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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Oct 26. 2024

뜻밖의 방문자


 "누구세요?"


 다짜고짜 문을 열라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예의 없는 그녀의 동에 내 목소리 족해졌다. 기다란 곱슬머리의 중년여성은 무언가에 쫓기듯 초조해 보였다.  


 "문 열어보라고요."

 "아, 누구냐고요!"

 "아랫집이에요."


 옛날에는 옆집 숟가락 개수를 알만큼 이웃과 가깝게 지냈다는데 요즘은 어떨까. 적어도 우리는 이사떡을 돌리지도, 옆집과 살갑게 지내지도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층 사람을 만나면 아이 교육상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게 다였다. 하지만 긴장한 아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내 옆에 붙어있었. 막 속 어색함에  만원 버스에 탄 것처럼 속이 답답. 이사를 오고 나서 1년이 지났만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아랫집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궁금해하며 문을 열었다.


 "집인데요, 좀, 조용히 해주세요."

 "네? 저희.. 집에 돌아온 지 30분 정도밖에 안 됐는데요."

 "......"

 "그리고 방금까지 식탁에서 저녁 먹고 있었어요."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 젓가락을 밀었다. 그녀는 묘한 눈빛으로 내 손을 어지게 보았다. 뭔가 착오가 있다고 생각한 나는 경계를 풀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층에서 난 소린가 봐요."

 "..... 네."


 납득을 하신 건지 어떤 건지. 짧은 대답과 함께 그녀는 계단을 내려갔다. 식탁으로 돌아온 얼떨떨한 표정의 나를 보고 아들은 물었다.


 "엄마, 누구예요?"

 "아랫집 아줌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오셨나 봐."

 "무슨 소리?"

 "글쎄? 다른 층에서 들린 소 아닐까?"


 튼튼하게 지어진 아파트인 줄 알았는데 여기도 층간소음이 있구나. 아주머니도 참 힘드셨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밥술을 떴다.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소음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터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은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도 일어난다던데. 사회면을 장식하는 불온한 사건들을 떠올리자 오싹 소름이 끼쳤다. 돌아서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마음에 걸려그날 하루는 레의 노란 얼룩이 옷에 묻은 것처럼 찝찝하게 마무리했다.

 문제는 다음 날 저녁이었다. 밥을 차려먹고 언제나처럼 아들은 숙제를,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또다시 인터폰이 울리는 게 아닌가.


 "아니, 이 집이 맞다니까?"

 "뭐가요?"

 "쿵! 쿵! 소리 내는 거!"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전 지금 설거지 중이고, 애는 조용히 숙제하고 있는데요."

 

 이 아주머니는 뭔가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그녀의 사나운 표정 너머 자리한 분노를 직면하자 억울함에 목이 메었다. 집에 돌아온 지는 대략 한 시간. 이렇게 화가 나실 만큼 우리가 시끄러웠을까? 아니다.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 봐도 짚히는 건 없었다.


 "내가 예전에도 한 번 올라왔잖아요. 가씨랑 좀 닮은 사람이랑.. 애 한 명이 있었는데."

 "랑 닮은 사람이면 저희 언니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저희 집은 아니에요."

 

 이번에는 아주머니 쉽게 돌아 않았다. 언제 이사 왔냐, 예전에는 이런 소리가 안 들렸다, 내가 참다 참다 올라온 거다 등등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아주머니의 눈에는 연한 독기가 서려있었다. 저번에 나눴던 짧은 대화에서는 몰랐는데 이 지방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들어본 적 없는 독특한 억양이 가뜩이나 날카로워진 신경을 자극했다.

 어제는 그저 당황스럽고 억울했다면 오늘은 귓가가 슬며시 달아올랐다. 이사는 1년 전에 왔다, 그럼 1년이나 참으신 거냐, 정확히 어떤 소리가 들리는 건지 말해달라, 앞으로 주의하겠지만 모든 소리가 우리 집에서 난다고 생각지 말아 달라. 나는 지지 않고 아주머니의 말을 반박했다. 수평을 달리는 서로의 입장에 우리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두꺼운 철문 사이로 헤어졌다.

 억울한 마음뿐이었다. 저녁으로 먹었던 미역국이 몸속에서 불어 온몸을 가득 채운 느낌이었다. 편이 일을 쉬고 있긴  둘이서 자주 외출하는 편다. 아이를 픽업해서 일정을 끝내면 저녁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에도 하루 종일 나가있는 편인데 이렇게 항의를 받을 만큼 우리가 시끄러웠단 말인가. 더구나 방금 아주머니가 올라온 시간의 우리는 맹세컨대 용했다.

 운동을 다녀온 남편에게 어제와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남편은 '이상한 일이네.'라는 말을 끝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직접 경험한 일이 아니니 와닿지 않겠지. 의심에 가득 찬 그녀눈초리가 머릿속 잔상이 되어 가슴을 콕콕 찔렀다. 밤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을 뒤적였다. 그러다가 문뜩 아주머니가 한 말이 생각났다.     


 "내가 예전에도 한 번 올라왔잖아요. 가씨랑 좀 닮은 사람이랑.. 애 한 명이 있었는데."


 결혼 후 다른 지방에서 살고 있는 언니는 친정에 들렀다가 우리 집에서 자고 가곤 했다. 내가 잠시 아이를 맡긴 사이에 아랫집 아주머니를 만났나 보다. 언니라면 이 사람이 무슨 얘길 하는지 알고 있을지도 모른. 나는 얼른 메신저 창을 열어 문자를 보냈지만 이 시간에 답이 올리 만무했다.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휴대폰 화면을 껐다. 억지로라도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부디 아주머니가 자신의 착오를 깨달았으면. 어지는 의식 속에서 오해가 풀린 그녀가 웃으며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걸 느끼며 수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늦게 잔 여파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허리를 일으켰다. 더듬더듬 손을 뻗어 습관처럼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스름한 방 안을 비추는 화면의 빛 아래로 언니의 답장이 보였다.


 

 처음으로 아랫집 사람이 미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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