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합니다.
엄마, 내 소원은요. 하늘을 나는 거예요.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온 아이가 입을 열었어요. 어젯밤에 본 슈퍼 히어로 영화가 꽤나 감명 깊었나 봅니다.
그래? 그럼 비행기 조종사 하면 되겠네.
그런 거 말고요. 몸에 작은 칩을 붙이면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하늘을 날려면 우리 몸이 어떻게 돼야 할까?
음.. 가벼워져야 해요.
그래, 깃털처럼 가벼워져야지. 칩 하나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몸이 작아지는 건 어때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돌계단을 지나서 어린이실을 찾아가는 길에 아이는 손에 든 책을 떨구고 말았어요. 추워서 손이 꽁꽁 얼어붙었거든요. 어깨를 움츠린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돌아봤습니다. 문득 아까 밥을 먹던 상황이 떠오르더군요. 입가에 짓궂은 웃음이 번지며 한 마디 말로 양심을 찔러보기로 합니다.
아. 하늘을 날고 싶어서
책을 그렇게 날림으로 읽었어?
미스터 날림씨?
이게 무슨 말인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요. 아이의 도서관 수업이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간 참이었어요. 제가 빌린 책을 뒤적이며 우동을 먹던 아들은 식사가 끝나자마자 '다 읽었다.'를 외쳤죠. 그럴 리가요. 밥알을 세면서 먹은 게 아닌 이상 가능할 리 없었어요. '제대로 읽은 거 맞아?'하고 타박하고 싶었지만 자기가 빌린 책이 아니니 어쩔 수 없었죠. 미스터 날림씨란 별명은 그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만들어낸 조크였습니다. 아들을 놀릴 수 있는 기회는 소중하니까요.
네! 그렇게 읽으면
책으로 하늘을 날 수 있어요.
그래?
읽은 지식도 같이 날려버리는 거야?
그래야 머릿속이 가벼워지잖아요.
그래야 날 수 있죠.
커갈수록 한 마디를 지지 않아요. 제가 한 말을 적용하는 말솜씨가 제법이라 칭찬해야 하는 걸까요. 얼어붙은 공기 사이로 큼큼 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프리스타일 랩이 시작됐어요.
책은~ 날림으로~ 읽어야지~!
그래야~ 머릿속이~ 가벼워지지~!
우리 모두~ 지식을~ 날려버리자~!
뮤지컬에 가까운 쇼맨십을 펼치는 작은 입을 웃으며 막았습니다. 도서관 입구가 가까워졌거든요. 그의 손에 쥐어줄 황금 목걸이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반납할 책만 더 들려주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어린이실에 밀어놓고 저는 황급히 같은 층 열람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방금 있었던 일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벌써 사라지기 시작한 단기기억을 붙잡으려 애를 썼지요. 아이와의 대화를 상기하며 타자를 두드리는데 제가 한 말에서 그만 멈칫하고 말았어요.
얼마 전에 공항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 그제야 머릿속에 지나갔습니다. 바닥이 푹 꺼진 것 같았어요. 화면 속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자신의 무심함에 대해, 슬픔이 얼마나 빨리 잊히는가에 대해 숙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젯밤, 눈물로 호소하는 유가족 대표님의 모습을 보고 울다가 잠이 든 건 꿈이었을까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아이 밥을 챙겨주고, 늦었다며 발을 구르고, 운전을 하고, 도서관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글을 쓰는 지금이 전부 거짓말 같았습니다.
대화내용을 지울까, 아예 다른 글을 쓸까 망설였습니다.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시작했는데 끝맺음이 두려웠어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제가 어떻게 감히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이 앞섰습니다. 방금까지 아이와 웃고 노느라 떠올리지 못한걸요. 그 잔혹하고 처절한 비극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안전규정은 피로 쓰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선박안전규정이,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대중교통안전규정이 그렇습니다. 예전보다 다듬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미비한 법규로 인해 희생된 분들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로 국가애도기간이 끝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평범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겠지요. 흔들림 없는 일상의 소중함이 간절했던 연말이었습니다. 지속 가능했던 보통의 날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머리를 감다가도, 아이와 웃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불현듯 두 손 모아 기도하겠습니다. 삼가 그들의 평안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