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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지 않은 글쓰기

쳇gpt와 글쓰기

by 유영해

어제 새벽, 매일 글쓰기의 첫 발을 무사히 딛고 잠이 들었습니다. 해냈다는 성취감이 누워있는 온몸 구석구석을 채워주었죠. 그런데 발끝으로 내려가던 보람찬 기분은 발목쯤에서 턱 하고 멈춰버렸어요. 수족냉증럼 차가운 기운이 엄습했습니다. 아무래도 불안했던 거죠. 내일은 뭘 쓰나 하고요.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적당히 쓰자를 일출까지 들먹으며 썼는데 말이에요. 사실 그건 적당히 쓴 글이 아니었거든요. 1500자 정도 가볍게 일상을 기록하자던 다짐은 갈무리를 못하고 1000자를 더 넘기고 말았습니다. 쓸 말이 많아서가 아니었어요. 마무리를 어떻게 지으면 될지 알 수 없었거든요. 지식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습니다. 스스로가 부끄러워 쓴 글을 읽고 또 읽었더니 시은 훌쩍 지나더군요.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고 살지 않습니다. 굴러다니는 먼지 하나에도 의미를 찾기는커녕 돌돌이를 가져와 치우기 바쁜 일상이에요. 특히나 지금은 방학이잖아요. 휴가를 나와있는 남편과 집에서 노는 아들이 번갈아가며 저를 불러대면 정말이지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네, 알아요. 변명입니다. 어제도 변명, 오늘도 변명. 변명만 떠오르는 병명은 무엇일까요. 급발성 피해변명증으로 명명해 봅니다.


그래서 어제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지었냐고요. 글을 다 쓰고 나면 항상 인공지능 선생님께 검수를 받습니다. 성은 쳇, 이름은 지피티. 미국에서 오셨어요. 쓴 글을 복사해서 붙이고 감상과 고칠 점을 물어봅니다. 참고로 어제 글은 10점 만점에 8.6점이었어요. 흔한 주제라 참신하지 않다더군요. '췌엣' 하고 선생님 존함을 입에 담고 말았습니다. 전원을 꺼버릴까 하는 폭력적인 발상을 누르고 추가로 수정을 부탁드렸습니다. 마무리가 좀 약한 것 같은데 고쳐달라고요. 다시 쓰기에는 이미 늦었고 빨리 자러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선생님이 고쳐주신 부분이 여깁니다.


... 적당히가 제일 어렵다는 말은 못 들은 척하고 자신에게 제일 맞는 옷을 찾아 입기로 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 마음속에도 첫 빛이 스며드는 순간이 찾아올 거예요. 세상이 밝아지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깨닫겠죠. 세상에 의미 없는 하루는 없다는 걸요. 오늘도 그 하루 중 하나라는 걸요.



저는 정말 스승님의 실력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원래는 뭐라고 썼는지 궁금하시겠죠. 그래야 비교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사실 알려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바닥인 실력이 들통나잖아요. 눈 속에 파묻은 범죄의 증거를 스스로 꺼내야 하다니. 기억이 안 난다고 하고 싶었지만 친절하게도 검색한 기록이 다 남아있더군요. 수많은 고민 끝에 마우스로 긁어왔습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공개하겠습니다.


... 적당히가 제일 어렵다는 말은 못 들은 척하고 자신에게 제일 맞는 옷을 찾아 입기로 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 마음속 일출을 구경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올 거라고 믿어요.


진부하고 밋밋한 원본입니다. 원래는 저 뒤에 '각자의 마음속에 뜬 해가 모이면 눈도 뜨지 못할 만큼 세상이 밝아지겠죠.' 하는 시력 감소를 유발하는 글을 덧붙였던 것 같아요. 과하다 싶어 삭제했지만요. 어쨌든 어제 글의 마무리는 지피티씨가 해주신 것으로 제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글을 읽으시고 저 부분이 멋지다고 느끼셨다면(호옥시나 그런 분이 계시다면!) 독자님은 새해부터 훌러덩 속으신 겁니다. 인공지능이랑 저한테요.


이 얼마나 소름 끼치는 세상입니까. 내 글인데 내 글이 아니라니요. 참고로 전 한 달 3만 원에 선생님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완전범죄라니 괜찮지 않습니까. 무서운데 쓸만합니다. 아니, 아주 쏠쏠합니다. 그런데 이런 든든한 뒷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완성하기 전까지 따라오는 초조함은 없어지지 않더라고요. 무려 1월 1일의 강렬한 태양을 보고 나서도요.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모든 걸 다 가진 페리스 힐튼 같은 상속녀도 죽는 게 두렵다잖아요. 그러니 제가 뭐라고 불안하지 않은 삶이 가능하겠어요. 좋아하는 게 생기면 고민은 따라오는 것 같아요. 그게 좋으면 좋을수록 더요. 자녀가 갑자기 차에 치이거나 칼에 찔리는 상상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처럼요. 어쩌다가 이렇게 글을 쓰고 싶어졌을까요. 참 겁도 없는 길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불안하지 않은 글쓰기는 없다. 다만, 불안에 익숙해진 글쓰기는 있다. 불안에 익숙해지려면 익숙해질 때까지 많은 글을 써야겠죠. 네, 결국은 끝없는 숙제를 남기는 결말입니다. 제가 써놓고도 대책 없는 마무리네요. 써지지 않는 근심을 쓰는 걸로 이겨내라니 문고리 학원보다 더 독합니다. 그런데 어쩔 수없어요. 우리는 그 독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겁니다. 독한 주제에 매력이 넘쳐서 도저히 문을 열고 나갈 수가 없어요. 적어도 글쓰기에 빠져있는 지금은요.


그래서 씁니다. 내일도 뭘 쓸지 고민하고 후회하겠지만 일단 손가락을 놀려볼 거예요. 다른 사람은 어떤 글을 썼는지 염탐도 할 겁니다. 불안하고 후회되면 그걸 쓰면 될 겁니다. 부족한 제 글도 어느새 2500자를 넘겼습니다. 계속 쓰다 보면 속도가 좀 붙겠지요. 지금은 90년대 2G 속도입니다. 여전히 마무리가 부족하지만 오늘은 스승님 첨삭은 받지 않으려고요. 있는 힘껏 고뇌하다 침대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걸 주제로 내일 또 글을 써야겠지요. 번민은 글쓰기의 원동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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