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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해 Nov 03. 2024

인사이드 아웃

마음속 절규를 들어라.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집으로 찾아오는 일 없어. 다만, 불규칙하게 울리는 인터폰 소리에 신경 급속도로 예민해졌다.


 우리 동에는 집에서 인테리어 작업을 하건지 가끔 망치나 드릴 소리가 들 때가 있. 아침 일찍 혹은 저녁 늦은 시간이 아닌 평범한 시간에 고작 10분에서 20분 남짓이다. 그런데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우리 집 인터폰이 울리는 것이다. 한 번은 그 여자 남편이 우리가 망치질을 하는지 물어왔다. 흥분한 아내를 말리는 소리가 들려서 어가 없었다. 모든 망치 소리는 다른 집에서 나는 소리다, 우리가 공구를 쓰게 되면 사전에 연락해서 허락까지 받겠노라 사정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밑집 화장실에 물이 새서 남편끼리만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온 가족이 홍콩여행 중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아랫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지금 망치질하고 계신가요?



 단기기억상실증인가. 아니, 이쯤 되면 지능적인 괴롭힘에 가깝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실은 사이코패스인 게 틀림없다. 가제는 게 편, 초록은 동색. 그 여자 남편인데 제정신일리가 없지. 전화기를 뺏어 소리 지르려 나를 남편이 말렸다. 대신 "우린 지금 해외여행 중이고 집에는 아무도 없다." 성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려놓은 휴대폰 속 통화 목록에서 아랫집을 찾아 차단 버튼을 눌렀다.  건너서까지 연락이 오다니 리가 다. 미친 연놈들 같으니라고.


 차라리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볼까. 시끄러운 윗집에 대항해 천장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고무망치를 두드리는 보복소음이미 유명하다. 우리윗집에 살고 있으니 아랫집에 복수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거실에서 아들이랑 농구게임을 한 판 할까. 오랜만에 가구 위치를 바꾸는 것도 좋겠지. 몇 번이나 마음속에 그려 본 장면들은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하지만 있을지 모를 소송에 대비해 아랫집에 유리한 증거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메두사 같은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돌처럼 굳었다. 감히 실행에 옮길 두가 나지 않았다.



 더 이상 아랫집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여자가 살고 있는 곳은 머릿속이었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면 주치지 않을까 몸이 굳었다. 단지네에서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을 선을 돌려 만 보고 걸었다. 비슷한 옷차림의 여자만 보아도 울컥 화가 치미는 날도 있었다. 분명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복수하고 있는 망상에 젖어 실실 도 했다. 설거지나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욕설은 뚜껑 열린 도라의 상자처럼 통제불가능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리에 굉장히 민감해졌다.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던 윗집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간이 어느 때건 소리가 들리면 슬그머니 짜증이 올라왔다. 무던한 아랫집 만나서 당신은 좋겠네. 내가 참아주고 있다는 것도 모를 테지. 좋은 이웃 만난 것에 감사하며 살아. 얼굴도 모르는 윗집에 말을 걸며 조용히 노를 삭였다.


 소리는 밑에서도 들려왔다. 아랫집 개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거실바닥을 발로 차주고 싶었다. 주인이 혼자 외출하면 짖는다고 하더니 낑낑거리며 불쌍한 소리를 냈다. 어째서 지금까지 안 들린 건지 신기할 만큼 달팽이관또렷이 파고들었다.


 편이 다시 배를 타고 떠나자 집에는 아들과 나만 덩그러니 남졌다. 몇 개월간 헤어져 있을 과 함께 안도하는 마음동시에 가슴 한편을 차지했다. 상대적으로 무게가 많이 나가는 남편이 집 안을 걸을 때마다 발소리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들과 나, 둘만 조심하면 다며 마음을 다 잡았다. 


 나의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해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다. 이미 아랫집과의 설전을 몇 번이나 목도한 아들이었다. 맨살에 닿는 까실한 스웨터로 둘러싸인 어른의 세계를 너무 일찍 보여줬다. 그때마다 벌겋게 달아올랐을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그 후로 상당히 오랜 시간 아랫집은 조용했다. 마주칠 일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일 저녁 몇 시간을 제외하고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축제가 열리면 어디든 갔다. 남편이 항해에 나서기 전에 따둔 운전면허가 큰 역할을 했다. 타고난 길치지만 매일 차를 몰다 보니 운전이 퍽 수월해졌다. '이 정도면 살만하네'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조용한 일상에 익숙해지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불안했다. 잠잠했던 폭풍이 다시 몰려오는 것처럼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여전히 아주머니는 내 머릿속에서 튀어나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어쩌면 평온함이 오래 지속될 리 없다는 걸 내심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긴 추석연휴가 중반쯤 지난 어느 오후, 그녀가 우리 집 현관문을 다시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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