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와 강둑을 따라 줄지어 높게 자랐던 포플러 나무가 이제는 보기 힘든 존재가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7종의 포플러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백양나무와 황철나무가 자라다가 유럽에서 은백양나무가 들어오면서 변종을 만들어 냈다. 우리에겐 미루나무로 불리던 흑양나무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가로수로 심어졌다. 한동안 토종이 외래종에 자리를 내주었는데 변화에는 더 이상 토종과 외래종을 구분하지 않는 듯하다. 천대받기는 히말리야시다도 매한가지인 것 같다. 과거 굳세고 씩씩하게 라는 명찰을 달고 교목으로 많이 심어졌던 것이 이젠 천덕꾸러기가 된 듯하다. 한반도에서 호랑이와 표범이 사라졌듯 포플러와 히말리야시다도 이젠 같은 처지가 되어 버렸다.
과거 포플러 나무는 어디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였다. 포플러는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와 젓가락과 일회용 도시락의 재료로도 사용되었다. 소프트 우드인 포플러를 얇게 켜서 말리면 흰색과 연갈색의 무늬가 어우러진 도시락의 재료가 되는데 이것에 담긴 음식을 먹을 땐 특유의 향긋함을 함께 느낄 수가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이때만 하더라도 결혼식을 제외한 대부분의 집안의 대소사를 직접 집에서 해결하던 때라 이 일이 있으면 동네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분주했다. 그때면 어머니는 동네의 바쁜 일손을 도왔는데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포플러로 만든 일회용 도시락에 담긴 음식을 가져오곤 했다. 그런데 이것도 어린시절의 짧은 추억이 되어 버렸다. 포플러 나무로 된 도시락이 얇은 투명 플라스틱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동네 잔치까지도 이내 같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일상으로 대하던 것들이 시간과 함께 희미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포플러는 나에게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항상 뜨거운 여름이었다. 버스가 한여름의 오후를 내달릴 때면 포플러 나무는 그림자를 만들어주었고 잎사귀를 타닥거리며 열어 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불게 했다. 강가에 모여 수영을 할 때면 옷가지를 놓아두고 태양을 피해 앉을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포플러 나무를 아래서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러면 하얀 빛깔로 밝게 빛나는 잎사귀를 볼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포플러 나무는 내가 만질 수 없는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포플러는 나를 겨울로 기억하게 해주었다. 포플러는 내게 둥글게 다가와서 삼각형의 기억을 남겨 주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협 창고가 있는 동네 앞은 벼를 매상 하느라 진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경운기들이 줄을 지어 농사 지은 쌀을 포대에 담아 날랐고 창고 앞은 쌀 가마니가 어른 키만큼 높게 쌓였다. 이것을 인부들이 창고 안으로 옮겼는데 그러면 큰 창고는 꼭대기의 삼각형의 지붕만 보일 정도로 쌀로 가득 찼다. 그리고는 창고는 쌀과 함께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해 겨울은 달랐다. 텅 비어 있어야 할 창고 앞이 나무들로 가득했다. 매상을 위해 쌀 가마니를 높게 펼쳐 놓은 것처럼 나무들이 이곳에 누워 있었다. 도로가와 강가를 따라 줄지어 서 있어야 할 포플러 나무들이 모두 베어져 이곳에 모여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며 놀았다. 어떤 나무가 큰지 내기를 하며 찾아 다녔고 나이테를 세기도 했다. 커다란 나무사이에는 구멍이 있어 그곳에 들어가 놀기도 했다. 우리는 조그만 참새떼 같았다. 우리는 포플러 나무 위에서 재잘댔고 이쪽으로 날아갔다 저쪽 구멍으로 들어가 숨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나무들은 하나 둘 옮겨졌고 우리의 놀이도 끝이 났다. 좋은 이별의 시간을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한다. 포플러 나무를 길에서만 보고 사라졌다면 섭섭했을 텐데 한 번도 오르지 못했던 나무를 맘껏 올라타 보게 하고 그곳에서 쉴 수 있게 해주었다. 포플러의 둥근 나무가 모여 만들어준 삼각형의 공간을 내 기억에 남겨 주었다.
그 시절 포플러 나무가 집 바깥 이곳저곳에서 높게 자랐다면 집안에서는 오동나무가 높게 자랐다. 지금은 오래되고 허물어져가는 폐가의 한 켠이나 산 아래서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대하기가 힘들어졌다. 20년 정도 자라면 목재로 쓸 수 있어 딸을 낳으면 제일 먼저 집에다 오동나무를 심었다가 이것으로 가구를 만들어 시집을 보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내 기억에도 몇몇 집에는 커다란 오동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인생도 오동나무와 닮은 데가 많은 것 같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으로 함께 심어져 옆에서 자라다가 아버지의 역할을 같이 해주며 가구로 그 쓰임을 다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다해 갈 때쯤 큰 소리로 잎사귀를 뚝뚝 떨어뜨리는 것으로 함께 슬퍼하기도 한다.
우리 주변은 새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로 가득하다. 트렌드 역시도 그렇다. 어떤 트렌드는 거대한 폭풍처럼 왔다가 조용히 사라진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사라질 때는 쓸쓸함을 남긴다.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필요해 보인다.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트렌드에 우리가 지나치게 추종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우리가 이것에 시간을 가지고 대하면서 이것이 세월을 이겨낼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집 역시도 같은 생각을 해본다. 집에 대해 우리가 트렌드를 쫓는 대신 우리 곁에 트렌드가 오랫동안 머물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집에서 휴식을 취하듯 트렌드도 집에서 우리와 같이 휴식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여기서 빠르고 많은 것을 추구하기 보다 느리지만 좀 더 소중한 것들로 안이 채워지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혀지는 것이 아닌 길게 가는 건축이면 좋겠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곳에서 위로 받고 둥글게 마음을 감싸주는 것으로 삼각형의 기억을 많이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 뾰쪽 지붕의 집과 높게 자란 포플러는 시골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뾰쪽 지붕의 집은 우리가 다시 지을 수 있지만 높게 자란 포플러 나무는 한번 베어지면 다시 자라지 않는다. 포플러 나무를 베지 않고 원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하면 우리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추억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포플러 나무 아래 뾰족 지붕의 집을 놓는 것으로 이곳의 향수를 오랫동안 지키고 키워갈 수가 있다. 현재의 자연을 그대로 두고 즐기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시골 주택과 같은 마당을 만들어 주변의 경관을 옛날 모습으로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곳의 경치를 조용하게 즐기는 것이 길게 가는 집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것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집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포플러를 집 가까이 두고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 중국 제로하우스 by 텐니오 2021 (Zero House by Tenio)
# 건물 전체를 덮을 정도로 큰 오동나무가 집 뒤쪽 좁은 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오동나무가 침묵하며 지내면서 집까지도 함께 침묵했다. 이렇게 있던 구석 공간을 안뜰로 바꾸면서 오동나무가 집 뒤쪽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오동나무가 집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렇게 유니크한 공간이 탄생하면서 잠자고 있던 지름 90cm의 오동나무가 집과 함께 다시 활력을 얻게 되었다. 하마터면 잊히면서 쓸쓸함으로 기억될 뻔했던 오동나무를 푸른 기풍과 따뜻함으로 날마다 대할 수 있게 바꾸어 놓았다. 이렇게 지어진 집에서는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오동나무가 편안히 우리를 쉬게 하고 지켜줄 것 같다. @ 중국 리가든 티하우스 by 아틀리에 데스하우스 2017 (Tea House in Li Garden by Atelier Deshaus)
> 참고 자료: 362 포플러와 사시나무 그리고 미루나무와 백양 (낙은재 블로그, ‘18/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