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안다는 건 마음을 쓴다는 뜻이었다.
나에게 올리브는 그저 화분 속 ‘녹색 무언가’였다.
처음엔 물만 줬다.
뭘 좋아하는지도
어디서 왔는지도 몰랐다.
그 애에겐 이름이 있었지만
나는 그걸 부르지 않았다.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냥 살아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두고 본 게 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식물 커뮤니티를 둘러보다가
“싱고니움 네온핑크”라는 글을 봤다.
사진을 클릭했다.
핑크빛 잎사귀가 햇살에 비치고 있었다.
이름이 너무 예뻤다.
그날 처음으로 이름을 외웠다.
[싱고니움 네온핑크]
뭔가 아이돌 이름 같고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뒤로 자꾸 그 애가 생각났다.
이름이 있으니까 더 가까워 보였다.
화분에 든 생명이 아니라, 나랑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이름이 붙은 순간부터 그 애는 그냥 식물이 아니게 되었다.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좋아하게 되는 건
그 이름을 알고 난 뒤부터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래서 다시 검색했다.
'싱고니움 종류', '잎색 변화', '물 주는 법', '습도 유지 팁'
내가 이런 걸 궁금해하게 될 줄 몰랐다.
누군가의 프로필을 뒤지는 기분이었다.
정보가 아니라 일기를 엿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이미 조금 빠져 있었던 것 같았다.
단순히 예쁜 걸 넘어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은 생명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름을 외운 뒤부터는 더 이상 물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외운 이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애는 누군가가 됐다.
집에 돌아와 올리브를 봤다.
그 애도 이름이 있다는 게 갑자기 새삼스러웠다.
나는 이제야 그 이름을 입으로 뱉었다.
"올리브야."
입에서 올리브라는 이름이 나왔다.
누구 들으라고 말한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내가 먼저 놀랐다.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데도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날 이후 난 자주 식물들의 이름을 검색했다.
이름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진다.
처음으로 내가 무언가를 '외워야겠다'고 생각한 대상이 생겼다.
외운다는 건
기억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잊고 싶지 않다는 건
좋아하고 있다는 말의 다른 형태였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외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배당률은 금방 바뀌고
경기 결과는 하루 만에 잊히지만,
그 이름은 며칠이 지나도 기억에 남았다.
"싱고니움 네온핑크"
나는 그 애를 아직도 못 샀다.
하지만 언젠가는 같이 살아보고 싶다.
언젠가는 이름을 부르면서 물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이름을 기억했다.
잊히는 것들 속에서 무언가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부르는 건 쉬웠는데
같이 살아가는 건 매일 배워야 했다.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고 앞으로도 배워야한다.
오늘의 식물 : 프릴 보스턴 고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