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_새로운 시작

집, 짙짖짓 (집에 대한 생각 짓기)

by dkb 하우스

[침실, 평범하지 않은 곳으로 향하다]


침실의 추억은 다양하며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최애를 침대에 가지고 잠을 자기도 하고 여행때면 잠자리가 바껴 잠을 설치기도 한다. 나는 대학생때 기숙사에서 생활한적이 있는데 2층 침대가 있는 다인실이라 잠을 자기 위해서는 이곳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했다. 한번은 기숙사 신청이 안되고 자취방까지 구하지 못하게 되면서 학교 강의실에서 잠을 잔적이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말은 우리의 인생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잠자리도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았다. 이전에는 사람 키만큼 높은 곳에서 잠을 잤다면 이제는 책상 밑 교실 바닥에서 잠을 잤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밤 늦게까지 강의실에 남아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면서 그곳의 잠자리는 불편하기 보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2층 침대에서는 내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 교실의 바닥은 내가 아닌 주변이 사람 키만큼 붕 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내가 꼭 타일로 된 욕조안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면 침대와 욕조가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외국 영화를 보면 침대에서 남자들이 옷을 입지 않고 잠을 자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잠옷을 따로 챙겨 입고 자는 우리 입장에선 이것이 불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로마에는 화려한 목욕문화가 있고 중세에는 여관에서 남자들이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든 것을 보면 이것 역시 하나의 문화였다. 그리고 잠을 잔다는 것 역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욕조에서 목욕을 하듯 침대에서 피로를 푸는 것이니 둘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둘은 순서에만 차이가 조금 있는 것 같다. 일을 마친 저녁에는 욕조에 들어갔다 침대로 간다면 아침에는 이것을 반대로 하는 정도이지 않을까?


# 우리가 욕조에서 편안하게 잠에 빠지는 것을 보면 욕실과 침실은 같은 공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본 올데이 플레이스 호텔 by DDAA 2022 (All day place Hotel by DDAA)


집에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곳을 찾으라 한다면 나는 이곳이 침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침실은 안방으로 집에서 제일 큰 방을 잠자는 방 정도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우리는 좋은 침대를 놓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보다 좀 더 큰 역할이 주어지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우리의 침실이 소중한 우리의 시간을 더 많은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몇 년 전 나는 영국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이는 하우스 파티에 초대받아 가게 되면서 이것이 인연이 되어 여러 친척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 누구보다 살갑게 나를 맞아주던 사촌 누나가 안타깝게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촌 누나는 완치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파티가 있던 자신의 집에서 요양을 했으며 나중에는 가족과 친척들이 다같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침실에서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고 했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누나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그리고 자신에게 제일 익숙하고 편안한 자신의 침실에서 잠들 수 있어 안심이 되었다.


이것을 대하고 바라본 우리의 침실과 그곳의 생활은 그리 견고해 보이지 않았다. 침실에서 우리의 노후와 삶의 마지막은 빈약하고 비어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의 침실이 화려하게 피었다 금세 시들어 사라지는 꽃과 같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우리의 침실이 백일홍에 더해 100년의 시간을 피어야 하고, 다이아몬드 릴리처럼 오래도록 보석으로 빛나야 하고, 카네이션처럼 오랜 기억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침실은 우리가 몸을 눕히고 휴식하는 공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침실에서 생명을 얻고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우리가 더 큰 역할을 부여하면 어떨까? 우리를 아름답고 화려하게 일으켜 새우는 곳이 침실이면 좋을 것 같다.


# 침실이 많은 기능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중국 허 앤 잇즈 하우스 by 아틀리에 이판 2022 (Her and Its House by Atelier Yipan)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호텔에 묵는다면 우리에게 그곳의 침실은 익숙한 모습일 것이다. 대부분 비슷하게 생겨 우리의 침실 즉 지금 우리의 잠자리 와도 많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침실을 음식에 비유한다면 돼지 고기와 비슷할 것 같다. 해외 여행을 가서 현지 음식이나 새로운 음식에 자신이 없거나 입맛이 까다롭다면 돼지고기로 된 음식을 주문하면 실패를 할 확률이 낮다고 한다. 이것은 요크셔종 돼지 품종이 제일 많이 사육되면서 어디를 가든 맛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호텔도 잠을 자는 것만 가지고 비교하면 터키 카파도키아의 동굴 호텔이나, 스위스 알프스의 오픈 객실이나, 스웨덴의 얼음 호텔이 아니고는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침실에 새로움을 찾고 특별함을 키워야 하는 이유이다.


다른 방들과 다르게 침실은 여러가지가 더해지고 합쳐져 만들어지는 공간이 아니다. 합쳐지게 되면 잠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일을 하거나 쉬다가 잠을 자는 것이 되어 버린다. 가장 좋은 잠자리는 침대 하나만 있는 방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침실은 침대 하나가 빠져도 텅 비어 보이고 이곳이 침실인 것조차 모를 정도로 간소해야 하지 않을까? 음식으로 치면 소금 같은 것이 침실일 것 같다. 심심하게 먹는 게 건강에 좋듯 심심하게 자는 게 건강에도 좋은 거라 하겠다.


침실에 대해 크고 화려한 것을 대신할 수 있는 시각 또한 우리에게 필요할지 모른다. 호텔과 다르게 가족의 주말을 위한 스위트에서는 귀족적인 삶과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물론 그 중에는 크고 화려한 침실도 있지만 집의 크기에 비해 작고 간소한 곳도 많다. 침대는 낮고 소박하며 주변 또한 특별한 게 따로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것이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이곳이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와 쉬기에 알맞은 공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왕과 왕비의 침실도 이와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작은 출입문을 통과해서 있는 침실은 궁전의 다른 방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이곳의 소박한 벽과 창을 보고 있으면 마치 다른 곳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집에서 비움이 필요한 곳이 침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 집에서 무상무념의 공간을 찾으라면 그곳은 침실일 것이다. @포르투갈 구 루브르 호텔 by 다이애나 바로스 아르키텍투라 (Former Louvre Hotel by Diana Barros Arquitectura)