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갈 때면 나는 가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을 인터넷을 뒤져 알아보고는 이것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다녔다. 이것은 여행 상품에 나와 있는 일정표와 같았고 그래서인지 나의 여행은 챌린지에 더 가까워 보였다. 나는 정해 놓은 시간에 기상해 운전을 해야 했고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괜찮은 곳을 구경하고 맛집에서 식사를 하다 보니 매번 일정을 맞추지 못했고 저녁 늦게 서야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것은 초등학교시절 방학이 되면 제일 먼저 만드는 생활 계획표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요즘은 이 모든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고 그냥 내가 제일 편한 방식대로 다니고 있다. 심지어 휴가 계획까지도 이젠 미리 짜질 않으니 비용이 싼 항공과 호텔을 예약하느라 서두르는 일도 없다.
저번 휴가가 그랬다. 계획도 않고 있다가 아내가 ‘제주도나 한번 갈까?’하는 말에 바로 여행을 간 것이다. 그리고 그냥 빠른 날짜에 있는 항공표를 구매하는 걸로 모든 준비를 끝냈다. 렌터카도 번거로워 대중교통으로 필요한 곳만 다녔고 호텔도 다니기 편한 곳에서 잤다. 이렇게 되니 우리의 여행이 제주도가 아닌 해외 여행을 즐기고 온듯한 추억을 만들어 해주었다. 차량을 렌트 했다면 곧장 목적지로 향하게 되면서 그곳에 도착해서야 설레기 시작했을테지만 우리의 여행은 호텔 밖이 바로 설렘의 시작점이었다. 우리는 호텔을 나와 거리에 줄지어 서있는 가게들 앞을 천천히 구경하며 걸었고 도로 건너에 있는 공원에서 조용히 아침과 자연을 즐겼다. 그리고 나서 마주하는 커피와 식사는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고 우리를 소중하게 기억해 주었다.
몇일 전에는 김치 냉장고를 고치기 위해 긴 시간을 기계와 싸워야 했다. 냉장고 제일 아래칸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서 가족 모두가 돌아가며 고민을 했지만 끝내 방법을 찾지 못했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 힘으로 매달려도 보고 공구도 써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극단의 조치에 들어갔다.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얼어서 생긴 문제일 수 있으니 냉장고의 생명줄인 전원을 끄고 얼음이 녹기를 기다려 보기로 한 것이다. 냉장고의 전원을 끈다는 것은 가족들에게는 금기 사항으로 받아들여졌고 냉장고 안에 든 음식에 대한 걱정으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이게 문제였고 답이었다. 정오 무렵 시작했던 일이 자정이 되면서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듯 크리스탈 같은 얼음이 깨지면서 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마지막 남은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토해내며 잠겼던 문이 스르르 열렸다.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것을 다르게 대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것을 지금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 시기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고마운 신호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 쓰는 물건이 고장이 났다면 물건과 함께 이것을 쓰고 있는 자신을 물건과 함께 살피면 좋을 것 같다. 물건이 스스로 고장난 것이라면 몰라도 내가 잘못한 것이라면 나도 같이 아프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우리가 먼저 아프거나 고장 나지 않게 물건이 미리 이것을 알려주는 것인지도. 나는 여행이 즐겁지 않고 김치 냉장고 문이 열리지 않았을 때 이렇게 이것들과 함께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얼음이 녹고 문이 열릴 기회를 함께 만들어 주었다. 그러자 그 속에 갇혀 얼어 있던 나의 어릴 적 꿈을 찾을 수 있었다.
어린시절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시간이 나면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마당에 나와 그림을 그렸다. 나는 집을 그리는 게 제일 좋았다. 어떤 날은 마당 화단에 앉아서 그렸고 또 어떤 날은 계단 난간에 앉아 집을 그렸다. 내가 그리는 집은 다 같은 모양이었지만 나는 이 일을 반복하면서도 신이나 있었다. 그런데 집을 그리는데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집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을 의아하게 바라보기까지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이후부터는 숨어서 그림을 그렸고 결국 나의 집 그리기는 점점 줄어 갔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반 고호의 그림을 통해 집이 작품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고는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나는 집 그리기에 대한 방황을 끝내고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집을 작품으로 만들면서 그 안을 용기와 열정으로 채워 가고 싶다. 내가 다시 시작하는 집 그리기는 용기로 준비해 가려 한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으로 그 안을 채워 보려 한다. 나는 책읽기를 싫어하지만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책 읽기는 싫어하고 책 속에 있는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내가 글을 쓰겠다고 하니 모두가 놀란다. 그리고 이것이 내 전공이 아닌 건축에 관한 얘기라고 하면 크게 다시 놀란다. 이것은 마치 내가 집을 그림으로 그리던 때의 반응과 많이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내가 그림을 보여주고 얘기를 들려주니 재미있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이것은 과거 내가 집을 그렸지만 누구에게도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이렇듯 과거에 내가 놓친 것들에 나의 어린 촉각을 세워 보고 싶다.
나는 한가지 믿음으로 이 글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공통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내 것을 찾고 집중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라는 명대사로 시작했다면, 나는 이 글을 “서로 닮은 집에는 같은 행복을 주지만,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집에는 다른 행복이 있다."로 바꾸어 시작해 보려 한다. 저마다의 경험, 저마다의 이유, 저마다의 행복이 있는 저마다의 집을 우리 모두가 찾기를 꿈꿔본다.
“서로 닮은 집에는 같은 행복을 주지만,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집에는 다른 행복이 있다."
# 뻥 뚫린 세상에서 집은 우리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다. 집은 그늘과도 같은 휴식공간인 것이다. 이런 휴식 공간을 만들면서 집안에 여러 가지 눈에 띄는 디테일을 넣는 것으로 우리는 새로운 동선과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문을 여는 순간 집을 탐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다. 집은 우리를 휴식하게도 하지만 호기심에 우리를 찾고 움직이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거실 소파에 앉으려는 나를 불러 일으켜 난간의 모서리를 잡게 하고 그 끝까지 내려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타일의 문양을 따라가 보고 호기심으로 캐비닛의 손잡이를 잡고 열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가 집에서 찾아야 할 것들이 이런 디테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디자인에 앞서 우리를 오래도록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할 수 있는 디테일이 우리 곁에 있으면 좋겠다. 마치 방황하고 있을 때 우리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는 표지판처럼, 우리가 더 좋은 휴식을 찾기 위해서는 집안에도 이런 표지판이 있으면 좋겠다. @스위스 가드너스 하우스 by 캐비닛 패니 노엘 디오고 로페스 아키텍쳐 2023 (Garderners House by CABINET Fanny Noël Diogo Lopes Architectes)
# 풍경 화가인 아멜리아 험버(Amelia Humber)를 위해 지어진 작업실은 특이하다. 예술가의 작업실이라 하면 실험실 같고 창고 같고 가끔은 정비소 같은 것을 연상하겠지만 이곳에선 복잡함도 지저분함도 그래서 위험도 없다. 생각해 보면 화가에게 필요한 건 자연의 빛과 하얀 도화지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벽이 아닌 지붕을 통해 가장 자연스러운 빛이 들어 오게 하고 벽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면 된다. 벽은 그림을 그리는 배경이니 지저분해지면 다시 칠하면 되는 것이다. 다시 상상해 본다. 나는 집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이것이 나를 설레게 했다. 집에서 집을 그리며 상상하며 사는 것이 나의 오래된 꿈이듯 나는 집을 꿈들로 가득채우고 싶다. 실내로는 밝은 빛이 들어오고 벽은 세상으로 펼쳐진 공간이며 바닥은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운동장이 된다. 이처럼 집은 나를 맞이하는 공간이며 자신을 짙게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영국 쉰델 스튜디오 by 아처 + 브라운 2022 (Schindel Studio by Archer + Bra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