든 채로 걸어가 인터폰 화면을 응시했다. 스크린에는 처음 보는 초로의 여자가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세요?라는 내 물음 여자는 성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문 좀 열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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