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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Mar 27. 2023

07. 정원, 그리고 거리 축제

[에세이] 그때 꿈을, 다시 꾸었다

“꽃은 갑자기 피지 않았다. 이제 꽃을 피울 시기라는 걸 알고 오래전부터 준비했다. 

그래서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은 꽃을 만드는 시간에 비하면 아주 잠깐이다. 

특히 봄꽃은 전해 봄이나 여름부터 꽃눈을 준비한다. 

오랜 시간 꽃눈을 준비하고 기다리던 식물은 어느 순간 꽃을 피운다. 

우리에게는 추워서 이른 것 같지만 꽃들이 봄을 재촉하며 사계절 다른 꽃이 피어난다. 

어떤 꽃도 우리를 위해 핀 건 아니지만 예쁘게 활짝 핀 꽃을 만나면 우리를 위한 축복같이 느껴진다. 

우리 DNA에 새겨진 꽃에 대한 감탄은 우리가 꽃 앞에서 발을 멈추게 하고 꽃을 오랫동안 바라보게 하고 꽃을 사랑하게 한다.”  - 식물학자 신혜우 박사

 


  46 Bingham Rd의 뒤쪽에는 정방형의 정원이 있었다. 정원은 주방을 통해 나갈 수 있었는데 사방으로 나무로 된 울타리가 키 높이로 처져 있었다. 하지만 집 뒤쪽에 있다 보니 정원은 어둡고 이끼로 가득했다. 나는 무료할 때면 여기로 나와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가끔은 새들이 날아와 놀기도 하는 그곳은 일상의 소리들이 울타리 너머로 들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둡고 불편해 보이는 정원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이곳에 변화가 찾아왔다. 필립과 벨러리 부부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새롭게 바뀔 정원의 모습을 스케치하여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내 제안은 주방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 서 있는 크고 비스듬히 자란 나무를 잘라 정원에 햇빛이 들게 하는 것이었다. 비가 오면 다니기 불편한 정원에다 여러 개의 넓은 바닥돌을 징검다리로 놓는 것도 포함시켰다. 이렇게 나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면서 정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필립은 시골에서 살고 있는 동생의 도움을 받아 전기톱으로 정원을 스케치와 같이 자르고 다듬었다. 바닥에는 둥근돌을 새롭게 놓으면서 정원의 어둡고 이끼로 가득했던 예전의 분위기가 사라졌다. 한번은 폭우와 함께 강한 바람이 불면서 정원을 감싸고 있는 울타리 전체를 손봐야 하는 일이 생겼다. 비바람에 오래된 축대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울타리의 경계가 구불구불해져 버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모든 담장들이 바깥쪽으로 기울면서 이 일은 주인인 필립이 책임을 지고 방도를 찾아야 했다. 두 마리의 개가 마당에 나와 놀게 하기 위해서도 이 일을 마냥 미룰 수도 없는 처지였다. 


  업체에 정원 수리를 문의하였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결국에는 필립은 직접 이 일을 하기로 한 것 같아 보였다. 공사에 필요한 자재들이 집 앞으로 배달된 것은 그로부터 몇 일이 지나서였다. 나는 필립에게 도울 일이 없느냐고도 물어보았지만 그는 괜찮다는 대답뿐이었다. 주말이 되자 필립은 공사를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우선 개들이 정원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기울어진 펜스를 분해했고 또 기둥을 새로 세우기 위해 땅을 파나갔다. 하지만 이 작업은 창 너머로 이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한 공정 쉬워 보이는 것이 없었다. 혼자 하기에는 버거운 작업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편안 옷으로 갈아입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그의 부족한 일손을 도왔다. 공정마다 둘이 조를 이루어 해 나가니 힘은 들었어도 분명 수월하게 일을 진행되었다. 우린 돌아가며 삽으로 땅을 파고, 일정한 거리에 새로 펜스를 세울 수 있게 줄자로 거리를 쟀다. 그리고는 한 명이 기둥을 수직으로 잡고 있으면 상대가 미리 준비해 놓은 콘크리트를 그 안에 차곡히 채워 넣었다. 이렇게 담장이 몇 일이 걸려 완성되었을 때는 예전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새롭고 튼튼하게 바뀌어 있었다. 필립은 이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골라 틀어주었고 그가 제일 아끼는 주석잔에 맥주를 채워 건네기도 했다.


  46 Bingham Rd의 2층은 필립의 작업실로 앞쪽 창으로 햇살 가득한 도로가 내려다 보였다. 그의 작업실 벽면에는 파스텔로 그린 2절 크기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것은 46 Bingham Rd 앞에서 열린 거리 축제를 그린 것으로 그림에서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여자 아이들이 페이스 페인팅을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나는 집 앞에서 열리는 축제를 직접 볼 순 없었다. 그런데, 필립이 나를 그의 고향에서 열리는 축제에 데려다 준 적이 있다. 그곳은 산딸기 열매가 익는 시기에 맞춰 열리는 시골 축제였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서도 영국 특유의 외길로 된 농로를 고속도로 길이만큼 달리고 나서야 그가 살았던 시골 마을에 도착 할 수 있었다. 필립의 아버지와 동생이 그곳에 살고 있었고 그의 오래된 친구들 역시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곳의 페스티벌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고 떠들썩해 보였다. 한껏 장식을 하고 멋을 낸 마을 사람들이 대열의 맨 앞을 행진했고, 트랙터를 꾸며 만든 차량들에는 지역의 대표하는 것들로 장식된 소품과 분장을 한 사람들을 태우고 그 뒤를 따랐다. 새로운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골목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축제는 다시 동네 술집으로 이어졌고 나는 필립과 친구들에 둘러 쌓여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같이 즐길 수 있었다.


  축제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필립은 나를 위해 또 하나의 특별한 이벤트를 코스에 포함시켰다. 필립은 어제 왔던 길 대신 언덕을 돌아 마을 반대편에 있는 외딴 농가쪽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는데 필립은 그곳을 벨러리와 처음 얻은 신혼집이라 했다. 그들은 창고가 있는 오래된 농가를 구입해 반년에 걸쳐 벽과 바닥을 수리를 하는 것으로 그들의 신혼집으로 꾸몄던 것이다. 벌써 오래 지난 일임에도 그때의 노력과 애정 덕분인지 지금도 그때의 온기가 느껴지는듯 여전히 아름다워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서재 한 켠에 두었던 두꺼운 공사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못다한 이야기를 늦게까지 나누었다.


> 이미지 출처 : https:// letsgopeakdistrict.co.uk/listing/butte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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