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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Oct 26. 2024

우리 아내가 좀 예민합니다.

 남편이 배를 타고 있는 동안은 최대한 절약하는 삶을 산다. 외식을 줄이고 여행은 가지 않는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도서관이나 공공장소의 이벤트를 최대한 활용한다. 새 물건을 사기 전에 쓸만한 중고용품을 검색하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닌다. 남편은 배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때문에 한 사람 분의 생활비를 오롯이 저할 수 있다.

 대신 남편이 배를 내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억눌렀던 소비욕구를 마음껏 발산한다. 그동안의 금욕생활은 육지에 발을 딛고 생활하는 3개월을 위한 수도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70끼 중에서 한 끼도 실패하고 싶지 않아."


 배에서 나오는 식사는 한계가 있어서 결국은 같은 메뉴를 지겹게 먹게 된다. 신선한 식재료의 보관이 어려워서 냉동식품과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다. 요리사인 시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미식가인 남편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그의 식욕은 폭발한다.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고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고민한다.

 나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고 하는 무던한 사람이라 가능한 한 남편의 욕구에 맞다. 아들이 생긴 후에는 둘이서 먹고 싶은 게 다를 때 중재하는 중직을 겸하고 있다. 식욕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나에게 중요한 건 여행욕다. 그가 배를 탄 순간부터 가족여행을 설계한다. 행선지를 정하고 나면 가고 싶은 곳의 목록을 만든다. 리스트를 보고 여행 루트를 짜는 건 남편이다. 길눈이 밝은 남편은 자신이 찾은 맛집을 추가해서 완벽한 일정을 위해 몇 번이고 수정 더한다.

  우리는 오랜만에 한국과 가까운 오사카에 다녀오기로 했다. 데믹 이후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었다. 밀봉한 상자의 뚜껑을 열고 자고 있던 역마살을 꺼내 들었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3일 전에 찾아왔다. 언니는 그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데 그녀는 도대체 누구와 얘기를 나눈 것일까. 우리 집과 아랫집 사이에 행우주라도 존재하는 걸까. 고민을 하면 할수록 생각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아니. 일단은 눈앞의 여행에 집중해야지. 꺼림칙한 각은 반듯하게 개어서 캐리어에 집어 넣었. 그렇게 우리는 3주 동안 집을 비웠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피곤아쉬움이 함께 한다. 지인에게 줄 선물로 트렁크는  찼는데 우리의 마음은 어딘가 허전해서 돌아오는 택시 안은 조용했다. 일상에서의 일탈은 찰나의 도파민을 선하고 공항에 도착한 순간 사그라들었다. 종알거리던 아들은 엄마의 싱거운 대답을 몇 번 듣더니 스르륵 잠이 들었다. 내일부터 다시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는구나. 아쉬워라.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끔하게 빗나갔다. 여행 후의 나른함을 풀기도 전에 익숙한 벨소리가 공기를 두드렸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우리가 여행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날 저녁에 재등장했다. 이번에는 남편을 대동하고서.


 "실례합니다. 아랫집에서 왔는데요."


 키가 크고 짧은 머리의 중년 남성은 온화한 표정부터가 아내와 달랐다. 해를 구하고 대화를 청한 그를 현관에서 맞이했다. 번에는 나도 남편과 함께였다. 이건 무슨 2:2 싸움도 아니고. 마음속 긴장감이 고조됐다. 남편 뒤에 서 있는 아주머니 무표정 속을 서늘하게 만들었. 웬일로 조용하지. 전략을 바꿨나.  


 "그... 윗집에서 소리가 난다고 해서요. 우리 아내가 좀.. 예민합니다. 죄송하지만 집 안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미안한 기색이 엿보이는 그의 미소에 음이 풀렸다가 이어지는 뒷말에 다시 복잡해졌다. 집안을 보여달라고? 왜?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요구였다. 민하면 주택에서 살 것이지 왜 공동생활을 하는 아파트로 와서 이 난리굿인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차라리 다 보여주고 우리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 들었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갈등이 해결된다면야. 을 질끈 감고 아랫집 부부를 안으로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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